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월간 한국수필 2월호
한국수필 지난 호 문제작품 합평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새로운 코너를 시도합니다. 매달 발표된 수필 중에서 개성있거나 문제의식을 가진 수필 3편을 선정하여 본회에서 추천한 위원 3분과 합평좌담회를 갖고 토의를 거친 다음 발췌 정리하여 수록하기로 했습니다. 글이 한편 발표되면 3가지 형태의 의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 그리고 작품 스스로 갖는 의도입니다. 다양한 읽기를 부탁드립니다. -편집국 -
월간 한국수필 1월호 합평작품
백승국 <양반을 기다리며> 양반을 기다리며.hwp
허표영<징치는 소년> 징치는 소년.hwp
김종란 <붓끝도 시립니다> 세한도.hwp
진행: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합평위원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 김학 (전북대 평생교육원 교수) 윤태근 (운현수필 회장)
권남희편집주간: 수필에서 주제의식은 인간의 몸에서 척추처럼 중요합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신용철: <붓끝도 시립니다>는 주제로서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으나 읽으면서 점점 그의 울부짖음에 빠져든다. 국보이기도 한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歲寒圖)를 통해 보는 서자의 아픔으로 역사를 고발하는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그의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며 부조리한 모순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많은 독자들이 이에 함께 하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징치는 소년>은 사물놀이의 다소 요란한 소리와는 달리 아주 조용히 생각하게 해 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사물놀이의 악기와 그의 역할들을 자연과 연결하여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가장 역할이 적은 것 같은 '징치는 ㅂ’ 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의 독자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김학: <징치는 소년>은 초지일관하여 주제의식을 잘 끌고 간 작품이다. 사고의 깊이가 느껴지고, 폭넓은 사물놀이에 대한 해설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낼 만하다. 이 한 편의 수필을 읽은 독자는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수필에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독자가 이 바쁜 세상에 작가의 음풍농월에 덩달아 춤을 추겠는가?
윤태근 <양반을 기다리며>는 폴 고갱의 강렬한 붓 터치를 연상케 하는 선 굵은 남성적 문장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읽었다. 말 그대로 양반의 범죄고발장인 작가의 준엄한 외침을 듣게 된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직설적인 자기 목소리로 주제를 이야기면 설익은 글로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불끈 주먹을 쥐고 목청을 높이는 분위기에 빠져 박수를 치게 된다. 그 이유가 뭘까?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앉은, 일명 힘센 것들의 부도덕한 갑질에 멀미를 당하고 있는 민초들의 분노를 대변함이 아닐까. 이는 작가의 사회의식과 정의감이 남다르다는 반증이다. 양반과 선비정신, 그 타락의 허상을 넘어선 죄악까지 작가가 보여주는 일그러진 양반의 모습은 옛날과 현재를 넘나든다. 그래서 사(士, 事, 使, 師)자의 패찰로 부와 힘, 명예를 거머쥔 현대판 양반님들을 질타하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붓끝도 시립니다>도 여러 가지 면으로 주목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제재가 참신하다. 우리 옛 그림 속 인물들이거나, 이를 관찰하는 또 다른 인물을 화자로 만든 상상력이 놀랍다. 일련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남다른 아픔의 멍에를 지고 숙명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민초들이 지닌 한(恨)의 형상화다. 이는 우리 민족정서를 이루는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권: 수필은 ‘붓가는 대로’의 자유스러운 쓰기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구성력이
약해보입니다. 독자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김:「양반을 기다리며」는 구성이 산만하고 단락 나누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퇴고를 하지 않은 글 같은 느낌이다. 서두부터 맞춤법이 어긋난 단어가 나오니 첫인상이 좋지 않다. 수필은 설명의 글이 아니라 묘사의 글임을 알아야겠다. 문장이 산만하면 독자는 헷갈릴 수 있다. 어떤 단락이 앞으로 와도 무방한 문장이 좋은 구성인가?
윤: <양반을 기다리며>가 오히려 무구성의 구성력을 치밀하게 보였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이지 않으면서 각 단락은 주제단락을 향해 긴밀하게 응축되어 군더더기가 없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와 미래의 희원으로 전개되는 입체적 구성법이 자연스럽다. 작가는 종결 강조법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묻고 있다. ‘너는 양반인가 쌍놈인가?’ 그리고 새해의 축원을 한다. ‘청청한 양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고. 새해 벽두 우리 사회와 나를 온전히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신: 물론<양반을 기다리며>에서 작가는 이미 머릿속에 얼개를 세워놓았을 것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보이는 시대상과 양반사회의 모순을 나열하면서도 청청한 양반을 기다리는 것은 양반과 선비를 같이 생각하는데서 오는 다소의 혼란으로 보인다. 정선의 행사가 갖는 의미를 보다 짜임새있게 설명하여 독자들의 이해와 관심을 이끌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권: 작가의 인생철학과 사고의 깊이를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신: <양반을 기다리며>는 정선의 「양반증서」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글의 내용으로 보면 양반보다는 ‘선비정신‘ 이 더 맞을 것 같다. 양반(兩班)은 조선의 계층사회로서 오늘날에는 앞서 「겨울이 시리다」에서 본 것처럼 비판적인 시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처럼 민중사학이나 좌파적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 양반증서는 작가의 철학에서 던져진 주제는 아니겠지만 독자들을 그가 가진 사고의 깊이로 끌고갔으면 더욱 좋았지 않았을까 한다.
김: <붓끝도 시립니다>는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깔끔한 수필이었다. 청마(靑馬)가 갈기를 세우고 힘차게 달리는 듯 문세가 기운찼다. 어휘 구사력이 뛰어나서 글맛이 난다. 편지글체의 수필인지란 존댓말로 되었다. 서자로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조목조목 다 했다. 정곡을 찌르는 글이다. 또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도 예리하다. 더 넣고 뺄 게 없을 정도다. 이런 글솜씨라면 더 이상 무슨 철학이 필요하겠는가.
윤 <양반을 기다리며>는 작가정신은 매우 치열하다. 우연히 받은 양반증서를 계기로 박지원, 정약용, 제우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허준, 조선시대의 사헌부 등 그의 탐색은 동서고금을 넘나들고 있다. 작가란 한 편의 글을 위해 얼마나 궁구해야 하는 존재인가를 잘 보여준다
권: 예술 장르에서 감흥과 감동은 대중흡인력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에서 감동을 받으셨는지요.
신: <징치는 소년>에서 지도교사와 징치는 학생 ㅂ 를 아주 조용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끝가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도교사의 끈기 있는 노력과 역상이 징 치기를 초기하려던 학생을 설득하여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자기를 다시 찾고 화합을 이루는 것에 대해 작가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붓끝도 시립니다>도 추사 김정희의 서자 김상우의 편지처럼 쓴 시대의 죄악을 고발하는 마음의 피를 토하는 듯한 아픔의 편지형식으로서 독자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의 언어들이 아주 세련되어 감동을 주기도 한다.
김:<징치는 소년>은 소곤소곤 들려주는 귓속말 같은 수필이다. 화자가 앞장서서 설치거나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상황을 그려주고 있어서 독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어 좋다. 문장이 매끄럽고, 구성이 탄탄하다.<붓끝이 시립니다>도 놀랄만한 흡인력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듯 세상을 버티는 힘은 붓에 있습니다. 벼루에다 고독과 한을 붓고, 벼루가 뚫리도록 먹을 갈아, 쓰고, 쓰고, 또 쓰십니다. 수천 장의 종이 위에서 우뚝 일어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십니다.” 평생을 붓과 더불어 살아온 추사 김정희를 단 석 줄의 이 문장에 압축해 놓았다. 깊이가 느껴진다. 비록 서자지만 피를 나눈 아들이 있는데도 양자를 들이는 양반가의 전통 때문에 아픔을 느끼는 서자의 한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이다.
윤: <붓끝이 시립니다>가 문체(文體)는 선이 약한 ‘우유체’를 바탕으로 ‘간결체’와 ‘하오체’에다 가끔 ‘독백체’까지 사용하여 근원적 한의 아픔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또 당시의 사회상과 현재 사회의 여러 이슈를 연계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감동을 준다.
<징치는 소년>은 사물놀이를 통한 조화의 미라는 원론을 넘어 인간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화자인 교사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주는 작가의 교훈이 상식적이어서 신선함을 잃고 있다.
권: 상투성은 모든 작가가 안고 있는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재나 문장, 완성도에서 어떤지요.
신: <붓끝이 시립니다>에서 다룬 문제는, 조선역사의 적.서(嫡庶)의 차별이란 사회적 모순은 이미 잘 알려진 주제이기는 하다. 이미 희대의 반항아 허균(許筠, 1569-1618)으로부터 『홍길동전』으로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허균 당대의 명재상 박순(朴淳, 1523-89) 의 서자 박응서(朴應犀)역시 허균과 함께 ‘칠서의 난(七庶의 亂)으로 희생된 역사도 있다.
김: 한국인은 식사시간에 주식인 밥을 먹으면서 상투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밥은 필수라고 받아들입니다. 문학에서도 밥같은 필수요소 ‘상투성’을 먹고 소화시켜 육화시킨 다음 새로운 형태를 빚어야겠지요. <징치는 소년>은 의도적 교훈성이 엿보여 상투적이지만 접근성에서 친근감을 얻었다고 봅니다.
윤: <징치는 소년>은 간접화자인 젊은 교사의 설명 내용과 작품 화자의 설명 내용이 한 단락 안에 구분 없이 진술된 부분이 있다. 전체적으로 정밀하지 못한 구성과 문장이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이런 소재와 주제를 다룬 수필 몇 편이 교과서에 수록돠었다고 본다.
권: 문학에서 형상화는 기본이지만 잘 이루어진 작품을 거론해주시고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신: <붓끝이 시립니다>가 세한도란 그림의 의미처럼 겨울과 세태의 차가움에다 추사의 서자가 느끼는 또 다른 혈육의 아픔을 알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다.<징치는 소년>은 개인적으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삼국유사』를 독일어로 번역하며 그의 축제를 벌이는데 그 복잡한 전시장에서 주최자인 군위군청 당국자들이 징을 치니 장엄하게 울려 퍼진 그 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울림의 형상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월간『한국수필』편집자가 선정해 준 3편의 수필을 한 편 한 편을 읽고 나니 수필의 맛과 수필의 멋이 저마다 달랐다. 똑같이 한글로 쓴 글인데 이렇게 수필의 맛과 멋이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10인 10색의 세상이고 취향은 개인적이기에 어느 한사람의 작품만 좋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다양한 표현력에 기쁜 마음도 있습니다.
윤: <붓끝도 시립니다>는 세한도를 그린 추사의 서얼 김상우를 화자로 설정했다. 화자를 통해 작가는 주장한다. 세한도로 형상화된 선비정신과 지고한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양반의 세계. 그러나 하늘과 땅을 아우르며 오묘하고 관대한 경지를 이루었던 추사마저 핏줄에 선을 긋는 일에는 냉혹할 수밖에 없었던 패악의 사회구조였다고. 그러나 작가는 절망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짓밟힌 민초를 애정으로 보듬고 있다. 이러한 인간적 시선의 감동은 우리의 삶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 수필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김종란 수필가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양반을 기다리며>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의 직설적이며 강한 목소리에 눌려 서정성이 약화되었고 형상화에 미흡하다. 수필쓰기에서 이론적으로 형상화는 알지만 실제 쓰기에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 편집자 傳 :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합평을 해주시고 좌담에 참석 해주신 신용철. 김학. 윤태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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