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월간 한국수필 7월호 인터뷰
선비정신을 극복한 실험적시도로 현대수필문학의 맥을 짚어주는
강호형 수필가
대담: 정목일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일시: 2013년 6월 25일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편집부
정리: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정목일 이사장: 문단에서 선생님을 뵙기도 하고 소식은 종종 듣고 있지만 건강과 근황을 수필가협회 회원들에게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강호형수필가: 치아가 다 망가져서 치과병원에 다니는 것 말고는 아프거나 불편한 데 없이 좋은 편입니다. 요즘 제가 주간을 맡고 있는 《좋은 수필》의 지하철 판매를 시작하면서 계간에서 월간으로 전한하는 바람에 좀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 <좋은 수필>이 바쁜 쪽으로 좋은 일만 일어나니 축하드립니다. 선생은 왕성한 활동과 유명세에 비해 수필등단은 50세가 넘어서였습니다. 일화를 말씀해주세요
,강: 제가 등단한 것이 우리 나이로 쉰한 살 때였으니, 70대에 등단하는 분도 있는 요즘 추세로 보면 늦은 것도 아닌 셈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20대에 등단하는 걸 감안하면 많이 늦었지만… 수필가가 되려고 작정했다면 좀 더 일찍 등단했을지도 모르긴 합니다. 수필과 친하게 된 게 70년대 초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제게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어느 정치가가 무료로 운영하던 고등동민학교를 총선에서 낙방하자 폐교하게 됐는데 얼떨결에 떠맡아서 몇 번의 졸업생을 내는 동안 감당할 수 없는 빚쟁이가 되고 말았어요. 빚쟁이들 등쌀에 학교에 나갈 수도 없게 돼서 학교는 후배에게 맡기고, 저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밑천이 있을 리도 없으니 규모가 작고 원금 회수가 빠른 보따리 장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마침 동대문시장에서 복지상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 사정을 했습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양장지와 양복지 행상을 시작한 겁니다. 친구의 권유에 따라 군산에 있는 양복점, 양장점을 돌며 옷감 주문을 받아 다음 날 배달하는 장사라 서울 군산 간을 매일 왕복해야했습니다. 하루 일곱 시간을 매일 왕복하며 심부름을 하기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차를 타고 있는 시간을 심심치 않게 보내려니 읽을거리를 찾게 됐는데 그 때 눈에 띈 것이 관동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수필문학》이었습니다. 판형이 작고 볼륨도 얄팍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 편하고 무엇보다도 짤막짤막한 글들이, 오며가며 읽기에 좋아 한 일 년 읽다보니, 수필이 이런 거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마침 그 잡지에는 ‘독자 란’이란 걸 마련해놓고 아마추어의 글도 싣는 거예요. 갓 난 딸아이 감기 앓는 이야기를, <웃기는 이야기>란 제목으로 엮어 보냈더니 다음호에 실려 나오면서 6개월 무료 구독권까지 주는 거예요. 그렇게 두어 번 재미를 보던 차에 무슨 영문인지 그 잡지가 폐간이 되고 말았어요. 이미 수필에 맛을 들인 터라 헌책방을 드나들며 수필집을 사서 계속 읽기는 했지만 수필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 했지요. 그 때 이야기를 쓴 것이 졸작 <바다의 묵시록>입니다. 그러는 동안 빚에서 어지간히 벗어나자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져서 장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면서 친구가 하는 도자기요엘 드나들며 붓장난을 하던 어느 날 미당 서정주 서생이 도자기를 만들러 거길 오셨어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잘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뵙기는 처음이었지요. 초벌구이 도자기에 자작시를 써넣으시는 며칠 동안 점심을 같이하고 술도 마셔가며 자청해서 시중을 들다보니 내게서 뭔가 감지되시는 게 있었던지 “시를 써 써보시오. 내가 추천해 줄께” 하시는 겁니다. 미당이 누굽니까, 나는 감격해서 그 일이 끝난 후에도 그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던 차에, 선생이 《文學精神》이란 종합문예지를 창간하셨는데 거기 신인 작품 모집 광고가 난 거예요. 불현듯 “시를 써보시오…”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시를 써보라고는 하셨지만 나는 수필에 이미 맛을 들인 터라 수필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다잡는 의미에서 아내와 친구들에게 미리 “나는 수필가가 될 거다.” 공표까지 해놓고 일 년여 만에 수필 세 편을 써서 응모한 것이 당선되어 88년 2월호에 발표되면서 수필가 행세를 하게 됐지요.
정: 수필혁명이라 할 만큼 파격을 시도하여 수필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요?. ( 미니수필, 사투리수필, 에로틱한 수필 등등 )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강: ‘수필 혁명’은 좀 과분한 말씀이고 변화를 시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 수필은 ‘무형식이 형식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른 장르 못지않게 정형화돼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겁니다. 게다가,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간밤에 마시다가 흘린 주흔이다” 이런 선비의식이 우리 수필 계를 지배해왔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타 장르에 비해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서 서자 취급을 받게 됐지요.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전통 있는 문예지들이 신인 등용문을 폐쇄하는 등…
이러한 수필의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험적인 수필쓰기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한 열 분의 문우들이 모여 양재 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수필실험》창간호를 낸 것이 2007년이었는데, 책이 나가자 중앙 일간지 두 곳에 대형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몇몇 지방지에도 소개되는 등, 일개 동인지에 기울여주는 각계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제가 창간사에서 밝힌, ‘이제는 수필도 청자연적이 아니라 휴전선에 나뒹굴고 있는 녹슨 철모일 수도, 간밤에 마시다가 흘린 주흔이 아니라 청춘 남녀가 남긴 불륜의 흔적일 수도 있어야한다’는 식의 다소 공격적인 접근방식이 먹혀든 게 아닐까 싶어요. 그 내용에 대해 질문하신 세 가지 중, ‘미니수필’은 김기림의 <길>이란 수필에서 힌트를 얻어, 원고 매수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써보자는 취지에서 시도해본 것이고, ‘사투리 수필’은, 우리말 사투리 중에는 정감 있고, 토속적이면서 좋은 음운을 지닌 낱말이 많은데 표준어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척되는 예가 많습니다. 어휘란 자꾸 쓰면 활성화되고 푸대접하면 도태되는 생명체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버려진 좋은 말을 찾아 생명력을 불어넣어 표준어에 편입시킴으로써 우리말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일도 작가의 임무라는 생각에서 시도해본 것입니다. 또 하나 ‘에로틱한 수필’을 말씀하셨는데, 위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 수필이 너무 선비적이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고,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정: 수필쓰기에서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만의 수필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강: 저는 수필 이론을 따로 배운 적이 없고 수필을 쓰면서 이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세울 만한 저만의 수필론이 없습니다. 굳이 밝혀야 한다면 바로 앞 질문에서 말씀드린 ‘선비의식 탈피’, ‘실험 정신’등이 아닐까합니다. 한 가지, 수필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한다는 말을 추가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써서 안 먹으면 효과가 없듯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도 재미가 없어서 안 읽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수필 쓰기를 쓴 약에 당의糖衣를 입히는 작업이라고 쓴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수필은 술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쌀, 누룩, 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원료가 발효과정을 거치면 향기로운 술이 되듯이 일상적인 체험이나 사유가 높은 인격의 항아리 속에서 발효-숙성과정을 거쳐 형상화된 것이라야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문학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격려의 말을 부탁드립니다.
강: ‘문인은 오로지 글로 말해야한다.’는, 문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자긍심을 지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을 팔아서야 되겠습니까?
정:.한국이 아시아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에 가장많은 기록문화우산을 가진 나라로 돠었습니다(난중일기. 새마을 운동 등)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입니다. 기록과 문학의 관계를 말씀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강: 문학작품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록 유산이지요. 기록으로 남길 문화유산으로 인류의 진화 과정을 문학보다 더 상세하고 리얼하게 기록한 유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주간을 맡고 있는 좋은 수필 사가 기획한 ‘현대 수필가100인선’ 전 100권을 재작년에 완간했습니다만, 저는 그 일을 기획하고 편집책임을 맡아 일하는 동안 보수 한 푼 안 받으면서도 후세에 남길 기록 유산을 만든다는 자긍지심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이런 작업이 우리 문학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인 줄 알고 있는데, 여기에 그치지 말고 한국 문학도 세계 기록유산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정: 문학활동도 심신의 소통이기 때문에 선생님과 교류를 나누고 있는 문단 절친들이 궁금합니다.
강: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가 많지만, 특별히 박재식, 최병호, 정진권, 문혜영, 최숙희 선생과는 한 16,7년 전부터 다달이 만나 살아가는 얘기 수필 얘기 하며 지내다가 요즘은 사정들이 생겨서 모임이 뜸해졌고, 한 때는 김시헌, 허세욱, 최병호 정진권 선생과 매주 만나 탁구를 쳤는데, 아시다시피 허 선생은 돌아가시고, 김 선생은 환우 중이시라 못 만납니다. 저는 문학 공부를 못 해서 문단에는 스승이 없는데, 박재식 선생님은 제가 등단할 때 추천해 주신 어른이라 스승처럼 존경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정: 모처럼 시간을 내주셔서 귀한 말씀 남기시니 감사합니다. 문학안에서 늘 뜻한 바를 이루어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강호형 수필가
경기도 광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 중퇴
*일신직업청소년학교 운영
Ⅱ. 문단 활동
*1988. 월간《文學精神》 수필 <눈> 당선.*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계간《좋은수필》주간(2007년~현재)*좋은수필사 간 현대수필가 100인선 기획, 편집. 전 100권 완간
*제15회 현대수필문학상 받음(1997)*제3회 황의순 문학상 받음(2008)
* 좋은수필사, 과천도서관에서 수필 강의 중.
수필집
*《돼지가 웃은 이야기》*《행복을 디자인하는 부부》*《붕어빵과 잉어빵》
수필선집*《바다의 묵시록》*《20세기의 전설》*《정류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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