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문파문학 여름호
조경희 수필문학상 시상식장 이경희 수상자
독보적이면서 우아한 대담성의 소유자 이경희 수필가
광화문 한복판 ‘경희궁의 아침’ 자택을 찾아가면서 이경희수필가와 경희궁에 대한 함수를 생각한다. 성함과 아파트이름은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우리는 뜻하지 않은 발견이나 한것처럼 선뜻 인연이라 이름짓는다. 자택에는 백년 넘은 타자기와 도자기 등 골동품이 있지만 있을 곳에 제대로 있는 살림살이에서 선생의 정갈한 정취를 확인한다.
권남희 수필가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월간문학> 수필등단.
수필집 《육감&하이테크》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시간의 방 혼자남다 》 등 5권 . 제 22회 한국수필 문학상.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네 번째 방문이다.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현관을 들어서니 여전히 벽면 한곳을 차지한 김영주 화가의 추상화가 맞이하고 거실 창문 쪽으로는 작은 책상 위에 고인이 되신 부군의 영정, 책상 유리장안에는, 휴대폰, 만년필, 안경, 은수저 등, 부군의 유품들이 담겨있다. 봄특집 월간 한국수필에 작품을 발표하신 내용에는 따님이 “이제 아버지사진과 유품을 거실에 두지말라”며 가져갔다했는데 다시 찾아왔다고 하신다. ‘그이’를 혼자 있게 하기가 안돼서 작업공간도 거실로 옮겼다고 하지만 오히려 선생에게서 진한 외로움을 읽는다. 선생을 대할 때마다 드러나지 않는 어떤 끼를 느끼곤 했는데 김현문학평론가는 오래전에 제대로 평했다. ‘우아한 대담성’의 소유자이라는 것을.... 서구라파 어떤 국왕의 파티에 초대장도 없이 돌입해갔다는 수필에서 선생의 진취적이고 행동력을 간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끝나는 것을 참지못하는 선생은 행동파이다. 문과 입시공부를하는 중인데도 아버지의 권유로 약학대를 지원하여 여학생 대표로 입학한 일도 놀랍고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싶어도 막상 별다른 아이템이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가진채 자수학원을 처린 일, 세계여행중 꼭두극 공연을 보고 한국에 꼭두극공연단을 창단하고 한국을 입회시킨 일 등........ 놀라움의 연속이다.
서울대 약학대학 2학년 때 이경희 수필가는 재치문답, 스무고개 등 라디오와 TV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같은 대학 학생들은 ‘이경희박사’의 친구로 통했고 친구라고 하기를 좋아했다. 라디오 청취가 대부분이었던 당시는 청취능력이 더 발달했는지 어느날 전화국으로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도 교환이 ‘이경희 박사아니야’고 묻기도 했다.
1970년 마흔살이 되는 해 6개월동안 준비하여 출간한 첫수필집 《산귀래》는 선생을 정명숙 수필가, 숙명여고 교장을 지낸 정춘향님과 함께 한국의 현대수필가 1세대그룹으로 자리매김한 계기를 만들었다. 청계천, 관철동 어렸을 적 서울이야기를 써서 서울사람들에게 잃었던 고향이야기를 선물한 《산귀래》수필집은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산귀래》는 첫수필집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당시의 유명한 작가들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삽화도 선생이 직접 그렸는데 정비석 소설가는 서울경제신문에 ‘사금채취의 명수’라 평을 했고 황순원 소설가, 김소운 수필가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했다. 피천득수필가는 냉철한 리얼리즘과 향수같은 낭만의 하모니를 이루었고 이름 하나만으로도 격을 얻었다며 극찬의 편지를 남겼다. .
김소운 수필가는 야채샐러드의 산뜻한 미각, 겁이 없는 필체라고 했다. 특히 30년 넘게 교과서에 오른 <현이의 연극> 은 그 순수함으로 많은 독자들을 확보했고 지금 읽어도 감동이 전해온다.
방송활동이나 약사직업만해도 당시 여성으로서는 엄청난 인텔리층으로 충분했을텐데 수필을 쓰게 된 계기를 알고싶었다.
어느날 문득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 내 모습에서 공허함을 느꼈고 ‘나는 누구인가?’ 그런 허무감을 이겨내기 위해 첫수필집을 준비했다 한다. 김현평론가의 결론처럼 ‘거짓없는 질문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 인 것이다.
자신 앞에 진실하고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고 생각한다.
여성수필 1세대 그룹이면서도 조경희수필가나 전숙희수필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않고 문단에서 한발 물러서있던 이유가 궁금했다. 선생은 ‘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신다. 전공이 약대였고 약사를 했기 때문에 전문 문학인으로 활동하기가 조심스러웠다고 밝혀준다. 그런 까닭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낼 때 프로필난에 주부라 써내면 그쪽에서 수필가로 고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선생에게서 사회경력에서 나오는 연륜을 통한 배려심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선생에게 삶의 테마가 되었다는 세계여행을 말하지않을 수 없다. 요즘이야 한동안 모임에 보이지 않는다 하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할 정도로 여행은 온 국민의 여가활동이 되었지만 1960년대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때 벌써 국제꼭두극연맹( UNIMA) 국제회의나 박물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고 다닌 선생은 월간 《춤》지에 12년 넘게 연재를 하여 《남미의 기억》첫 기행수필집이후 300페이지가 넘는 《이경희 기행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여행! 생각만해도 매력적인 테마지만 선생에게는 특히 더 했다는 이유의 하나를 꼽자면 공허함이라 하겠다. 선생은 기행수필집 뒷부분에 언급했지만 ‘서울태생인 자신은 늘 그리워할 할 고향이 없다는 공허함이 고향을 그리워할 감정을 갖고싶다는 부러움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문학은 결핍감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크다. 때문일까? 부족할 것이 없어보이는 선생도 그리움을 갖고싶다는 결핍감으로 여행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문학과 여행의 얼굴은 이란성 쌍둥이임이 분명하다.
선생을 생각하면 백남준비디오아트 창시자를 빼놓을 수 없다. 유치원 친구 백남준 관련 책을 두권이나 냈는데 만남도 드라마틱하다. 3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던 세계적 아티스트가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꺼낸 말이 “유치원 친구 이경희를 만나고싶다” 였다. 생각만해도 가슴떨리는 세기의 만남이다. 선생은 우연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라 글에도 썼지만 전 세계에 이미 명성이 알려진 백남준과 한국의 유명인사가 코흘리개 때부터 친구였고 그 때 벌써 부모님들이 유치원생인 백남준과 ‘남준이 색시로 불렸던 이경희 둘의 미래를 정하자는 이야기도 오갔다는 사실은 동화일 수밖에 없다. 이후 선생은 《백남준이야기》등 백남준 책 두 권을 냈다. 백남준아티스트는 언젠가 선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다.
“ 세라비 C'est La Vie 우린 너무 늦게 만났어.” 짧은 표현이지만 암시적이고 아픔이 농축된 말이다.
만나는 일에 늦거나 빠른 일은 없다고 하지만 멋진 인연에 부러움을 가진다.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인연도 있지 않은가!
문학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렸다. 선생은 인터넷세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약간의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든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자기도 그 어른이 되는데 모든 분야에 어른이 있어 한다는 선생의 말과 자기 분야의 전문성은 존중해주어여 한다는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현대 한국수필 여성문단을 정리할 필요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글쓰는 일은 나이를 먹어도 삶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힐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어 행복하다는 이경희 수필가의 모란 꽃 미소를 경희궁의 아침에 두고 지연희 발행인과 광화문 거리로 향했다.
唯史 이경희 수필가 약력 : 1932년 12월 15일 서울 출생. 숙명여고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 대학 이학년 시절부터 KBS 라디오 <스무고개>와 <재치문답> 등 프로그램에 박사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KBS텔레비젼 ‘나는 누구일까요 ?’ ‘나의 직업은/’ 등 이십년 가까이 방송 패널로 출연하였다. 1970년 첫수필집 『산귀래』를 시작으로『뜰이 보이는 창』『현이의 연극』 『남미의 기억들』등 열 두권의 수필집이 있다. 『백남준이야기 』로 현대수필문학상을 받았다. 수필 ‘현이의 연극’은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선정되어 현재까지 삼십년 간 실리고 있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월간 춤』지에 기행수필을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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