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014년 3월호 한국수필 500만원 상금 월산 문학상 등

권남희 후정 2014. 3. 6. 15:08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정기구독및 회원관리 서원순 사무국장  02-532-8702-3

나전칠기공예의 미

 

鄭木日수필가(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우리나라 나전칠기나 목공예를 장식하는 문양엔 한국인의 마음이 담겨있다. 한국인이 염원하는 행복한 삶의 모습을 표현해 놓았다. 소나무, 당초, 국화, 매화 등과 장수를 바라는 십장생(十長生)이 등장한다. 전통 문양은 어느 시대나 인간이 갖고 싶어 하는 부귀영화(富貴榮華)의 세계를 축약해 놓았다. 행복의 요소는 민족 간의 인생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장수, 부귀, 건강, 행복이 그 바탕을 이룬다.

   

1974년에 아내가 결혼예물로서 들여온 통영 나전칠기 3층 농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20여년 지난 어느 날, 아내가 불쑥 방안만 차지할 뿐 이 농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물이 되어 가져갈 사람도 없을 터이니 버리자고 했다. 나는 “우리 집의 보물은 그것 밖에 없다.”고 손을 내저었던 일이 생각난다. 통영 나전칠기 방에 보내어 부셔진 곳을 수선하여 소중히 방안에 들여 놓았다. 빈 방에 놓여있는 나전칠기 농을 가만히 바라보며 완상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 공예품, 미술품 중에서 나전칠기만큼 화려하고 빛나는 것이 있으랴 싶다. 예술의 깊이와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미는 눈에 번쩍이게 화려하거나 장식적인 면이 있거나 찬란하지 않다. 소박하고 수수함 속에 깊은 맛과 경지를 보여준다. 담백하고 조촐하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은근미가 있다. 겉모양보다도 속 깊은 멋과 맛을 보여준다. 과장, 사치, 수식을 버리고, 본질의 추구에 닿아 있다. 단번에 눈을 끌어 당기지 않는다. 볼수록 깊어지고 삼삼하게 와 닿아 은은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을 위무하고 자연의 향기를 맡게 한다.

  한국의 문화재 중에서 나전칠기만은 유별나게 화려하다. 공예품 중에서도 섬세한 조형감각을 유감없이 발현해 놓았다. 나전칠기는 조개껍데기의 안 부분을 떼어내어 나무에다 그림이나 문양에 붙여 만든 공예품이다. 진주 빛을 머금은 조개나 전복의 껍데기를 그냥 버리지 않고, 공예품으로 꽃피워 놓았다. 다른 민족의 공예품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발상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나전칠기는 산의 나라이자 국토의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이 피어낸 공예의 꽃이다. 나전칠기는 산과 바다의 만남이요, 세월이 가도 잘 변색되지 않는다. 한국의 공예품 중에서 가장 화사하고 빛나는 제품이다. 한국미에도 이렇게 밝고 화려한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전칠기제품은 대부분 안방용이다. 농, 화장대, 보석함 등 여성들의 사용물들이다. 우리 집의 나전칠기 농은 고급품이 아니다. 혼자서 가끔 빈 방에 놓인 나전칠기 농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길 때가 있다.

 

큰 농은 두 칸짜리로서 왼쪽 칸에는 이불장, 오른쪽엔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너비 220cm, 길이 194cm, 폭 63cm이다. 제일 위쪽엔 희자문(囍字紋)과 국화문(菊花紋)을 연속으로 장식하였고, 위쪽으로 네모 안에 둥근 선을 치고 구름 드리운 소나무 속에 학 두 마리가 위아래에서 마주 보며 내려앉는 모습을 새겼다. 선경(仙境)의 세계이다. 중간 부분엔 휜 구름 두 장이 떠있고, 구름 위로 치솟은 청산의 봉우리로 두 마리 학이 양쪽에서 날아들고 있다. 아래쪽엔 송림(松林)으로 한 마리 학이 내려앉고 또 한 마리 학은 날개를 펼쳐서 내려다보는 곳에 네 마리의 새끼 학들이 주둥이를 치켜 빼고 어미를 맞고 있다.

  나전칠기 농에 표현된 세계는 곧 선계(仙界)나 이상향(理想鄕)이다. 국화, 소나무가 있고, 두 마리 학이 등장한다. 말할 것 도 없이 한 쌍의 부부임을 말한다. 청산(靑山)은 한국인이 염원하는 유토피아이리라. 송림은 청정의 공간을 의미하며, 네 마리의 새끼 학이 있는 둥우리는 가정을 의미한다. 한국인이 꿈꾸며 살고 싶어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표현해 놓았다.

  오래 된 혼수물인 나전칠기 농을 버리지 않고. 혼자서 바라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이 마음에 둔 삶의 행복, 그 구성 요건을 음미해 보고 싶은 때문이다. 능란한 모자이크 기법의 나전칠기로 형상화 된 한 폭의 행복도(幸福圖)는 곧 한국인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무심히 바라만 보아도 그 현란한 꿈의 도취 속에 빠져들어 신선이 된 듯한 감회까지 느끼게 한다. 전통문양에서 깃든 한국인의 마음에 영원의 별빛이 반짝거리고 숨 쉬고 있다. 행복과 생명의 말과 숨결이 들려온다. 마음이 피워낸 염원의 꽃이다.

  나전칠기는 중국의 역사서에 보면 한(漢)대에 칠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낙랑고분에서 칠기가 출토되고 이전부터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세련된 귀족문화와 함께 발전하였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새와 사군자, 산수화 모양으로 점차 변천하였다. 나전칠기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온 공예 분야 중에서도 고도의 기술과 장인 정신이 요구되는 창작 세계다.

  나전칠기의 세계는 가장 조화롭고 이상적인 생명의 세계이며 염원의 공간이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꿈의 세계일지라도,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지고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나전칠기 행복도(幸福圖)를 바라본다. 어느새 이 몸은 청산 속에 있고, 구름을 타고 어디서 학이 날아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