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월간 한국수필 8월호 발행인 에세이
징소리
鄭 木 日수필가 (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
“징— 징—”
장고 소리, 꽹과리 소리 가운데 황소 울음소리처럼 뒤끝이 올라가며 울려 퍼지는 징소리, 그것은 섬세하거나 정교한 음률이 아니고 투박하나 웅장한 울림이다.“징— 징—”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경쾌한 목청이다. 징소리는 사람의 얼을 뺏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리며 어느덧 우리의 가슴을 울려 놓고 만다.
농악놀이를 보고 있으면 꽹과리 소리에 흥이 나고, 태평소 소리에 신명나고, 징소리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도취 속에 빠져 버리게 된다.
징소리에 넋이 빠져 버리면 체신도 격식도 필요 없어진다. 모두들 어깨춤을 으쓱거리며 궁둥이를 흥에 겨워 흔들며, 춤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놋쇠로 만든 징에 어떤 마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민중을 하나의 일체감과 황홀감 속에 빠뜨려버리는 징소리…….
징소리를 들으면, 우리 민족의 심지가 얼마나 깊고 웅대하였는가를 느끼게 된다. 서양 악기인 심벌즈에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장엄하고도 가슴속을 짜릿하게 해주는 박진감과 흥분에 떨게 하는 전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징소리는 민중의 가슴에서 울려오는 소리이다. 한과 슬픔과 외로움을 둘둘 말아서 던져버리고 모두가 한 마음이 돼 어울리는 신명의 리듬이다. 징은 혼자서 다루는 악기가 아니며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켜 얼큰히 흥이 오른 민중들이 함께 울리는 악기인 것이다. 악기라기보다 우리 겨레의 마음과 생활에 리듬을 불어넣는 신명의 도구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81년도 늦은 가을, 나는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서상면을 가르는 접경에 위치한 외딴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2대째 징을 만들어 오고 있는 함양 징 제조의 기능인 오규봉(吳圭鳳)씨를 만나 보는 일과 징을 만드는 징점을 구경해 보고 싶어서였다.
오씨는 해발 6백 미터의 국도변의 외딴 집에 징점을 지키면서 징소리를 가다듬으며 살고 있었다. 살림집 마당 옆에 지어진 징점에 들어서자, 이글거리는 조개탄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오씨는 당시 29세로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징점을 40여 년간 지켰던 장인(匠人)인 아버지 오덕수(吳德洙)씨가 돌아가자 함양징의 맥락이 끊어지게 된 것을 안 그는 서울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의 징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징을 만드는 일엔 어설픈 풋내기에 불과했지만, 어릴 때 눈여겨보아 두었던 작업 광경과 징소리를 들으며 징의 소리를 가다듬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떠나면서 ‘네가 징점을 지켜야 한다’고 하신 유언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오씨는 꺼져 있던 화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자금 문제와 기술 부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빚을 내어 자금을 마련하고 선친과 같이 일을 했던 징 장인(匠人)들을 모아 기술을 배우고 익혀 다시 불을 지폈다. 그의 외로운 몸부림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직 아버지의 기술에 비하면 까마득하지요.”
오씨는 징의 울림이 구성지고 길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중요한 것은 울림의 끝이 황소울음처럼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징을 만드는 일은 곧 우리의 신명과 흥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민중의 가슴에 환희와 활력을 불어넣는 악기를 만드는 일….
쇳소리를 가다듬어 그 속에 민중의 한과 비애를 짙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승화시켜 다듬어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징을 만드는 일은 캄캄한 자정에 일어나 조용하고 맑은 정신으로 작업을 시작하여 이튿날 오후까지 계속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기 위해선 징점은 마을에서부터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원래 징점을 차리는 데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삼수(三水)가 합쳐지는 곳이라야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함양징의 장인 오덕수 씨는 징점을 차리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지리산과 덕유산의 산정기가 뻗은 곳, 세 갈래의 개울물이 흘러오다 합쳐지는 이 외딴 곳에 징점을 차린 것이다.
평생 동안 징 일만 하다 세상을 뜬 그는 징소리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일까? 고요한 밤에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도 아랑곳없이 산마루의 외딴 집에서 세 갈래의 물소리를 들으며 징소리를 생각하며 많은 밤을 보냈으리라.
흘러내리는 물소리일지라도 다른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각기 다른 데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세 갈래의 물소리를 어떻게 하나의 소리로 조화시켜 놓을 수 있을까. 징소리를 만드는 비결이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한다.
삼수의 소리란 어떤 것일까. 깊은 산의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세 줄기의 물소리가 한데 어울려 과연 어떤 소리를 내는 것일까.
이 소리를 마음으로 알아듣고 그것을 소리로 다듬어 내는 경지야말로 장인적인 재질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선적(禪的)인 경지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징이 웅웅 울리며 내는 삼수의 소리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소리일지 모른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하나의 소리로 빚어 자연의 소리와 합일시켜 놓은 것이 징소리가 아닐까 한다.
징소리를 들으면 막혔던 가슴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한국의 청명한 하늘과 산의 깊이와 땅의 말씀이 한데 어울려 우러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징소리를 듣고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 수 없고 저절로 놀이판으로 빠져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게 만드는 것이다.
징은 가운데 부분과 바깥 부분의 두께가 다르다. 누구나 징의 틀은 만들 수 있지만, 본래의 징소리는 내기가 어려운 것도 이 까닭이다.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잔잔한 물 파문이 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징에 이와 같은 물 파문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과 새겨진 파장마다 두께가 다르게 된 것은 징소리를 가다듬는 비법일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징을 만들어 소리를 내어 보지만 우리 징소리를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우리의 징소리엔 한국인의 마음 바탕과 영혼이 소리로 울려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삼수의 소리인 까닭이다.
징소리를 듣는다.
한국의 소리, 그 마음이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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