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월간 한국수필 1월호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수필가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한국인의 이상향(理想鄕)
鄭 木 日수필가( 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옛날에 한국인이 살고 싶은 곳, 유토피아는 어떤 곳일까.
자자손손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은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할까. 산수화 병풍 속에 등장하는 폭포수 쏟아지는 송림 곁일까. 복숭아꽃이 피어 있고, 사슴이 백도(白桃)를 문 채 서 있을지 모른다. 신선(神仙) 둘이 바위에 그려진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곁에 동자가 찻물을 끓이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인이 동경하는 삶의 공간은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과실이 열리는 곳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타고 가는 상여의 모습에 이상향(理想鄕)이 그려져 있다. 죽어서 혼령이 찾아가고 싶은 곳이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상여엔 꽃과 과일과 새의 모습이 보인다. 상상의 동물인 용(龍)이 형상화 된 것은 물이 있음을 뜻한다. 물이 있는 산 속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제나 먹을 게 있고 새가 노래하며 목마르지 않은 평화로운 곳을 지칭한다. 우리 민족의 민요 ‘아리랑’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에서, 가고 있는 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살기 좋은 무릉도원(武陵桃源), 곧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전쟁이 나도 참화(慘禍)를 입지 않을 곳으로 지리산 청학동을 들기도 했다, 교통이 불편한 깊은 산중이건만 오래 전부터 이 곳에 터를 잡고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한국인의 마음속엔 산 속 어디엔가 이상향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은 듯하다.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게 산이기에, 자연스레 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한국인에겐 타고 날 적부터 산과 친근하게 닿아 있다.
초등학생으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백지를 한 장씩 주고 상상화를 그려보라고 주문하면, 대부분 산이 그려지고 그 밑에 집을 그리게 됨을 본다. 자신도 모르게 산 밑에 집 한 채를 갖고 싶어 하는 심사를 표현한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산에 사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 사노라네
김소월 시인이 살고 싶어 하며 동경한 이상향도 산이었다. 우리나라는 산이 국토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산이 자리 잡고 있다. 산(山) 정기를 받고 태어나 산에 묻히는 일생이었다.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도 산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소망을 갖는다고 한다.
한국인의 전통 마을이나 선비촌, 양반촌에 가보면 산을 배경으로 마을을 이루고, 오순도순 대대로 삶을 이어온 것을 볼 수 있다. 집터를 고를 적에 되도록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를 고르고 햇볕을 잘 받는 남향받이를 택했다. 경북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과 선비촌, 경남 산청의 한옥마을 등도 어김없이 배산임수의 공간을 택하였다.
산이나 배산임수의 땅이 아닌 강변도 살기 좋은 이샹향으로 여겼다. 경북 영주에 있는 무섬마을이 볼만한 곳이라는 말을 듣고, 어느 날 무섬으로 찾아갔다.
물 위에 피어있는 연꽃 같은 마을을 보았다. 매화 가지에 꽃이 핀 듯한 마을이다. 평온 속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무릉도원을 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무섬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던 이는 이곳이야말로 이상향(理想鄕)이라 생각하였으리라.
낙동강 줄기인 내성천이 감싸 도는 물 위에 떠 있는 무섬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쾌적하고 안성맞춤의 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였을 듯하다. 오래 동안 좋은 삶의 터전을 살피던 끝에 마음이 닿아,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가도 좋을 낙토(樂土)라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삼면이 강물로 휘감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인 데도 터를 잡았다.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교통이나 소통이 어려웠을 테지만, 순수하고 맑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이곳이야말로 찾고자 했던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강물은 영원으로 흐르며 뭇 생명의 젖줄이 돼준다. 강은 생명의 어머니가 아닐 수 없다. 강변에 하얀 모래밭은 포근하고 정결하다. 한 알씩의 모래알은 수 억 년의 세월과 물에 깎여져서 돌의 영혼만이 남은 모습이다.
강은 여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성은 모성과 평화와 사랑의 이미지를 갖는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문화는 강변에서 꽃을 피웠고, 세계의 큰 도시들은 강을 끼고 있지 않은가.
영주 무섬은 절해고도와 같은 육지의 섬이다. 무섬은 물위의 섬이라는 뜻이다. 영주에서 흘러들어 온 영주천과 예천쪽의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아 나가고 있고 그 물길 주변에는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어 천혜의 절경을 이룬다. 이 곳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려면 맞은편에 오는 사람과 한꺼번에 건너 갈 수 없기에 한 쪽이 기다렸다가 조금 넓은 쪽에서 한 쪽이 지나간 다음 가야 한다. 무섬 사람들은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안부 인사를 나누었으리라. 장마 때는 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가기 마련인데, 해마다 마을 주민들이 다리를 다시 놓곤 했다.
영주 무섬에 와서 물 위에 핀 연꽃 마을을 보았다. 연꽃은 어떤 꽃인가. 바로 깨달음의 꽃이요, 연꽃이 핀 듯한 마을은 근심 걱정이 없는 낙토(樂土)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마음결이 모래밭 같이 순결하고 생각이 강물처럼 맑고 유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자연 속에 깃든 가장 안락한 삶의 쉼터를 보았다. 순수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룬 이상향이었다. 그곳엔 삶의 숨결과 마음이 모래밭이 되어 영원 속에 펼쳐져 있었다. 연꽃 향기와 매화 향기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품속에서 씨족들끼리 모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동경하였다. 인심이 좋고 사이좋은 마을 공동체를 꿈꾸었다. 현대엔 이상향이 사라지고 말았다. 수백 억 원에 호가하는 대저택이나 호화 아파트가 이상향을 대신 할 수 있을까. 물질로서 무엇이든 다 구할 수 있을지언정 자연에서 얻는 정서, 교감과 아름다움, 정신적인 충족이 없는 개인의 주거지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자연환경을 잘 가꾸고 쾌적하게 만들어, 이곳이 이상향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리라. 자신이 태어나고 숨을 거두는 곳이 곧 이상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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