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월간< 한국수필> 9월호 2014년

권남희 후정 2014. 9. 1. 16:59

 

                               발행인 정목일 수필가.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월간 한국수필 이달의 합평작품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매달 발표된 수필 중에서 개성있거나 문제의식을 던지는 수필을 선정하여 본회에서 추천한 3분과 합평좌담회를 가지고 토의를 거친 다음 발췌 정리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이 한 편 발표되면 3가지 형태의 의도가 탄생합니다. 작가의 의도, 독자의 의도, 그리고 작품 스스로 갖는 의도입니다. 매호마다 선별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감안하시고 다양한 읽기를 통해 타산지석의 묘를 얻기 부탁드립니다. 합평에 선정된 작품이 모든 면에서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선별한 이유를 근거로 다양한 각도로 원고를 평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합평작품

1. 조순영 데이케어 센터와 요양원

2. 이남수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

3. 김영미 판소리와 추임새

 

합평위원 ( 임창순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김혜숙 : 백미문학회 前 회장 )

김선화 : 대표에세이 전국회장 )

진행: 권남희 편집주간

권남희 편집주간 : 수필의 사회참여에 대한 생각을 풀어 주시고 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이슈화하여 어떻게 수필작품으로 완성해야하는지 짚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임창순: ‘수필의 사회참여’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참여의 뜻이 정치적이고, 개혁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문학의 사회참여는, 시인 김수영 이후 ‘문학의 자유로움’을 이끌어낸 화두이기는 하지만, 수필에서는 수필의 본질과 상충될 수 있다. 수필의 본질 자체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조순영의 <데이케어 센터와 요양원>은, 이런 의미에서 큰 ‘아우성’이다. 국민복지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소재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가예산 중에서 가장 큰 분야가 국방예산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복지부 예산이 국방 예산의 3배 이상인 것을 알고 놀란 일이 있다. 국방예산은 나를 적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고마움이 있었으나, 복지부의 경우는 달마다 돈만 떼어가는 곳이었다. 데이케어---를 읽으며, 이분 역시 복지혜택 없이 요양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를 알게 된다. 93세 노인의 장녀라면 나와 비슷한 연세의 필자일 것이다. 나의 ‘아우성’을 대변하는 것 같아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 많은 복지 예산은 다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이 작가와 생각을 같이 하는 ‘아우성’들은, 내 복지는커녕 모친의 복지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런 불공평함에 대하여 큰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이 곧 데이케어---이다. 박대통령의 ‘어르신 수당’ 문제는 물론이고, 노모의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70대 노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함성으로 끌어낼 수도 있는 ― ‘간접적 사회참여의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혜숙 수필의 사회참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명경시 풍조, 배금주의, 부정부패 등 사회 전체에 만연되고 있는 갖가지 병리 현상에 대해서 의식있는 작가로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수필 작품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병들고 오염된 사회에 대해서 고뇌하고 치유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끌어주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 해결 과정을 작가가 강요해선 안 된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독자 스스로 진단하고 명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세 작품 중에서 조순영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은 시대적 흐름이나 사회환경, 대중심리 등에 잘 부합되고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는 작품이다. 요양병원에서 치매환자의 방화로 21명 노인이 목숨을 빼앗긴 참사로 첫머리를 풀어냈다. 그 사건을 바라보며 93세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는 작가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잇다. 가공하지 않고 서운함과 불편함을 토로하는 작가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의 가정은 다행스럽게 남편의 이해와 도움으로 그런대로 버틴다. 허나 ‘나는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후회만 쌓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하며 개인 문제로 마무리한다. 문제를 제기했으나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김선화 : 어느 시대이든 문학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하여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가 낳은 작품을 판독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작품은 한 작가가 살아가는 동안에 체험하고 육화한 각양각색의 애환이 담겨 있는 바, 그 하나하나의 문장 속에 녹아든 사회적 의미 군(群)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 8월호에서 읽은 작품 중에서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조순영의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요양원 화재사건을 소재로 삼아 노모를 모시고 사는 화자의 현실과 맞물려 풀어낸 진솔한 글이다. 치매를 앓고 계신 친정어머니를 보필하며 겪는 모녀간의 애환이나 자매간의 엇갈림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살아가며 치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행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내고 있다. 이남수의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은 한 세대쯤 전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가족이란 굴레에서 나아가 이웃을 살피는데 주력한 농촌 안주인의 덕성스런 면모를 훈훈하게 그려낸 글이다. 어머니가 해오던 큰일들을 당연시 여기던 딸이 어느 날 문득 철든 사유로 돌아보는 그림이 아련하고 아름답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시월드니 고부갈등이니 하며 유행어처럼 나돌고 있는 말을 단번에 꼬집어 일축하는 대목이 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시누이가 부엌간에서 말없음으로 삭이는 문장이 여운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내 어머니도 가끔씩은 누군가의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으셨을 거라는 구절에서 자꾸만 마음 멈칫거리게 한다. 김영미의 ‘판소리와 추임새’는 읽는 이로 하여금 흥과 여유를 불러일으킨다. 다소 삭막한 삶에서 한 행보 늦추고 쉬어가게 한다. 서두름이 몸에 밴 이 시대의 문화를 잠시 붙들어놓고 조목조목 곱씹으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 맵시 있다. 몽니가 앞서고 칭찬에 매마를 수 있는 사회상을 직설을 피해 해학을 곁들여 우회적으로 돌린다. 말 않고 고발하기나 다름없는 기법으로 기껏해야 내 자식 추어주기 식으로 넘어가는 재치가 바람직하다.

권: 완벽하지않아도 맛있는 글과 흠잡을 곳 없지만 감동이 없는 글에 대해 의견을 주시기바랍니다.

임: 세 편의 글을 읽으면서, 데이케어---는 단숨에 읽을 수 있었고, 이남수의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은 두 번, 김영미의 ‘판소리와 추임새’는 한 번 정도 숨을 돌려야 했다. 모두 수필로 성공한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성공한 작품이면서도, 넘쳐났지만---의 경우는 두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아우성’이 일상적인 잔소리 급이다. 데이케어---가 대범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때문에 비교가 되어 그럴 수도 있겠으나, 들어내는 소재가 일부 일상적이다. ---호들갑을 떨며, ---배시시 웃으며, ---어머니가 그리워 회한하는, 등 ― 일상의 모습들이다.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 표현의 절제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문장이다. “나는 벌건 장작이 타는 --- 속절없음을 보았다.”에서도 주어와 서술부는 정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설명들이 서로 얽혀 다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내용 당사자가 아닌 독자들의 경우는, 이런 문장과 만나면서 대개 글 읽기를 중지한다. 건너뛰거나, 아주 덮어버리게 된다. ‘판소리와---’의 경우는, 소재가 새로워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장에서 약간의 걸림이 있어도 읽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걸리는 문장은 이러하다. “판소리는 내 안에 고인 소리를 ---판소리의 일고수이명창란 북을 치는 --- 그 다음으로 일컫는 말이다.”이다. 글 속의 ‘고인’은 ‘고여 있는’, ‘이명창란’은 ‘이명창이란’으로, ‘그 다음으로’는 ‘그 다음인 것을’로 고친다면, 독자가 두 번 이상 읽어봐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혜:세 작품을 다향한 각도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세 작품을, 완벽하지 않아도 맛있는 글과 흠잡을 곳 없지만 감동이 없는 글로 분류하기에 알맞지 않아서다. 내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 냄새 풀풀나는 정스런 사람이 있고 언뜻 보면 인격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것 같지만 겸손하지 못하고 가까이 하기엔 부담스런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독자라면 어떤 사람을 선호하겠는가. 답은 분명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작품 구성력이 조금 부족해도 참신하고 아름다운 삶이 녹아있는 글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문장은 세련되고 흠잡을 곳 없지만 주제가 불분명하고 진부하면 흥미를 끌지 못한다. 글을 모두 읽고 난 후에도 무슨 내용인지 정리되지 않고 감동이 없다면 누가 이런 글을 좋은 글이라 하겠는가.

김선: 깎아 맞춘 듯이 단락이나 구성 면에서 잘 짜여진 글이 있다. 의미부여 역시 딱딱 맞아떨어지는 글이 있는데, 이러한 글들이 다 감동으로 와 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억지 맞춤복을 입은 모양새로 갑갑증이 날 때가 있다. 반면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나 가슴 울리는 글을 만날 때 그 여운이 짙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퇴고에 공을 들여 문장의 완결을 좀 더 꾀했으면 싶고, 문장이 완벽한 듯 하나 감동이 덜한 글은 조금만 스스로를 풀어놨으면 싶다. 즉 자신을 얽어맨 속박에서 놓여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보는 것이다. 그럴 때 새로운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이 밀도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수필도를 이룬 수필가중의 수필가이다. 세 작품 중 글맛과 감동이 어우러진 글은‘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이라 할 수 있다.

 

권:. 제목은 작품에서 중요합니다. 제목잡기에 대한 안내를 해

주시기바랍니다

임: 작품의 제목은 소재나 주제를 직접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좋은 소재를 접하거나, 좋은 주제가 떠올라 글을 쓰는 경우, 제목을 바꾸고 싶은 때가 생긴다. 더 좋으니까 바꾸는 것이 당연하지만, 바꾸려면 글 전체를 다시 써야 하는데, 게으른 필자는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목만 바꾸고 주제를 그냥 두거나, 고치기 전의 주제를 겨냥했던 문맥이 그대로 흘러가서 전체의 균형을 흐트러뜨린다.

제목은 간결한 명사형이 많지만, 근래에는 동적인 표현도 많이 사용한다.

이번의 제목들은 모두 길다. 간단한 용어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으리라.

데이케어센터라는 생소한 용어를 보완하려는 느낌의 사족 같은 ‘요양’, 넘친다는 과분함과 외로움의 만남을 한 번에 알리려는 의욕적인 제목, 판소리와 추임새라는 전통 언어를 모두 열거하여 장수 사회와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미리 알리고 싶은 과잉 친절이다. 간결하기를 더 원하는 나에게 세 편의 제목을 굳이 다시 정하라고 한다면. ‘데이케어센터’, ‘어머니’ 또는 ‘외로움’, ‘얼쑤’로 하고, 나머지 언어는 본문에서 풀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혜:방송에 책 소개하는 어느 출판칼럼니스트의 경험담이다.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없어 먼저 책 제목을 보고 1차 몇권을 선택한 후, 그 책을 읽고 그중 한 권의 책을 안내한다고 했다. 책 제목이 이렇게 영향을 미치듯 수필작품에서 제목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해야 한다. 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호감이 가듯 제목은 그 수필과 동일시 되는 얼굴이다. 독자의 시선이 제일 먼저 머무는 제목은 대체적으로 문학적 상징성과 함축미가 담겨있는 명사나 짧은 문장을 사용한다.

조순영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은 마음이 여린 작가가 어머니를 잘 모시고 싶은데 어머니나 친척들로부터 감내할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어려운 작가, 요양원은 죽어도 가기 싫다는 어머니. 작가의 숨통을 틔워주는 시간은 어머니가 데이커어센터에 머무는 낮 동안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시간이나 주말엔 어머니는 작가에게 도둑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억지소리로 고통을 겪게 한다.

이 작품에는 요양원에 대한 글은 한 문장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양원의 본질과 특성, 심각성이 무엇인지 자세한 내용이 없다. 제목에 왜 요양원이 들어있는지 의아하다. 이 작품에서 제목은 이해하기 쉽고 친밀한 구어체의 짧은 문장이 어울리지 않을까. 끝부분 ‘이 일을 어찌할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남수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은 작가가 노년에 와서야 어머니의 부엌을 이해하게 됐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엌은 음식과 사람으로 넘쳐났지만 정작 어머니는 너무 외로워서, 잊으려고 더 바삐 요리하고 동네사람들 상담하고 나눔과 베품을 실천했을 것으로 작가는 판단한다.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이란 제목은 다분히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지성미가 느껴진다. 잘 표현한 듯 싶은데 2%가 부족하다. 어떻게 제목을 다듬을까 하는 것은 작가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김영미 <판소리와 추임새>는 판소리 공부하면서 부딪혔던 어려움, 판소리와 추임새에 대한 이해,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추임새 사례를 들춰내고 작가 역시 추임새로 성장했음을 말한다. 주제와 어울리는 소재를 제목으로 정해서 내용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해주는 좋은 제목이다. 김영미 작가는 소릿길에서 만나는 추임새로 살맛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선: 제목은 그 작품의 얼굴이며 뼈대다. 첫인상으로 흡인작용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으며 골격으로 힘의 여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작품들에서 나타난 공통적 아쉬움이 제목잡기라 여긴다. 어차피 수필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이 새로운 시각으로 의미화 되는 과정일진대, 소재로 싹튼 재재를 한 번 더 굴절하여 제목을 이끌어냈으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승화된 제목 말이다.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은 노인부양문제가 요지인 까닭에 그 무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넘쳐났지만 외로웠을 것을’도 서술형에서 이미 다수 보여주고 있어 잘 된 구성과 표현에 손해가 따른다. <판소리와 추임새>는 제목 자체가 흥이고 여유다. 무난한 것 같지만, 주제가 제목으로 앞서 나가버린 아쉬움이 없지 않다.

권: 작품감상 총평과 세 편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 한편을 거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 세 편 모두 입담이 좋고, 여운이 남는 수작이다. 데이케어---에서는, 절실한 상황을 의연하게 처리하는 그릇이 있다. 넘쳐났지만---에서는,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는 깊은 모정이 있다. 판소리---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수필화한 점에서 우수작이다. 이 소재 저 소재 넘보지 않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를 심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의사, 과학자, 철학자들의 작품이 특히 어필하는 경우와 같다. 보통사람이 알 수 없는 세계를 작가가 드러낼 때, 독자는 신문 기사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한 희열과 감동을 음미할 수 있다. 수필이 내 몸을 지켜주는 덕을 가졌거나, 세상을 바꾸는 과학이거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의 문학이라면 더욱더 독자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 편 모두 얼쑤 좋다.

김혜:한국수필 8월호엔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7편 있었으나 우선 세 편으로 줄여 보았다. 그 중에서 특히 김영미 ‘판소리와 추임새’는 구성력과 문학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작가가 판소리 공부를 통해서 추임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고 인생에서 만나는 추임새로 의미를 확장시켰다. 작가는 허기진 영혼을 달래는 추임새로 좋은 글도 쓰리라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승화된 주제 설정이며 추임새 ‘얼쑤’로 끝맺음하는 감각이 재미있다.

이남수 <외로웠지만 넘쳐났을 것을> 작품을 대하니 과거로 회귀하여 작가 어머니의 부엌에서 하루 쯤 머물고 싶어진다. 부엌시렁을 채웠던 조청, 콩엿, 깨엿, 산자, 강정, 전, 나물, 어머니와 음식을 만들던 아낙들, 음식을 나눠먹었던 이웃사람들, 며느리의 설움을 달랬던 식혜. 어머니의 부엌은 음식뿐만 아니라 나눔과 베품의 장소였다. 바쁘고 고달픈 부엌일을 하며 외로움을 해소했을 어머니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불러내고 있지만, 표현하고 싶은 정서를 감성적으로 형상화하는 글이었으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거란 미련이 남는다. 마무리에 좀 더 시간을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조순영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은 작가의 어머니와 관련된 노인 문제와 치매환자를 돌보는 작가의 어려움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작가의 문제지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체험을 사회문제로 확산시킬 수 있는 부분에서 개인적인 후회로 마무리된 것이 아쉽다. 작가의 남편이 장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우나 그 부분이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삭제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제목이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이라면 데이케어센터에 관한 서술과 요양원에 대한 것이 어느 정도 분량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제목에 대해서 고민해주기 바란다.

 

김선: 이번 호에서 다룬 수필 세 편은 고르게 이 시대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들로 감동적이었다. 조순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이지 않을 부모 부양문제를, 이남수는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웠던 시절 이웃과 호흡을 맞추던 여인의 덕을, 김영미는 판소리 가락을 통한 사람들 간의 소통을 다루었다. 이 중 굳이 한 편을 꼽으라면 부분부분 재해석이 이루어진 ‘판소리와 추임새’를 추어주고 싶다. 얼쑤!

 

작품마다 정성껏 읽어주시고 가장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작품평에 참여해주시는 합평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