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권남희 수필작품 순수문학 2월호 <가위>

권남희 후정 2013. 2. 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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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 2월호수록원고

 

가위

권남희수필가

 

아이의 몸에서 자꾸만 머리카락이 나옵니다. 아무리 털어도 머리카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양말에도. 속옷에도 쉐타에도 머리카락은 붙어있습니다. 손님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염색 해주고 파마를 하는 일에 하루종일 매달리다 오는 아이의 옷에는 머리카락과 염색약과 파마약이 항상 묻어 있습니다. 옷을 사고 멋부리는 일에 올인하던 아이는 이제 좋은 옷도 입지 못합니다. 엄마의 마음은, 식사시간을 맞출 수 없어 일하다가 선 채로 먹곤 하는 아이의 밥에 머리카락이 날아들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아이의 숨결을 따라 머리카락이 몸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말은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입니다.

‘가위는 두고오는데 머리카락은 집까지 따라오는구나!

가위질로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무게가 실려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무게중심을 잃은 머리카락은 아이의 몸에 달라붙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 한 쪽에는 사라지지 않은 슬픔이 있어 늘 눈물이 납니다.

그 때 아빠가 있었더라면 좀 더 공부를 잘하지 않았을까 , 다른 친구들처럼 가고싶은 대학을 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만 떠올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같이 살지못하는 아빠를 얼마나 그리워한 아이였는지 일기를 보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아빠 없는 자리는 크기만 하여 소심해진 채 남자로서 커나가야 할 가닥을 잡지 못해 누나만 따라다니던 아이, 엄마 손에 이끌려 남자들이 하는 어지간한 운동종목은 다 배우러 다녔던 시간이 벽에 걸려있는 상장으로 말을 할 뿐입니다.

사춘기가 되자 아이는‘엄마는 남자를 알아?’ 말대꾸를 시작하며 멀어져갔습니다. 새벽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느라 현관입구에 불을 켜 둡니다. 어두운 골목을 들어오다가 불을 보면 혹시 엄마의 마음을 알까 기대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골목은 언제나 아이의 발자국소리보다 신문떨어지는 소리가 먼저 들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방황하는 아이에게 나는 자꾸만 고맙다는 편지를 씁니다.

“네가 있음으로 엄마는 비로소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구나. 내게 태어나고 내게 있어주어 고맙다. 사랑한다.”

공부를 하지 않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네 잘못이 아니야’ 말해줍니다.

그 많은 대학을 우수수 떨어져 추풍낙엽이 된 채 풀죽은 아이에게 ‘걱정마 뭐든 되겠지 ’ 말합니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머리 손질과 스타일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나온 유명 헤어디자이너의 미용학원을 다니고 자격시험에 합격하면서 가발이 아닌 , 연습할 진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초등학교 나온 선생님보다야 학력은 조금 길었겠지만 그를 따라잡으려면 그의 곁에서 천번 만번의 가위질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처럼 좋은 가위를 갖는 꿈을 꾸며 집에서도 틈 나는대로 가위질 연습을 했습니다. 가위만 들었다고 가위가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가위를 들고 봉사활동도 다니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미처 디자이너가 쓰는 비싼 가위를 사지못해 천원샵 가위로 연습 할 때 머리를 망칠까봐 모두 달아났지만 엄마인 나는 머리를 맡겼습니다. 솜씨는 서툴고 가위가 말을 듣지 않아 자꾸만 잘라내다 아주 짧은 사내아이 머리가 되기도 하고 뭉텅이로 잘려 머리결에 구멍이 날 때마다 “ 멋지구나” 말해줍니다. 나는 몇 년간 미용실을 가지않고 아이가 연구해내는 스타일의 연습용이 되어 갖가지 머리를 연출하고 다녔습니다.

미용실 바닥 쓸고 머리를 감겨주고 오고가는 손님에게 절하며 서있기 수년이 지났습니다.

때로 “이걸 머리라고 했냐. 원상태로 복구시키라“며 수고비는 커녕 돈을 챙겨가는 손님을 만나기도하고, 염색약과 파마약으로 손은 늘 허물이 벗어지고 날선 가위에 손을 다쳐 지혈이 안 되는 일을 겪으며 용케도 버틴 시간들이 가위에 얹혀 있습니다.

'엄마, 이제 정식으로 디자이너야. “

아이가 처음 받은 명함을 줍니다. 선생님이 쓰던 가위 하나도 물려받았습니다.

어느 날 몇 달 동안 모은 돈으로 사둔 가위를 선물하기 위해 아이의 일터를 갔습니다. 아이의 입학식에 가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떨렸습니다.

아이는 가슴에 꽃을 달고 열심히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손님 눈높이에 맞추느라 무릎을 꿇고 웃으며 행복해하는 표정입니다.

나는 아이의 테이블에 가위와 함께 ‘가위! 내 아들을 부탁해’ 그렇게 쓴 편지를 두고 나왔습니다.

아이가 쓰는 크고 작은 가위들은 잘 정돈이 되어 마치 졸업장처럼 빛나는 걸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가위들은 제 각각 할 일을 기다리느라 당당합니다.

 

권남희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롯데문화센터 잠실. MBC아카데미 강남. 관악 수필강의

수필집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육감&하이테크』『시간의 방 혼자남다』등 5권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5-8 엘지팰리스 19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