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 인간과 문학 창간호(편집인 채문수. 주간 유한근 편집장 이노나) 창간사 서정환 . 창간축사 황금찬 권두영상시 문정희
시-김후란, 유안진. 허형만. 이영춘외 /단편소설-김지연. 김선주.공영희
수필- 김병권.유혜자.정목일. 지연희 .반숙자.김홍은. 권남희 .강돈묵 . 외
문학과 미술이야기-윤병모/ 디지털시대의 문화콘텐츠-박찬길/ 해외문학스케치-고노에이지ㅣ
애도에 대해
권남희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이술 저술을 사들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실 일도 없는데 술에 이끌리고 있는 나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술을 즐겨마셨지만 나는 아버지를 닮아 술을 마시지 못했다.
아버지와 나는 술 마시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고통을 풀어내느라 시간이 갈수록 심한 말을 던져 어머니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불평은 오직 한 가지, 술 좋아하는 처가와 친구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거였다.
“누가 김씨 집안 아니랄까봐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나”
“술친구가 친군가, 술 먹은 개지”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외삼촌도 술을 좋아하여 외기에 가면 대부분 거나하게 취한 얼굴이었다.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는 더 애주가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뜩이나 핑계가 없어 술을 마실 수 없는데 아버지가 처가와 친구를 걸어 트집잡으니 그에 대한 반발로 보란듯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어머니는, 그 뻔한 속을 번번이 아버지에게 들켜 아침이면 깐깐한 아버지에게 몇 배로 무시 곁들인 보복을 당하면서도 술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아버지와 부딪히고 술로 흐트러지는 어머니 모습은 사춘기의 나를 슬프게만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면서 충격을 받아 당장에 술을 끊을 결정타가 무얼까 골몰했다. 겨우 생각해내어 가슴을 아프게 찌를 수 있는 말이 아버지처럼 집안을 들먹이는 말이라니.........
“나는 절대 술마시는 집안과 결혼 안 할거여!” 딸에게까지 어머니의 집안을 거론하는 수모를 겪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영향인지 나는 술 한방울도 입에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누구인가. 시부모님과 살고 있는 딸집에 와서도 술 외교는 양가 산맥을 넘나들어 식사시간에 조금의 반주를 즐기는 시아버님과 술잔을 트고 만다. 소심하고 말 수없는 며느리를 겪다 거칠 것 없는 어머니에 대해 놀랐는지 어느 날 시아버님은 ‘어머니가 한량이구나’ 하셨다
집안일로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아예 남동생 둘과 술상을 펴놓고 ‘썩을 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걸쭉한 말로 시작하여 떠들썩한 판을 벌인다. 모두 기들이 어찌나 센지 목소리는 크고 곧 싸움판이 벌어질듯 위태로운 대화법에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다. 술을 끊어도 시원찮은데 더 술에 의지해가는 어머니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2007년 담낭암 말기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70초반의 좀 젊다싶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숨이 끊어지던 새벽 나는 뜬금없이 일어나 “ 고향에 내려가면 밤새도록 어머니와 술 잔을 기울여야겠다”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새벽 어머니는 투병하느라 그간 마시지 못했던 술 한잔을 마지막으로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장례미사에서 나는 다른 일보다 어머니와 술 한 잔 못한 채 영원히 이별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져나가는 통증으로 신부님이 ‘김 세실리아 자매’를 불러줄 때 폭포처럼 눈물을 쏟으며 화장장을 가도록 멈추지 못했다. 유골단지에 술 한 잔을 받은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묻혔다. 그곳에서도 아버지에게 타박이나 듣지 않는지.
이상한 것은 그 이후 내가 대형 마트에 가거나 여행을 가면 귀하다싶은 술을 사들고 오는 일이었다. 그 술은 잘 두었다가 모임에 들고나가 사람들에게 따라주곤 했다. 좀 가깝다고 느끼는 몇 몇 모임에는 술을 갖고나가기를 몇 년 동안 그랬을까. 나도 내가 신기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멜랑콜리 미학-김동규철학박사》책을 읽다가 ‘애도’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상실의 상처는 거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남은 이는 상실의 슬픔을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애도작업을 수행한다. 슬픔을 통해서 슬픔을 치유하는 애도작업은 떠나감을 긍정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다 ’망부석‘이 되지않기 위해, 성숙한 삶을 위해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죄책감을 덜기위해 제사를 지내고 묘지에 가 꽃을 놓고 .....’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향한 죄책감을 덜기위해 무언가 나름대로 절차를 밝고 있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흘린 눈물로 나는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틈만 나면 나를 울렸다. 술병을 보면 어머니에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단지 술을 마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함부로 했던 시간들이 떠나지 않은 채 후유증처럼 나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나는 술을 보면 술을 샀다.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을 사두었다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 들고 나기 마실 것을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무어라 말할까 ,나도 몰랐던 무의식의 애도절차였다. 가시처럼 가슴에 박혀 있던 죄의식을 평생 돌아보지 않을 것 같았던 술로 다시 뽑아내느라 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 모임에 나가 그들을 이해하며 술에 취한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나의 술 실력은 늘지 않아도 인생 후반기를 술 마시는 친구들과 인연을 맺어 술 권하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
권남희수필가
1987년 「월간 문학 」수필 당선.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덕성여대. MBC아카데미 잠실,강남,관악 수필강의
수필집『육감&하이테크』등 5권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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