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창작수필 발행인 오창익 교수 인터뷰 월간 한국수필 2012.12월호

권남희 후정 2012. 12. 12. 16:58

월간 한국수필 2012년 12월호    대담

수필의 문예화를 위해 열정을 쏟아온

오창익 수필가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2.11. 21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월간 한국수필)

 

 

정목일 :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필 공부를 하게 된 배경과 상황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창익 : 수필보다 먼저 소설을 사랑했습니다. 대학 때부터 소설을 전공했으니까요. 운 좋게도 ’65년에 단편소설 《燒却者》로 朝鮮日報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곧 소설을 버렸습니다. 아니, 소설이 나를 버렸다고 해야 맞지요. 쓰는 작품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상황이고, 인물이라 믿었지만, 발표하고 나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소화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인간미숙’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의 미숙은 곧 작자의 인간적인 함량미달과 직결되는 법. 인간을 모르면서 인간을 그릴려고 했던 무모함 때문에 부끄러웠습니다. 해서 떠났습니다. 인간이기 전에 온전한 나, 우선 그 나를 찾아서 말입니다.

소설과 이혼(離婚)후, 한 10년 가까이 오직 고교 국어선생으로서, 남편과 아이들 아빠로서만 충실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괴롭고 아플 때마다 나를 붙잡고 이기는 유일한 수단쯤으로 간간이 짧은 글을 써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등단작인 수필 《해바라기》입니다. 해바라기와의 만남, 이를테면 문학과의 재회입니다. 우연찮게 만난 행운입니다. 우연? 왜냐구요?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해 취한 아내의 특단조치, 그 때문이었으니까요. 문학청년이란 매력 하나만 믿고 시집 온 아내가 문학을 놓고 사는 남편에 대한 실망이 컸던가 봅니다. 흔들릴 대마다 써놓았던 소품 중에서 몇을 골라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은 내가 아닌 아내였으니까요. 축복이지요. 이를테면 수필과의 재혼(再婚), 궁합이 맞았던가 봅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일생일대의 행운이라고 믿고 삽니다.

정 : 수필 전문지 「창작수필」을 창간한 지도 이십년이 넘었지요? 이제 디지털시 대의 수필문학의 방향을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 : 우선 수필의 산문성과 문예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굳이 문학이기를 원치 않고 쓰는 수필과 필히 공감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뜨겁게 쓰는 문예수필이 공존, 동숙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40여년 전부터 저는 수필가와 수필문학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작품으로나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예컨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찍기만 하면 되는 ‘사진사’와 주제가 있는 감동적인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눈비 맞아가며 기다리는 ‘사진작가’가 엄연히 구별되어 공존하듯이 말입니다.

방향? 문예수필의 긍정적인 방향제시라면 말이 좀 길어질 텐데요, 괜찮겠습니까? 산문성의 문예화, 그건 보다 ‘경험적’이고, 보다 ‘지적(知的)’이고, 보다 ‘정적(情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보다’는 수사적으로는 부사(副詞)에 지나지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구체성, 실증성, 진실성의 2배수, 3배수의 강조와 압축의 의미로 말할 수 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경험의 경우는 ‘시래기와 쓰레기’로 비유할 수 가 있습니다. 김장 때 쓰레기로 버려질 수도 있는 배춧잎이나 무청도 경험 많은 할머니 손에 들어가면 구수하고 맛깔스런 겨울철 시래기 요리로 격상할 수 가 있지요. 이를 테면 쓰레기의 격조 높은 시래기(감동)로의 극적인 변신이지요, 경험에 의한 재생적 창작입니다. 다음으로 보다 지적인 경우는 박종화 선생의 수필 《淘河와 靑莊》이나 김소운 선생의 《木槿通信》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내 어머니가 비록 문둥이일지라도 예쁜 클레오파트라와 바꿀 생각은 없다.” 이는 김소운 선생의 장편수필 《목근통신》에 나오는 명언으로 전후(戰後) 가난과 설움으로 땅에 떨어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살려준, 눈물 나는, 보다 감동적인 지적문장입니다. 또한 좀 우직한 도하라는 물새와 보다 약삭빠른 청장이란 물새를 통해 불공평한 세상사를 꼬집은 박종화 선생의 작품도 예외가 아닌, 보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예시로 문예화한 글입니다.

또 다음으로, 보다 정적인 예도 어느 효부(孝婦)의 인간적인, 보다 인간미 넘치는 작품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철》이라는 수필입니다. 치매에 걸린 90세가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작자입니다. 치매끼가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는 화분에다 물을 줍니다. “내 새끼, 예쁜 내 새끼”하면서 말입니다. 해서, 10여개나 되던 화분을 죄 썩혀버렸지요. 마지막 하나 남아있던 문제의 소철 화분마저 썩혀버려, 그걸 내다버리면서 생각합니다. ‘물 줄 화분이 없어졌으니 시원하다’가 아닙니다. ‘이것 마저 내다버리면 무엇으로 소일을 하실까’라고 생각하며 다음 장날에는 새 화분 몇 개를 또 사다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감동입니다. 병든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인간미 넘치는 정애가, 보다 정적인 마음이 읽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정 : 창작수필 제작 도 중요하지만 다른 계획도 있는지요?

오 : 다른 계획이요?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내 나이로는 너무 벅찹니다. 대학은 벌써 정년을 했지만, 1년에 4번 창작수필을 펴내는 일과 1주일 내내 문학 강의하는 일로 바쁩니다. 어떤 이는 강의료 수입도 만만찮겠다고 비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강생 수도 예전 같지 않고, 수당도 반반이니까요. (웃음)

좀 보태서 말씀드리자면 강의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수필의 문예화를 위해, 글을 쓰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적으나마 그 문예화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수강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솔직하게 붓가는대로만 쓰면 되는 게 수필이라고 여깁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붓가는대로 부담없이 쓰는 게 수필이지요. 자전거를 손놓고 타는 사람처럼요…하지만 손을 놓고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그 사람은 적어도 자전거 타기 10여년은 훨씬 넘은 경험자들이지요. 수필도 인생살이의 경험과 경륜 쌓기, 그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라고요. 그렇게 말을 하면 대부분 수긍을 합니다. 해서, 하다 지치면 創作隨筆은 폐간을 할 지라도 수필 강의만은 쓰러지는 그날까지 계속할 계획입니다. 과욕인가요?

정 : 1970년대 수필가와 2000년도 이후 등단하여 활동하는 수필가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오 : 그 차이점이라면, 그들이 쓴 작품의 차이, 곧 주어진 소재에 동화하고 자기화하는 시각이나 그 내용의 차이라고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수필은 ‘自己文學’입니다. 같은 산문이지만 소설과는 달리 수필의 주인공은 열 편이든 백 편이든 모두가 작자 자신이란 말 뜻입니다. 그 점은 초기나 현재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신변적인 점에서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소재에 접근하여 동화하고 자기화하는, 즉 주제화하는 시각이나 과정은 같지가 않습니다. 초기 수필, 즉 과거의 작품들은 주로 자연이나 사물의 특성을 추출하여 ‘觀照’라는 그릇에다 담았지만 현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관조적인 작품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신선하면서도 투명하고, 멋스러우면서도 우아한 ‘意味化’란 그릇에다 담습니다. 그게 큰 차이점입니다. 이는 생활의 다양화나 의식의 다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이고, 진화라고도 볼 수가 있겠지요.

40여 년 전입니다. 그 의미화란 말을 우리 수필문단에 처음 내놓았을 때 적잖은 저항이 없지 않았습니다. 의미화가 곧 주제화가 아니냐고요. 같은 뜻이라고요. 하지만 결코 같지가 않습니다. 동의어가 아닙니다. 의미화란 곧 주어진 소재, 즉 대상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인 이해요, 해석이지요. 주제 이전의 작자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관이나 의미부여입니다. 좀 비약하는 예가 되겠지만, ‘낙엽’을 관조라는 그릇에다 담으면 ‘이별’이나 ‘조락’이 되겠지만, 의미화의 그릇에다 담으면 ‘시작’이나 ‘나그네’란 전혀 다른 뜻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게 주제가 아닌 의미화의 실체입니다. 현재의 수필가들이 주로 이 수법을 쓰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로서 바로 이 점이 초기 작가들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산문을 대표할 미래문학으로의 격상을 위해서라도 이 작법은, 아니 이 ‘手法’은 적극 권장해야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정 : 수필가의 수필가들을 위한 문학지도 필요하지만 독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문지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겠지요?

답 : 우선 발표지면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부터 짚고 가야겠네요. 전문지들을 일러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씀하셨는데 옳은 지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솔직히 말해 작금의 전문지들은 서로들 동인지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의 〈創作隨筆〉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창간 20여년이 되고 보니 출신 작가들 또한 200명이 훨씬 넘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1년에 한두 번의 지면은 드려야 합니다. 그건 모지(母誌)의 책임이고,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수필가들의 소통은, 수필문학의 저변확대는 되어야겠지요. 그럴려면 크게 보아 두어가지 길이 있겠다고 봅니다. 그 하나는 작가와 작가 간이고, 그 둘은 전문지와 전문지 간의 소통입니다. 작가들 간의 소통은 언제가 될 런지는 모르지만 수필문학의 위상이 높아지는 그날까지, 세월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고요, 문제는 전문지들 간의 소통입니다. 저도 전문지를 발간하고 있는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동업지간의 교류는 부끄러운 지경입니다.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인근에서도 서로 주고받지를 않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더러 보내오는 전문지를 읽다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작가를 만나면 꼭 메모했다가 다음 호에는 원고 청탁을 빠뜨리지 않거든요.

그러니 전문지들 간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또한 그 소통만치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성의있게 타지의 작품들을 읽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 ‘수필의 날’의 미래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 ‘수필의 날’제정이나 그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엉거주춤한 이런 입장에서 소감을 펴는 게 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왕 기회를 주셨으니 한두 마디만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공과입니다. 회원 간의 친목은 물론 소속감을 튼튼하게 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창작의욕도 적잖이 고무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모였다 헤어지는 1회성으로는 수필문학의 위상정립이나 미래문학으로의 이정표 세우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두 번 세 번 자주 모일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러니까 문협 수필분과나 ‘수필의 날’의 몫은, 좀 재정이 뒤따르는 일이겠지만, 공로상이나 작품상 등 창작의욕을 고무하는 일도 늘리고, 작품발표의 기회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면이나 세미나 등….

뭐니 뭐니 해도 ‘작가는 작품으로’의 신념으로 시나 소설을 능가하는 감동작을 양산하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수필의 날을 지키고, 육성 발전케하는 한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넘는 말이 되었습니다.

정 : 한국수필가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 : 먼저 이 나라 수필문학이란 텃밭에 풀을 뽑고 돌을 고르고, 초석을 놓아 큰 집을 짓고 가신 고(故) 조경희 선생님 영전에 삼가 머리숙입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뒤를 이어 그 텃밭의 주인자리를 굳건히 지켜오신 여러 이사장님과 ‘한국수필’ 편집·제작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수필은 산문을 대표하는 미래문학이라고들 합니다. 한국수필가협회야 말로 그 무거운 멍에를 메고 앞서가는 향도역(嚮導役)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지면의 내실화, 구성의 참신화, 월간지로서의 승격 등 명실상부한 수필계의 주역으로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 또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서 회원 간의 격의 없는 소통의 문을 열어주시고, 작품 발표의 장도 넓혀 주시고, 참신한 수필모형과 이론 제시로 장르의식 구체화에도 큰 몫을 다한 그 노고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쉬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 여러모로 수필문학계의 모범이 되고 있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수필과 함께 행복하시기바랍니다. .

 

 

오창익 교수 약력

계간『창작수필』1991년 창간, 발행인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출생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 취득.1965 『조선일보』신춘문예 소설《소각자》가작(당선작 없는)입선 1977 『한국일보』신춘문예 수필《해바라기》당선

수필집《첫 번째 실수》《해바라기 담 너머 피다》《북창》《새야 새야》《흔들리는 당신에게》《경의선》《북창을 향하여》

이론서《한국수필문학연구》 《한국문학개관》《수필문학의 이론과 실제》

2001 인천시립대학 교수 정년퇴임(녹조근조훈장)

- 수상

에세이 작품상, 동포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