권남희 수필

<문턱 > 권남희 수필

권남희 후정 2010. 1. 31. 18:55

 문턱

                                     권남희

외할머니는 늘 회초리를 들고 안방 문턱 가까운 쪽에 앉아 계셨다. 한옥의  누마루에 올라설 때부터 할머니의 엄한 기상에 주눅이 들어버렸던 나는 그  강한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우지 못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리듯 매운 회초리 맛이 생생해서일까. ‘뛰지 마라, 떠들지 마라, 싸우지 마라’ 손자들에게 야단치는 외할머니의 주문은 똑같았는데 손녀인 내게는 엎드려있는 사촌오빠를 넘어 다니거나 남자를 앞질러 뛰어다니면 그럴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다. 태생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한수 위라는 느낌을  어느 결엔가 받게 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무엇이든 남자를 앞질러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눌려 지냈다.   

 방학 때마다 외가에 놀러가곤 했던 나는 어느 날 무심코 문턱을 밟았다가 할머니에게 또 야단을 맞았다. ‘여자가 문턱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회초리를 들었다. 그 때 왜 여자는 문턱을 밟으면 안 되는 것인지 이유도 몰랐지만 묻지도 못한 채 그저 사촌들 앞에서 꾸지람 들은 일에 대한 무안함으로 큰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문턱 앞에서 통과의례처럼 멈칫거리고 소심증을 드러내곤 했다. 아이들 일상에서 문턱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대상이기에 화가 나면 발로 차버리기도 했다. 문턱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제풀에 놀라 화가 났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생각에 몰두하며 앞만 보고 내닫다가 넘어지면 문턱 앞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 분명 일상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방을 통과하는 일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부엌을 드나드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방문보다 더 높은 턱이 있어 키가 작았던 나는 껑충하니 다리를 들어야 넘을 수 있었다. 그 곳으로 외숙모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언니는 잘도 넘어 다녔다. 가끔 언니들이 밥상을 들고 나오다 넘어져 사기그릇이 깨지는 날은 할머니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다. 긴 치마를 입고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다녔던 외숙모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밥상을 들고 부엌문 턱을 넘어가는 일은 꽤나 훈련된 시간을 거쳐야 하고 신중해야 했다. 

개량 주택에 살 때도 부엌은 구조가 같아 집안에서 부엌을 건너갈 때는 내려가야 했고 밖에서 드나들 때는 문턱이 있었다. 

어쩌다 여자는 문턱과도 씨름을 해야 하는 존재인가를 어머니도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배우지 못한 한을 자주 말했다.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나 처우가  구분되는 집안 분위기와 딸이라며 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차별에 대해 인식한 것이다. 거침없는 성격에 활동적인 어머니였지만 ‘여자가 뭘’이라는 차별과 ‘학력’ 문턱에 걸려 마음으로는 수도 없이 넘어졌는지 눈물도 많았다. 그 반감으로 어머니는 아들 딸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자식은 무조건 시켜주겠다며 강한 생활력으로 자식들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치워주려 애를 썼다.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어머니는 자식이 다니는 학교여서일까, 스스럼없이 학교 문턱을 넘어와 선생님들께 협조 하며 즐거워 하셨다. 어머니의 일념으로 나는 대학 문턱까지는 넘었으나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고 결혼생활에 안주했을 때 어머니는 몹시 아쉬워했다. 

 어머니가 바라는 꿈의 턱을 넘지 못한 채 집 평수 늘리는 일에 몰두하다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때 놀랐던 것은 공간마다 어떤 경계 턱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거실과 주방의 구분까지 없애 공간을 열어버린 구조였다. 굳이 주방과 거실로 구분하려들지 않아 자유스럽게 넘나드는 집이지만 소통이 없어 사계절 조용하다.

 스스로 마음에 문턱을 짓고 사는 시대다.

휴일, 각자 자기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은 가족들을 본다. 문턱 없는 아들 방을 불쑥 들어가지 못해 문턱이 있을 법한 곳에 서서 나는 아들에게 먹을 것을 내밀며 멈칫거린다. 내 행동거지를 따라 다니는 강아지도 더 이상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를 따라 입구에 서서 내 얼굴과 아들 얼굴을 살핀다.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야단하던 할아버지도, 노랗게 물들인 손자 머리에 질겁하던 할머니도 계시지 않는다. 이리 저리 가름하는 턱이 사라진 공간처럼 막힘없고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신세대로 보이지만 입시문턱을 넘어야 하고 취업문턱을 넘어야 하는 심리적 무게에 눌려서일까. ‘문턱 밟지 마라, 넘어가지 마라’ 꾸지람하는 어른도 없건만 각자 마음속에 턱을 만든 채 자기만의 방에서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을 뿐이다.

- 에세이 21 ( 발행인 이정림 수필가) 200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