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구인환 교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권남희 후정 2012. 7. 15. 18:42

문파문학 여름호 (발행인 지연희 수필가. 시인 )

 

아직도 자신만의 인생을 문학적으로 완성해가고 있는 B형 남자

구인환 소설가

일시: 2012. 6.1

장소: 세종문화회관 지하 이탈리안 레스토랑

대담: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에디터 권남희

<월간문학>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사)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저서: 『미시족』『시간의 방 혼자남다』『육감&하이테크』등 5권/   수상: 22회 한국수필 문학상 .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왼쪽 구인환 교수와    

세종문회회관은 전시와 행사로 늘 북적인다. 건물외벽에는 ‘결정적 순간’ 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마지막 전시라는 흑백광고가 눈길을 끈다. 지하레스토랑으로 내려가니 로비에도 행사가 진행중이다. 지연희 문파문학발행인이 걱정스러워 조금 늦고있는 후배 마중을 나와있다.

언제보아도 단아한 외모에 자기관리가 철저할 것 같은 인상의 소설가, 구인환교수가 벌써 기다리고 있다.

<거기가 어디라고? >

선생이 요즘 쓰고 있는 소설 제목이다. 주례를 150번 넘게 하였으니 ‘거기가 천국일까’ 농담을 던진다. “주변에서 많이 갔어. 김용철, 윤병로, 신동한, 유재용 , ....”고 짤막하게 말하는 선생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가슴에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몇 년 전, 열여덟에 결혼하여 함께 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도우미와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이야 없겠지만 노년을 홀로 지낸다는 것이 글쓰는 일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으리라. 자녀분들이 모두 교수나 교사로 재직 중이니 선생말대로 ‘ 남들이 볼 때 큰 사고없이 잘살았다’고 하겠다. 삶은 어차피 혼자 걷는 길임을 느끼지만 선생을 보면 조영남의 회개장터 노래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있을 것은 다 있다”

단신이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소설가로, 서울대학교 출신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은퇴하여 이제 홀로 살고 있다.

선생을 멀리서라도 뵙기 시작한지 도 등단한 년도부터이니 이십 오 년이 되어간다. 워낙 눈에 띄는 체격이지만 한국문인협회 세미나에는 꼭 중요한 일을 맡으시곤 했다. 1989년도 미국세미나에도 같이 갔는데 당시는 분야가 다르고 워낙 대선배라 어려웠기에 가까이 하지를 못했다.

1929년 출생인 선생은 문단생활도 반세기가 넘었으니 해를 넘길 수록 감회가 남다르고 이제 막 시작하는 문학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작가활동을 할 때는 위계질서가 잡혀있었지요. 주 무대가 명동이었는데 문단이 그리 혼탁하지도 않았고 우리 문단에 존경하고싶은 선배들로 시인이신 박목월, 조지훈, 김동리 소설가. 박종화 소설가 그들은 모두 선비였어요. 지금 양적으로 많아진 문인들 속에는 진정성을 찾기 어려운 ‘장식문인’들이 간혹 보입니다. 창작에 전력투구하기보다 상을 받는 일에 더 욕심을 보이고 이름 내는 것에 몰두하면 문학인이라 말할 수 없지요.

하지만 문단 후배로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은 고학력 지식사회이기 때문에 웬만한 표현력은 갖추어 글을 쓸 수 있고 모두 유명인사가 되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식 사회가 아니었던 1950-70년대 당시, 어찌보면 계몽주의 사회에서의 작가들이 희소성으로 존경받던 시대와는 다르다고 본다. 그 때보다 문학계로 진입하고 싶은 숫자도 많아지고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 이 후 작가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문단에서도 획기적인 대안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텔리 층의 작가수용 문제를 물었다.

선생의 답변은 간결했다. 문학의 질이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이든 작가정신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요지이다. 디지털 시대 어느 누가 4-5년 이상의 습작기간을 견디려 하겠나. 인내심도 없이 등단 하려는 옥심을 부리다보면 문단을 흐리는 일도 일어난다. 소명의식이 약하면 상업주의로 치중할 것은 뻔하다. 잡지를 해서 돈을 벌려고 마음먹으면 그 때부터 신인작가 발굴 문제나 문학상에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고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 수단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본다. 후배 작가가 많아지는 것은 환영한다.다. 왜냐하면 TV만 보아도 채널이 수백개로 늘어나 볼거리, 놀거리가 다양해진 것을 볼 때 많은 작가들을 디양하게 활동을 하면 우선 양적으로 풍성해보이니 좋을 것이다. 온 국민이 컴퓨터에 매달려서 책을 읽지 않으니 여러가지 이유로 문학에도 젊은층이 사라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문학정신은, 모임이나 쫓아다니고 문단정치를 하며 기웃거리기보다 일단 작가가 되었으면 독서도 많이 하고 문학의 혼을 찾아 길을 떠나는 데 있다고 본다.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도 수긍을 한다.

“ 잡지 발행인으로서 책임의식이 필요하지요. 신인작가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초를 쌓는 2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이런 문제도 있어요. 사람들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지요. 카톨릭 신자가 되려면 1년 이상 교리공부와 예비신자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제 그렇게 해서는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까 6개월로 줄였지 않나요? 어느 곳은 3개월도 하기도 하고... 정신만 강조하면서 고행을 시키기에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봅니다. 변화를 따라 절충해나가는 방안도 필요하지요.”

 

90여 편이 넘는 선생의 논문 제목 중에서 <이광수 소설연구>와 < 황순원 소설 극적양상 연구>가 눈에 들어온다. 만약 선생이 다시 소설가가 된다면 어떤 취향일지 물었다. 선생은 망설임없이 ‘황순원 소설가’라 한다. 결벽증 같은 섬세함과 순수함을 느끼신 때문일까..

항순원 선생과 같이 술자리를 했던 기억을 말씀하신다. “ 어느 날 술을 같이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의 단편 소설 <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한곳만 바라보고 있어.” 순결한 몰두를 선생은 말하고 있다.

시집도 낼 것이라는 선생의 시에서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혹시 감춰둔 사랑의 그림자라도 있을까, 연애담을 듣기위해 이야기를 꺼냈지만 선생은 역시 노련하다. 보편적이면서 여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리를 말해줄 뿐이다.

남자들은 일생동안 자기를 완성 시킬려고 할 뿐이다. 연애를 할 때도 심지어 남자는 늘 공간을 만들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했어도 부인하고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여자가 갖고 있을 때 그 여성에게서 장점을 뽑아 자기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한다. 그게 바로 남자의 속성이다.

사루비아 戀歌- 丘 仁 煥-

丹楓은 붉은 가슴을/ 청자빛 하늘에 내 놓고 /시들은 달맞이꽃이

하아얀 아카시아꽃을 탐하면서/ 사루비아 타는 불길/ 용광로를 닮아가는데

느티나무집 가랑잎 낙엽을 밟으며/ 오후의 彩色畵를 가슴에 안는다.

선생이 신사적인 사랑에 금기가 있다며 알려주는 세가지는 이기적인 사람에게 던지는 경고같다.

첫 째 同道의 길을 가는 사람 둘째 더블 플레이 셋째 자기를 버려라

아직도 교재로 쓰이고 있을만큼 《문학개론》은 분학 이론서로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전업작가는 아니었고 교수가 본업이었기 때문에 문단에서는 분명 불리한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봐야겠다. 게다가 내성적인 성격이고 문단전면에 나설 수 없는 교수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작용을 했다. 박종화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현대문학 3회 추천을 거쳐 등단했고 나름대로 왕성하게 섰지만 대중적인 사랑을 챙기지는 못했다. 다만 교과서에 오른 <영정>단편은 문덕수 교수가 문학이론으로도 성공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을 해주어 만족했다.

‘구인환 교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논술관련 서적이다. 논술관련 시장이 한창일 때 서점에서 책을 집었다하면 교수님이름이 감수로 들어간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인세로 빌딩도 사시지 않았냐고 짓궂게 물었다.

이름만 도용단하는 경우도 많았고 어쨌든 신원문화사가 덕분에 빌딩을 샀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200만부가 팔렸으니 엄청난 판매를 올려 논술시장의 위력을 느꼈다. 좋은 논술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입시에 매달려 정서가 메말라가는 현상이 걱정되었다.

선생의 말씀은 밤새워 들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주옥같았지만 건강이 염려된 것도 사실이다. 세종문화회관 큰 길에서 택시를 잡아드렸다.

20세기부터 21세기를 통과하고 있는 인물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만나고 헤어진 것이다.

여름 해는 길어 날도 저물지 않은 세종로에서 선생이 타고 가는 택시의 꽁무니를 바라본다. 선생이 던져준 말씀에 위안을 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책을 벗하는 국민은 흥하고 책을 버리고 놀이에 빠지는 국민은 쇠퇴하게 된다. 문학의 생명은 바로 이 삶을 부풀게 하고 문학을 生活化와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데 있다. 여기에 문학의 본령이 있고 다매체의 정보시대에도 슬어지지 않는 문학의 향취가 있고 그 생활화의 활력이 있다. 끝으로 존 러스킨(J.Ruskin)의 말은 정보사회의 문학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매우 시사적인 말이다.

“위대한 민족은 자기네 자서전을 세 가지 원고로 쓴다. 한 권에서는 자기네가 무슨 일을 했는가를 적고, 또 한 권에서는 자기네 예술에 대해 쓴다. 그리고, 또 한 권에서는 자기네 언어에 대해서 쓴다.”

구인환 약력

<동굴주변>(1960 문예)와 <판자집 그늘>(1961 현대문학)으로 문단 데뷰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문학부 국어과 졸업 .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수료(문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수료(문학박사)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수상 주요섭문학상 . 중화민국문화훈장 . 한국소설문학상 .월탄문학상 등 다수

논문 : <작가와 문체> > <이광수 소설연구> <황순원소설의 극적 양상> 등 논문 90여편

단편: <산정의 신화> <벽에 같힌 절규> <숨쉬는 영정> 등 단편 150여편

중편 : <입주기><촛불결혼식><살아 있는 날들><용두골 신화> 등 13편

장편 : <움트는 겨울><일어서는 산>(상하)<별들의 영가><동트는 여명> 등 9편

소설집 : 산정의 신화, 뒹구는 자화상, 벽에 갇힌 절규, 숨쉬는 영정, 촛불결혼식등 다수

수필집 : 가을에 온 여인, 흐르는 세월 그리고 소망, 사루비아의 정열로 벽돌을, 등 450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