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문파문학(발행인 지연희 ) 겨울호 권두대담
권남희 편집주간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현재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수필문학계의 훈남 이현복 수필춘추 발행인에게서 문학인의 덕목을 깨우치다
이현복수필가에게서 풍기는 인상은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이다. 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세미나, 국내세미나에서 뵐 때마다 느끼지만 동행하는 제자들까지도 세련된 태도에 조용하고 품성이 아름답기만 하여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일까 늘 궁금했었다.
가을이 끝나가는 날 세종문화회관 지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이현복선생님을 만나자마 수필문단에서 멋쟁이, 매너남으로 통하는데 생활에 배인 것인지 여쭈었다. 선생은 빙긋이 미소지으며 처음 듣는 말이고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멋쟁이, 그건 맞는 말이 아니란다. 정년퇴임 전까지는 의복에 무례할 만큼 편한 옷만 입고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정년 이후, 쪼그라드는 외모와 초라함에서 벗어나자는 뜻에서 강의할 때만은 정장도 하고 선크림도 바를 뿐이라고 겸손해하신다.
멋쟁이 아닌 멋은 생각해 보았는데 인간에게서 최고의 멋은 ‘사고의 멋’이다. ‘사고의 멋’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주고받는데 멋있는 사람을 떠올리면 늘 머릿 속에서 맴도는 말이 있다. “찬 머리. 따뜻한 가슴, 멀리 보는 눈”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멋하면 대학 재직시 학생들의 말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는 ‘메레모, 커피. 담배.’라고 하였다. <*베레모 서정범, 황순원, 조병화 그리고 내 베레모 쓴 사진 여기에 넣어주셨으면...)
베레모는 조병화선생님, 황순원선생닙, 서정범선생님이 주로 쓰신 모자로 그 선생님들의 외모만이라도 닮자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고, 커피의 향 속에서는 생각을 다듬으며, 담배 연기 속에서 여유로움을 느낀다면 역설일까. 문학강의에서 강조하는 바는 오늘 멋있는 사람이 드믄 세상에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문학 작품을 읽으라. 강조하고싶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아름답게 나를 가꾸는 내면의 화장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강조하는 ‘사고의 멋’, 그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실지 궁금했다.
‘사고의 멋’은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에 묶여 살면 고리타분하니까. 인간은 모순의 현장인 사회에 던져진 존재이다. 자연의 동물들은 다만 본능의 조정에 따라 정해진 순리대로 살지만, 인간은 모순의 현장인 이 사회에서 순간순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산다. 그 선택에 의하여 행과 불행 사이를 드나들며 사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선택이 지혜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매한 것이지않을까. ‘지혜’로 사는 내가 되고 싶었고 아마도 ‘매너남’이라는 평도 혹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지혜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의 발상에서 비롯됩니다. “먼저 모순에 직면하라, 그리고 역설하라. 아니면 역설하라. 그리고 모순을 바라보라 ”는 말은 많은 생각의 지평을 열어준다.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격식과 형식은 피로하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정년은퇴식에서, 회갑축하연에서 은퇴사, 답사는 개작한 유행가 한곡 부르며 끝낸 것이 아닐까 한다.
선생은 수필문학에서 이론보다 생활이야기를, 지식보다 지혜가 담긴 인간성, 인간미가 담긴 수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와 그 배경을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삶은 이론이 아니라 닥치는 일, 문제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문인은 정서적 반응인 자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더구나 ‘글이 그 사람’인 수필은 일상의 삶을 의미화하여 형상화한 글이다. 이에 수필인은 일상을 즐기며 사랑하며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체와 척의 꾸밈과 과장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사는 한결같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바탕은 그 사람이 지닌 인간미요,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필은 테마의 문학으로 그 주제는 인간성 인간미의 표출이다. 수필을 읽으면 그 작가와 정원을 산책하며 나누는 대화와 같아 정을 느끼게 되고 글에 반해서 사람까지 좋아지는 글이 수필이다. ‘글 따로 사람 따로’의 작품이 있어 수필이 독자로부터 멀어지지 않나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수필을 읽고 글에 반해서 그 작가를 만나면서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때로는 만난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은 만나지 말고, 글만 좋아하자는 것은 나의 좁은 소견일까? 스스로 묻곤 한다.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 했는데 삶이 이론이 아니듯이 수필 또한 이론만이 다는 아니다. 수필문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받은 나는 갖가지 수필이론을 수집해서 나름대로 정리한 바가 있다. 그것을 중심으로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론은 이론일 뿐, 작품쓰기는 써가면서 터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형식의 글, 수필은 작품의 기술자도 ‘나’요, 기술의 대상인 수필적 자아도 ‘나’인 글로 어떤 틀에 따라 만드는 글이 아니고 생각과 느낌에 따라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수필의 진수는 중국문학에서 말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다. 생활 가운데서 얻은 지혜를 창작-꾸밈없이 기술하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한다. 수필쓰기는 창작 이론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산다는 것은 계산하며 따지는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와 이웃에 대한 감사와 겸손으로 느끼는 삶으로 대화와 정의 나눔이다. 그 삶의 현장은 ‘지금 여기’이다.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며, 그 삶이 수필쓰기의 동기가 아닐까 한다.. 수필은 아름다운 사람이 쓰는 아름다운 글이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것은 부도 수표가 된 어제에 아쉬움에 끄달리지 않고, 약속어음인 내일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현금인 오늘을 낭비하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늘로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하는 것이고, 미래의 아름다운 꿈을 그리는 삶이다. 그래서 수필문학은 ‘나 자신’을 그린 추억의 문학이요, 희원의 문학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문학이 아닐까 한다.
문학에서 ‘지금 여기를 사는’ 길은 어떤 길일까, 묻지않을 수 없다.
‘인생은 예술이고, 삶은 철학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목적은 개성적 자아실현이요, 창조적 자아표현이다. 자아를 최고도로 완성하고 실천하여 자신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크든 작든 누구나의 삶의 지향점을 향한 지난한 몸짓이다. 사회는 계속 발전하며 변해왔고 변해 갈 것이다. 농경시대는 생존(TO-LIVE)에서 산업사회에는 소유(TO-HAVE)로 다시 정보사회 복지사회에 진입하면서 존재(TO-BE)로 변해 왔다. 존재-TO-BE의 시대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화두처럼 등장한 웰빙 (WELL-BEING)이란 말이 화자되고 있다. 이는 잘 사는 일이고, 잘 사는 일이란 결국 "행복(happy)" 산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어떵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일까?를 생각해본다. 테칼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 하였습니다. 이제는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그로 존재한다.’의 실존주의시대입니다. 웰빙(WELL-BEING)이란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이고, 사람답게 잘 살기위해서는 관념이 아닌 행동이 있어야 한다. 존재의 기반인 생각은 well_loving-(사랑하는 마음이고), 행동은 well_doing-(사람을 섬기는, 대접하는 것)이며 well-going-(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일 때, wll_being(인간다움을 누림)의 삶이 되고 끝내는 well_dying(아름다운 마무리)로 이어지리라 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있어 너는 행복하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인간적인 삶은 이루어진다고 본다.
긍정적 사고는 1. 산다는 것은 곳곳에서 역경을 맞는 것이고 그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며 2. 그 역경을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지혜이며, 3.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것이며, 4.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조절한다는 확신이며. 5. 삶의 곳곳에 사랑을 심는 일이 아닐까 합한다. 수필인은‘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으로 지난 일을 진단하고 오늘을 점검하며 내일을 처방하는 사람이다.
선생은 수필계간《수필춘추》발행인이다. 지속적인 잡지 발행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렵다고 알고 있다. 18년간이나 속간하신 비결이 무엇인지 선생에게 직구를 던졌다.
그 동안 많이 받은 물음이다. 우리 수필계간지《수필춘추》 에는 주인이 없다. 주인은 주인의식을 지니신 수필춘추문우회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이다. 수필잡지 운영에는 지도자도 지시자도 없고 잡지를 출판하는 심부름꾼이 있을 뿐이다. 이 사람도 편집주간으로 16년 심부름하였고, 정동화 발행인으로부터 부득이한 사정으로 발행인을 인수받은 지금도 심부름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 수필춘추 가족들은 글이 실리면 10부를 구입하고 있다. 이 사람이 인수받은 직후 6부를 보냈다가 혼이 났다. 그래서 출판비 및 운영비는 어려움이 없다. 연간 회비도 없고, 등단과 동시에 평생 구독회원이 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연말행사를 비롯하여 어떤 행사에도 많은 회원님들이 참가하고, 참가한 회원들은 서로서로가 찾아 일을 한다. 월산문학상 시상식에도 축하객이 70여명이었다. 분명 이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란 긍지 아닌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이대로 갈 것으로 믿는다.
현대를 수필의 시대라할 만큼 수필인구가 많아졌습니다. 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선생에게 부탁드렸다.
수필문학은 현대의 시대적 산물이다. 현대라는 과학문명시대에 적합한 기술양식은 산문이고, 현대의 과학성과 합리성은 산문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근년에 이르러 논픽션(nonfiction)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허구가 아닌 실존 인물의 현실적 경험을 통해 진실을 듣고자 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이를 아니톨 프랑스는 “수필이 어느 날에는 온 문예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오늘이 그 현실의 초기 단계다.”라고 말 한 바 있다. 수필이 대중화된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수필독자보다도 작가가 더 많다고 할 만큼 수필가가 증가하였고 각종 문예지를 통해 수필가로 추천 등단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등단하는 작가도 전문 지식인, 정치인, 의료인, 교육자, 실업인, 연예인, 저널이스트, 예술인에 걸쳐 다양하다. 수필인의 저변확대로 수필의 대중화시대를 열었다고 본다. 이런 현상에도 불구하고 어느 잡지에서 70대 노인을 대상으로 문단장사를 한다는 등, 작품이 저질화 한다는 등, 신변잡기라는 등....그래서 수필을 주변문학으로 천시하는 평론가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문화센터 수필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들은 우선 책 읽기를 좋아한다거나, 문학소녀 소년으로 백일장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다거나, 유서를 쓰듯이 살아오면서 머무르고 싶은 순간을 남기고 싶거나,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신지식인들이다.
그들과 만나면서 책을 안 읽던 사람에게 책 읽을 기회를 주고, 글을 쓰지 않던 사람에게 글쓸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뜻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물질주의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채워도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헝그리 정신을 내려놓고, 영적 성장의 장을 마련하였다는 것은 어찌보면 고령사회에서 복지사업의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느낀다. 나이를 더한다는 것은 세련되는 과정이며, 영적성장으로 나이값을 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끝내는 문인의 저변 확대는 품위 있는 사회 건설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니라고 본다. 수필문학이 대중화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 더욱더 박차를 다할 것이다. 수필은 자기를 찾아 자기를 자기답게 형성하는 도정의 문학이며,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배우고 인간을 긍정해 가는 수학의 길이기 때문이다.
선생의 말씀을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좀더 독자에게 다가가는 쉬운 수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이 수필인들에게 일독을 권장하고 싶은 작품 추천을 부탁드려본다.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요즈음은 독서에서 독자반응이론이 적용되는 시대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독자의 경험에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은 독자에 따라 다릅니다. 권장하고 싶은 작품을 추천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읽으며 메모해 두었던 몇 구절로 이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많아도 사람 같은 사람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사람 냄새나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 박인희의 시 ‘사람에게’ 중에서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 김현승의 시 ‘창’ 중에서
-그러나 동시대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고, 괴롭히지 않았다. 불안하게 굴지도 않았고, 부담도 주지 않았고, 또 지루하게 굴지 않았다. - 헬무트 홀트하우스 ‘어느 위대한 사람의 사후명성’ 중에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 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랄프 왈드 에머슨 ‘무엇이 성공인가’ 중에서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 피천득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이현복 수필가. 계간 수필춘추 발행인 . 인천교대 교수역임.
MBC아카데미 롯데문화센터 수필강의. 한국수필가협회 월평 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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