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월간한국수필 2013년 11월호 (터키기행 특집 김윤숭,서원순.권남희.전수림. 이춘자 .이순영 .강승택,윤옥자

권남희 후정 2013. 11. 5. 15:00

 

 

2013년 월간한국수필 11월호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정기구독 02-532-8702)    

 

개미 호박보석

 

鄭 木 日수필가(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M 씨의 목걸이를 본다.

노란 호박보석만이 아니다. 그 안에 개미가 들어있다. 개미로 인해 하얀 목덜미가 근질거리지 않을까. 어떻게 개미가 호박보석 안에 갇히게 되었을까. 개미를 목에 달고 다니는 여인의 목덜미를 바라본다.

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다고 할 지리도 개미 호박목걸이보다 오래도록 관심 있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호박(琥珀)은 보석 중에서 유일하게도 식물성이다. 인간이 동굴에서 살 때의 유적 속에 발견되기도 하고 동양에서는 칠보(七寶) 중의 하나로 장신구로 애용돼 왔다. 생성된 시기는 대략 3천만 년에서 5천만 년 전이다. 신생대에 소나무의 송진이 화산활동으로 땅 속으로 묻혀 화석이 된 것이다.

여인의 목덜미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신기한 목걸이군요, 좀 자세히 보고 싶군요.” 허락을 받아 자세히 들여다본다. 호박보석 속에 꼼짝 없이 감금돼 있는 개미는 금방이라도 마법에서 풀려나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것만 같다.

개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연스럽게 몇 천만년의 잠에 빠져있다. 죽음을 맞은 모습이 아니다. 호박 속에서 움직이지는 않으나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략 3천만 년 전쯤, 개미는 숲 속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다 마법(?)에 걸려서 호박 속에 갇히게 된 것일까.

소나무는 송진을 내어 영원을 만들 줄 아나보다. 호박보석 속엔 몇 천만 년 전 소나무 숲과 솔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들어있다. 개미 호박보석은 몇 천만 년이 찰나임을 말해주고 있다. 삶과 죽음도 찰나이지만, 영원의 일부임을 알려주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은 한시적인 존재로써 사라지는 운명을 지녔다. 숨을 멈추기만 하면, 시간은 부패와 퇴색의 바이러스를 뿌려 망각 속으로 밀어 넣고 만다. 그런데도 소나무는 송진을 내어 호박을 만들 줄 알고, 조개는 진주를 품을 줄 안다.

소나무가 호박을 만드는 것은 영원과의 만남이 아닐까. 조개가 안으로 진주를 키우는 것은 영원과의 대면이 아닐까. 호박보석 속에는 수천 년 전의 햇살과 바람소리와 물방울의 속삭임이 담겨 있다.

 

어느 날, 창녕 우포늪에 갔다. 우포늪은 1억 년 전에 형성된 곳이다. 그 곳에서 물방울 화석을 본 일이 있다. 금방 증발하여 사라지는 물방울들이 화석 속에 영원의 모습으로 맺혀있는 모습을 보았다. 문득 태고의 빗소리가 들리고 빗방울의 촉감이 닿아오고 있었다.

 

소나무 송진이 호박 보석이 되려면 몇 천만년이 걸려야 한다. 어느 날 개미가 무리를 이루어 숲속의 소나무 위로 먹이를 구하러 가던 중, 송진 속에 빠져서 호박보석의 주인공으로 변해 오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미는 투명한 송진 속에 빠져 생명을 잃었지만, 영원 속에 그 모습대로 잠들어 있는 듯하다.

개미호박을 보고 있다. 썩지 않고 생생한 모습인 개미의 시체를 보관한 무덤을 목에 걸고 다니는 여인의 목덜미를 바라본다. 목덜미 위로 개미가 걸어 나올 듯하다. 희고 가냘픈 목이 근질거리지는 않을까.

  

 

호박 속에 갇힌 개미를 누가 마법에서 구해 낼 수는 없을까. 삼천만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생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개미보석이 황금빛으로 환하다. 보석들은 광석에서 캐내어 연마하고 가공한 것이지만, 호박이나 진주는 생명체가 이룬 결정체이기에 생명의 맥박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무리 어여쁜 여인이라 할지라도 1백년 미만의 삶을 누린다. 여인의 목에 걸린 개미호박은 몇 천만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월이 흐르고 언젠가 마법에서 풀려난 개미가 다시 깨어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