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 하나를 그리는 심정으로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고 고쳐나가기를 희망하는 김우종 문학평론가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2.12. 20.목 오후 두시 협회 사무실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 반갑습니다. 월간한국수필에 현대한국수필 평설을 몇 년간 써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선생은 저명한 평론가인데도 불구하고 수필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와 수필의 매력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우종: 평론가이기 때문에 수필을 썼습니다. 요즘 수필은 서정성이 강하고 논리성이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론은 산문과 연결되어있는데 수필 또한 논리적인 사고를 전개해나가는 매력이 있고 그러면서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분야이지요. 12-15매 내외의 간결함 속에서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도 있고요. 논리적인 전개를 시나 소설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문학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한 가지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지만 평론은 언어예술이 아니기에 타고난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언어예술을 또 하나 선택 한 장르가 수필이었습니다. 보통 시인이나 소설가가 수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성을 잃고 미숙한 경우가 많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성을 갖추기 위해서 언어 예술을 다루는 재능은 있어야 합니다.
정: 1960년대 후반 선생은 라디오방송에 일 년간 매일 수필한편을 발표하신 적 있는데 매일 써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은 물론 필력이 대단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 때의 일화를 듣고싶습니다.
김:수필 인기가 높을 때였습니다. 1966년 약 1년간 일요일을 빼고 라디오 방송에서 매일 수필 한편을 발표했습니다. 처음부터 1년을 계획하고 내가 수필을 쓰면 유명한 아나운서가 낭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TV도 없던 때라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팬들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서 《내일이 오는 길목에서》수필집도 묶어 냈고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누군가는 엄청난 돈을 벌지 않았을까 하지만 매절이었기 때문에 몇 부가 팔리는지 몰랐습니다. 출판사의 노력으로 이 수필집은 거의 1년 간 하루에 열 번정도 방송매체를 탔는데 상업성보다 문학행사를 뉴스 형식으로 다루었습니다. 그 때 30대 후반인 청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상상이 안 되지만 수필을 공부하겠다고 올라온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정: 평론가로서 현재 한국수필의문제점과 바람직한 진로 모색에 대하여 듣고싶습니다.
김: 문학은 우등생과 열등생이 따로 있지만 유독 수필장르만 황당한 일을 겪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하나 생각을 합니다. 문예사전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살펴보면 ‘언어로써 사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에 수필이 없는 점과 노벨문학상에 수필이 없는 것, 한 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수필집창작지원금을 거부했던 일은 분명 짚고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사태는 일부 계층의 수필관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는 세계 어디서나 수필을 예술의 전문적 분야로 여기지 않는 점, 제대로 이론화시킨 학자나 평론가가 없는 점, 수필가 자신들이 예술로서의 전문성을 부정하고 교양생활의 일부로서 발표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원인을 알면 문제해결은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을까요? 우선 수필가들에게 필요한 예술적 전문성을 길러야 하겠지요.
정: 수필이론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견해가 있다면 들려주시기바랍니다
김: 언어예술의 범주에 수필을 포함시키지 않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 수필은 높은 수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평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인구비례로 볼 때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양적인 팽창은 엄청난데 그에 따른 질적인 팽창은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수필을 문학으로 보려하지 않는 이유를 들자면, 예술성과 수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나를 확인하는 공리성입니다.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킨다든지, 실제로 역사적 현실에서 문제해결이 된다든지 하는 공리성에서 미약해진 수필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피천득의 ‘인연’은 상상력이나 은유법 등의 예술성에서 한국의 전통수필의 좋은 수준으로 올려두었지만 ‘수필’작품에서는 공리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수필은 심오한 지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등으로 문학에서의 철학과 사상을 배제했습니다. 사회문제에 분노를 해야하고 애증문제, 때로는 뜨거운 정열을 표현해야 하는 데 수필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회에 기여를 할 것인가 의문이 가는 것입니다. 수필에서 내 이야기를 하더라도 전 인류적인 것, 우리 이야기로 확대해나갈 때 신변잡사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이야기만 기록하면 읽는 재미가 없습니다. 좋은 예술성을 갖추려면 상상의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래전 발표한 수필 <그 겨울의 날개>에서 날개를 갖고있는 존재가 날지못할 때 날개없는 벌레보다 더 고통스럽다. 봄이 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쓰기도 했는데 상징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필쓰기에서 필요한 부분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세계가 무엇인가 ? 짚어나가야지요. 상상은 허구의 세계와 다릅니다. 허구는 소설이지만 허구는 상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상상의 세계는 주제를 감동적으로 표현고자 하는 기법입니다. 본질을 말하고자 할 때 날씨나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화를 들자면, 작가의 상상력을 모른 채 어느 검사가 한승헌 변호사를 수사할 때 반공법으로 구속하기 위해 “사형수가 죽던 날의 아픔 마음을 흐린 날씨”로 비유한 수필을 보고 기상청에 그날의 날씨를 알아보았다는 우화도 있습니다. 문학적 장치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정: 최근 동향과 집필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김: 최근이라면, 지난 해 여름 전북문인 대동제에서 <한국수필 이렇게 달라져야한다>는 특강에서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작품이 친일문학이라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는 내용을 주장하다가다 주제와 맞지않는 논리의 비약이다, 는 등 후손보다 제자들 항의를 많이 받고 현재 공개토론을 제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창작산맥을 가을호에 창간하고 겨울호로 통권 2호가 발간된 일입니다. ‘윤동주의 문학적 순교와 부활’ 이 두 가지가 꼭 써야 할 내용입니다. 내 글을 발표할 지면이 필요했기 때문에 잡지를 다시 창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잡지출간의 차별화도 고려하면서 좋은 글을 쓰지만 발표를 못하는 작가를 발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문단생활 오래 한 사람은 흔히 지면얻을 기회가 많다고 여기겠지만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문제도 갖고 있습니다. 내 경우의 문제는 비평가로서 문단이 걸어온 길을 반성하고 시정하면서 끌어가야 할 방향이 있는데 받아들여주지 않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해방 뒤 문단구성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라 여깁니다.
정: 수필계에 당부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김 : 문학은 자기 독백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문학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전문가로서의 노력과 공부,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어야 하지요.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쓸 수 밖에 없지만 발표행위는 남에게 읽히는 것이기 때문에 강요보다 남들도 감동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다같이 아픔을 달래주고 길을 가르쳐주고 삶에 대한 가치를 찾아주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조물주가 우리에게 준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오염되습니다. 오헨리의 <마지막 한 잎> 에 나오는 화가 버먼 영감은 40년간 걸작 하나를 그리려다 실패했지만 존시를 위해 진눈개비가 몰아치는 한밤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담쟁이 덩쿨 한 잎을 그립니다. 수필도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록 작은 문예지이만 담쟁이 덩쿨 한잎이 그렇듯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줄 꽃과 나무들이 자라는 귀한 자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 선생의 단아한 젊음 유지 비결이 말씀대로 ‘자기 생활을 즐기고 일을 많이하면서도 신바람내서 즐기는 문학’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하면서 오늘 시간내주신 점 감사인사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바랍니다.
김우종 평론가 약력
현재 《창작산맥》발행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1957년 《현대문학》문학평론으로 등단. 195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0년이후부터 문학의 사회참여운동 전개. 1974년 1월 국군보안사에 강의도중 연행 .날조된 ‘문인간첩단’사건으로 투옥
경희대에서 해직. 에세이집과 평론집출판금지. 1975년부터 유화개인전 5회. 1980- 1995년 복권 하여 덕성여대 교수 . 한국대학신문 주필. KBS.MBC. SBS에서 MC활동 등
저서 《김우종 에세이전집》외《비평문학의 이론》등 학술서적 다수
상훈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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