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014년 월간 한국수필 3월호 수록 합평

권남희 후정 2014. 3. 16. 16:12

2014년 월간 한국수필 3월호 수록 합평좌담회

월간 한국수필 2월호 문제작품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매달 발표된 수필 중에서 개성있거나 문제의식을 던지는 수필 3편을 선정하여 본회에서 추천한 위원 3분과 합평좌담회를 갖고 토의를 거친 다음 발췌 정리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이 한편 발표되면 3가지 형태의 의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 그리고 작품 스스로 갖는 의도입니다. 다양한 읽기를 통해 타산지석의 묘를 찾기 부탁드립니다. 매 호마다 선별기준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평가도 다르기 때문에 합평에 선정된 작품이 모든 면에서 완성도를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없음을 알립니다. -편집국 -

월간 한국수필 2월호 합평작품

권순악 < 이십리 길 어머니와 책>

조흥제< 乙丑 大洪水>

한명숙 <시제>

합평위원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 김학 (전북대 평생교육원 교수) 윤태근 (운현수필 회장)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쇼펜하우어의《문장론》에서는 글의 제목은 주택에서의 ‘현관’처럼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제목잡기의 중요성도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신용철:제목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책도 처음에는 다른 제목이었지요? 이번 발표작품 제목들이 대체적으로 편안한 반면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약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학:권순악의 <이 십리 길 어머니와 책>은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끌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산뜻한 제목도 아니고 제목에 다 담을려고 하는 욕심이 보였다.한명숙의 <시제> 이 작품의 제목 역시 독자들이 매력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편안해서 안정감은 얻었지만 작품의 제목을 지을 때는 자기 아들딸의 이름을 짓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창의적인 이름을 지어야 한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이름을 지어야 하리라. 조흥제< 乙丑 大洪水> 제목이 독자의 관심을 끌만하다. 얼마나 큰 홍수였을까, 또 어느 지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을까, 독자는 궁금증을 느낄 것이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한강 속의 섬들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게 되어 흥미로울 것이다.

윤태근 : 제목은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며 구체적이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흡인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시제>와 <을축대홍수>는 평범했습니다.

편: 주제가 주어진 수필쓰기는, 진정으로 우러나와서 작가 스스르 쓰는 글하고는 분명 다르다고 봅니다. 몇 가지 어려운 점을 예로 들자면, 시대상황을 의도적으로 반영하려함인가? 전적으로 작가의 의식세계에서 끌어가야하나 등등이겠습니다. 이런 글을 쓸 때 경계해야 할 사항 등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 이십리 길 어머니와 책> 작품은 ‘책’주제를 청탁받고 쓴 글일까, 궁금했는데 주제가 뚜렷하지 않았다.「내 삶과 함께 한 책들을 영원히 떠나보내며」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의 고향 시장’, ‘먼 길 에서 책을 사주시던 어머니’, ‘책을 버려야 하는 나와 세상의 변화 의 3 주제가 가능한 수필이다’. 그래야 작가의 의도를 보다 넓고 깊게 많은 독자가 감동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시제(時祭)」는 가을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인 ‘시제(時祭)’를 종가 집 며느리로서 제례행사를 홍보하는 것처럼 아주 상세하게 그려냈다. 절차와 진행 및 문화와 전통의 자긍심으로 넘치는 글이다. 「乙丑 大洪水」는 당연히 1925년 을축 년에 이르는 대홍수를 주제로 다루었다. 한자는 한글로 하여 ( ) 안에 1925년)을 넣으면 좋겠고 너무 광범하니 「서울 한강 유역의 을축 년 대 홍수」라야 맞을 것 같다.

김: 작가들은 자유주의자다. 평소에는 글쓸 거리는 많은데 시간이 없다고 하다가 주제가 정해진 원고청탁을 받으면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청탁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주지 못할 때가 많다. 글이 글을 불러온다는 말이 있는데 시간을 갖고 주제에 몰두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 <시제>에서는 문중마다 행하는 풍습의 하나인 추향제秋享祭의 세세한 준비과정을 그려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는 대가족의 따뜻한 정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가슴이 훈훈해졌을 것이다. <이십 리 길 어머니와 책>은 인간만이 ‘정신과 물질을 아우르며 향유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책은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형상물이다. 그러기에 삶의 일차적인 의, 식, 주라는 평면적 시각으로만 본다면 보리쌀 한줌의 가치도 없으며 이사할 때마다 무거운 애물단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작가는 농촌에서 성장하며 장마당을 통해 어렵게 책을 구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문학, 역사, 철학에 눈을 떠가며 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어머니는 책을 구입할 때마다 찬거리와 저울질을 한다. 이는 물질과 정신세계의 선택 앞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모든 어머니들의 생존 현장에서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의도가 선명하지않은 이유는 비슷한 내용이 설명적으로 길어졌기 때문이다.

권:. 역사적의미를 갖고 있는 특정 장소나 풍물 등을 기억하고 그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쓰는 글이 가진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乙丑 大洪水」밤섬 과 저자도 등 여러 한국 유역을 이야기 하면서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는 내용은 많지 않다. 대홍수에서 일어난 아주 흔치 않은 진기한 이야기 거리나 그로부터 우리 독자가 공유할 수 있는 감동의 소재와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 시제>는 대개 산의 묘소 앞에서 지냈는데 종가 집 에서 지내는 것 등 우선 ‘시제’ 의미를 좀 설명해야 했다. 한편 급격히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사실상 어느 정도로 가능하며,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좀 더 거시적이고 깊이 있는 내면의 탐구가 필요하리가 생각한다. 제례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연령, 모습, 세상 이야기, 다툼 등에 대해 갖는 대화 좋은 이야기들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십리 길 어머니와 책>은 거의 3분의 2페이지를 어렸을 적 고향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루할 정도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가는 길 책방을 들려서 사오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렇게 정성껏 모았던 책으로 평생 행복했는데, 이제 그들을 버려야하는 아쉬움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 < 이십리 길 어머니와 책> 수필은 체험의 문학임을 증명하는 글이다. 그러나 체험을 그대로 서술한다면 한낱 보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체험을 재구성하여 한가지 핵심으로 문학성을 살리고 독자에게 읽을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묘미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장날마다 농산물을 팔아서 책을 사주신 화자 어머니의 정성이 아들을 수필가로 만든 것 같아 그 모성애가 눈물겹다. 그 모성애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빚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역사의식이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의 결과물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체험이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독자들의 공감으로 확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권순악 수필가의 체험은 이런 의미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인이 체험했던 정신적 육체적 가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하고 타인에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작가는 평생 모은 책을 한 기관에 기증을 했으나 얼마 후 모두 폐기처분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한 인간의 폐기처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폐기될 수밖에 없는 숙명. 이런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라는 일반적 체험담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주제로 형상화되지 않았을까? 작가란 결국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의 고뇌를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을축대홍수>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기대 속에 읽어갔다. 그러나 몇몇 특정 지역에 대한 역사적 유래와 을축년의 대홍수, 80년대 작가가 겪었던 홍수 체험담이 전부다. ‘저자도’가 홍수와 인근 지역개발로 사라졌다는 서술로 보아, 을축대홍수란 현대화 바람으로 사라져간 전통적 유산들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보았으나 석연치가 않다.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출발한다는 것은 수필문학의 숙명이다. 작품의 소재로 선택된 장소란 작가에게 있어서 의미가 깊은 곳이다. 더구나 역사성이 있는 장소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가 느낀 의미성이 통상적인 시각에 머무른다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작가만의 눈으로 찾아낸 새로운 의미,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가치로 확산될 수 있는 신선함이 있어야 한다.

권: 풍습을 수필소재로 쓰는 글은 쉽고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려하는 작가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신:우선 왜 쓰려고하는지를 작가 자신이 자각해야 주제가 잡히겠지요. 그렇지않으면 풍습 소개글에 지나지않아 지역별 풍습을 기록한 백과사전이나 다를 게 없겠지요.

김: <시제> 작품은 시제 준비과정과 시제를 모시는 분위기를 잘 묘사하여 정겹다. 젊은 독자들에게는 간접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서 유익하리라. 다만 화자가 체험한 사실을 재구성하지 않고 서술하여 수필로서의 맛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점을 깨달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으면 좋았겠다.

한 편의 수필을 쓸 때 의미화에 신경을 써야 수필의 문학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풍습이란 그 시대를 공유한 소속집단의 풍속이요 습관이기에 세월에 따라 변질되고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풍습을 소재로 하는 수필작품에서는 ‘어떻게’보다 ‘무엇을’에 대한 궁구가 앞서야 한다고 본다. 내포된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런 고민들이 나와야 한다.

권: 총평도 부탁드립니다.

: 작가가 주제에 따라 다루는 지역과 시기 및 풍습 등의 다양한 소재가 목적으로 하는 의도와 잘 맞게 객관화시켜는 노력이 중요하다. 한편 신문기사나 방송의 뉴스 같은 상세한 보도가 아니라 그것들을 일반화하여 그 속 에서 다른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원리(철학)를 찾아내고 만들어주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시처럼 글자 수가 너무 모자라지 않고, 소설처럼 너무 길지 않아도 그 속에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감하고 감동하는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되리라고 믿는다.

김:<을축대홍수>작품을 쓴 작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싶은 성급한 마음 때문인지 거친 문장이 발견되었다. 문장을 다룰 때 병렬의 경우 작가 멋대로 열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줄 안다.

“철새보호구역으로 논병아리, 왜가리, 황조롱이, 때까치, 백함미새,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 고방오리, 댕기흰죽지, 비오리, 잿빛개구리매, 깝작도요새 등이 서식하여 낚시를 금한다는 것이다.” 새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들쭉날쭉 열거하여 질서가 없다. 이럴 때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글자 수에 따라 짧은 이름부터 긴 이름으로, 아니면 긴 이름부터 짧은 이름으로 열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시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결미에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강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더라면 좋지 않을까 싶다. < 이십리 길 어머니와 책>이 작품 역시 맞춤법에 어긋난 단어들이 몇 군데 등장하여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계란을 ‘겨란’, 그을리면서를 ‘그슬리면서’로 잘 못 쓰고 있다. 그밖에 띄어쓰기도 바로잡을 곳이 눈에 띄었다. 또 시제문제 역시 과거시제로 써야할 것을 현재시제로 쓰고 있다, 1초전도 과거라는 말이 있듯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원고를 쓰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과거시제로 쓰는 게 좋다.

 

: 이번 작품들은 편집부의 합평의도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넘어온 원고들이 문학으로서의 미적 장치도 약하고 주제의식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을축대홍수> 경우 마지막 단락은 왜 썼을까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종결 단락은 제재에 대한 은유를 완성하거나 긴 여운이 있는 문장으로 맺어야 좋은 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함께 느낀 시간이었다.

편집자 傳 : 이번호 합평은 어떤 소재이든 문학수필로 아우르는 작가적 역량을 보았습니다. 사실적 기록 나열이 문학은 아니라고 보기에 경험이나 자료를 어떻게 작가의 의식속에 육화시켜 개성있게 쓰고 있는가를 따져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