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수필8월호(발행인 정목일 수필가) 이달의 합평 좌담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매달 발표된 수필 중에서 개성있거나 문제의식을 던지는 수필을 선정하여 본회에서 추천한 3분과 합평좌담회를 가지고 토의를 거친 다음 발췌 정리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이 한 편 발표되면 3가지 형태의 의도가 탄생합니다. 작가의 의도, 독자의 의도, 그리고 작품 스스로 갖는 의도입니다. 매호마다 선별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감안하시고 다양한 읽기를 통해 타산지석의 묘를 얻기 부탁드립니다. 합평에 선정된 작품이 모든 면에서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합평작품(월간 한국수필 7월 발표작품)
1. 최문석< 어떤 후회 >
2. 꽃물의 노래< 김광숙>
3. 노정래 <나는 바보야>
진행: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합평위원 (김선화 : 대표에세이 전국회장 )
김혜숙 : 백미문학회 회장 )
임창순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선별한 이유를 근거로 다양한 각도로 원고를 평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권남희 편집주간 : 이야기가 있는 수필의 대중적인 흡수력과 문학성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짚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임창순 : 먼저 ‘수필의 대중적인 흡수력’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이거나, 호기심이거나, 재미에서 오는 흡수력일 것입니다. ‘나는 바보야’의 경우, 먼저 호기심과 함께 재미가 충족됩니다. 세상에 이런 여자도 다 있다는 호기심으로 재미를 느끼면서, 어느새 작가의 입장이 되어 봅니다. 그렇겠네! 숙명을 인정해야 하는 ‘여자의 일생’으로 공감대에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공감대가 형성되면 ‘문학성’이 우러나야 할 터인데, 이렇게 되면 ‘바보야’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문학성이란 작가의 인생관과 연결되기 때문이겠지요. 작가의 인생관은 독자에게 맡길 수 없는 작가 고유의 권한입니다. 수필이 묘사와 서술의 나열일 수만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꽃물의 노래’가 제격입니다. 작가의 고유 권한이 엿보입니다. 봉숭아와의 여러 인연으로 하여, 싫고 좋고를 떠나 “봉숭아 씨를 ‘뿌려’야겠다는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이미 봉숭아에 물들어버린 인생인 것이다.
‘어떤 후회’는, 위에서 말한 나의 잣대로 잴 때, 주제가 가늠되지 않는 수필이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항의하는 문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수필이라고 하여 어떤 금기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문장 전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일 뿐이다. 어떤 편집자나 평론가가 이런 금기어를 조종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필문학의 모독이 될 수도 있다. 순전히 작가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김혜숙: 시간과 공간에서 직조되는 수필은 한편엔 이야기를, 다른 한 편에서는 문학성을 요구하고 있다. 직설과 상징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져 독자의 감각을 신선하게 자극하지 않으면 독자를 사로잡지 못한다. 이야기에 더하여 깊이 있는 통찰과 신선한 언어를 사용하여 감동을 주고 독자의 글읽기 욕구를 끌어내야 한다. 이야기가 있는 수필에서 문학성은 꼭 필요한 주문이다. 이 둘은 치우침 없이 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김광숙의 「꽃물의 노래」는 작가가 섬세하게 그려놓은 봉숭아꽃물 이야기와 독자들의 경험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나 문학적인 소양은 잘 갖추어져 있으나 실용주의에 겸하여 치유의 기능까지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길 바란다. 최문석 「어떤 후회」는 해구신을 구하는 임금님의 우화로 시작됐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생생한 표현들이 넘쳐난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내용이나 탄탄한 문장력, 독특한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를 유발한다. 독자의 가슴도 시원하게 열린다. 작가의 표현처럼 ‘세상의 점잖음 뒤에 숨겨진 인생의 참모습을 잘 이끌어낸 수필이다.’ 주제가 잘 드러났고 솔직담백하게 그려진 흥미있는 글이지만 문학성이 드러나기엔 소재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노정래 「나는 바보야」는 남편과 젊어서 이혼했으며 딸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화자가 딸의 요구로 전 남편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됐다. 이혼 이후에도 가끔이지만 남편과 옛 시댁 어른들과 교류했고 남편의 다른 여자들과 그들이 낳은 딸들에 대한 연민으로 도움까지 주고 싶어한다. 해탈 아니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계속 ‘나는 바보야’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흔들림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서 사실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개인사를 소재로 삼은 용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사유의 중심축이나 문학성은 찾아내기 힘들다. 소재는 잘 찾았으나 구성, 문장력 등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김선화 : 한국수필 7월호에서 읽은 작품 중 ‘어떤 후회’는 문장에 내포된 의미가 이중적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욕에 대한 예시나 문장의 짜임에서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 한다. 공감대 형성 면에서 가히 대중적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욕대회에 나가 1등을 한 시인에게 보채기를 수차례였으나 결국 들어보지 못하고 당사자를 영영 놓쳤다는 대목이 음미할수록 문학성을 드러낸다.
‘꽃물의 노래’는 봉숭아에 대한 지식, 정보전달 면에서 두각을 보인다. 우리나라 여성들과 친근한 꽃, 게다가 민족의 정서와 닿아 있어 누가 보더라도 쉽게 그리움을 연상해낼 글거리이다. 특히 어머니가 꽃물 들여 주며 하시던 이야기와 꽃의 생김새, 꽃말과 노랫말 속의 애환을 재해석하며 이어대는 솜씨가 유기적 관계형성을 하여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나는 바보야’는 꾸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사중심 수필이다. 짧았던 결혼생활과 그 후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비밀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 같다. 홀로 딸을 키우며 이루어낸 인생사—그 가슴속 내밀한 보따리들을 여미고 살아오며 얼마나 자신을 다잡았을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토해낸 구절들이 대중적 흡수력으로 작용한다.
권: 수필의 소재나 주제를 다룰 때 파격의 수용에 대해 의견을 주시기바랍니다 .
임: 수필의 파격은 옛날 국어책에서 배운 ‘난초 잎의 꺾임’이다. 유리창 깨지는 쨍그랑 소리이다. 세 작품 모두 꺾임이나 파격은 거의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꺾임’은 눈으로, ‘쨍그랑’은 귀로 느끼는 시청각적 효과다. 눈은 홀딱 뒤집어 놓는 효과, 즉 반전이고, 귀는 깜짝 놀라게 하는 경고, 즉 인생관의 피력이다.
김혜: 시나 소설에서는 파격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필도 이젠 독특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수용하여 독자를 끌어당겨야 한다. 병리적인 상태는 지양하되 새로운 정신이 함양될 수 있다면 모든 걸 수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문석「어떤 후회」는 파격에 가까웠다. 독자에 따라서는 외설적일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독자를 위해서도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런 관점에서 「어떤 후회」는 흥미있는 글이다. 김광숙 「꽃물의 노래」는 봉숭아꽃물 들이기에 대한 추억과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새로운 생각이나 느낌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작가가 바바라 여사에게 들려줬던 봉선화 얘기는 설명문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구성을 새롭게 했더라면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미식가들이 맛집을 찾아 길 떠나듯 수필가도 소재나 주제의 파격 수용을 위해서 여행이든 사색이든 찾아 나서야 한다. 노정래 「나는 바보야」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뤄서 독자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었으나 문장력, 구성력 등이 부족해 독창적인 글로 발전하기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이 작가는 아픈 과거사를 들춰냈다. 상처 받을 수 있는 부분마다 ‘나는 바보야’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여운을 남기려고 했지만 퇴고의 과정이 충분치 않았는지 주제가 모호한 글이 되었다.
김선: 어느 문학 장르이든 기존의 것을 깨는 파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항상 고여 있는 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의식의 변화 역시 시시로 일어나는데 시대를 막론하고 한 톤, 한 색깔이라면 너나없이 머물러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욕대회에서 상을 탄 시인의 입을 열게 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운 듯 문장을 부리는 ‘어떤 후회’는 작가의 평소 품성과 맞물려 제3의 문장을 이끌어낸다. ‘상은 탔으나 옷을 입은 욕을 했다’고 옮긴 서술이 점잖아야 한다는 수필의 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해구신 대신 개의 신을 구해 바치고 정치판을 조롱했다는 어부’의 직설을 문장으로 전파할 수 없어 주저주저한 작가가 용기를 내는 부분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위의 세 편 중 대단한 파격이었다고 논할 수 있는 글은 단연 ‘나는 바보야’이다. 소재나 주제를 다룸에 있어 들추기 어려운 신상을 노출시킴으로써 작가의 용기도 읽어내게 한다. 홀로 당당히 살아온 뒤안길을 돌아보며 스스로 회한에 젖는 애수일 수도 있고, 혹은 푸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남자만을 바라본 그의 순정을 차라리 아름답게 껴안게 된다. 이 글에서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1차적으로 핵심을 세우고 자잘한 이야기들은 걸러서 서술에 치우치는 부분들을 한 차원 올려 의미화에 주력했다면 소재의 조심스러움이 넉넉히 수용되리라 믿는다.
권: 작품의 형상화는 작가에게 커다란 과제입니다. 막상 작품을 쓸 때는 어떤가요?
임: 작품의 형상화란, 기승전결의 구성을 통하여 직유와 은유 등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말하는 것일 게다. ‘꽃물의 노래’에서 그런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봉숭아와의 대결 구도가 그러하다. 꽃물을 들인 경험담으로부터 어머니에게 전수된 기법, 민요의 인용으로 구성도를 높이려 한 점이다. 그러함에도 마지막 몇 줄의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술가곡으로서의 효시’에서도 그렇다. ‘예술’이란 용어가 적절한 것이지, ‘봉숭아 씨를 심어야겠다’에서 ‘씨를 심는다’는 말이 가능한지, ‘아파트 화단으로 내려가 꽃씨를 뿌렸다’를 굳이 써야 한다면, ‘꽃씨를 뿌렸다’로만 쓰는 것이 명료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퇴고 문제가 드러난다.
김혜: 수필은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사색의 편린들을 자신의 사상과 철학으로 용해시켜 감성의 미학으로 형상화한다. 김광숙 「꽃물의 노래」는 수필을 읽는 맛이 진하고 쏠쏠하다. 잘 우려낸 육수를 쭈욱 들이키는 맛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톱에 들였던 봉숭아꽃물이 조금씩 줄어든다. 마지막엔 가늘게 남아있다가 사라진다. 이 부분을 ‘세월을 밀어내고 제 물빛도 사라진다’고 표현했다. 손톱에 가늘게 남아있는 부분을 실눈으로 표현했고 손톱 위에 봉숭아 올리고 아주까리 잎으로 싼 부분을 모자와 감투로 나타낸 부분은 좋았으나 그런 형상화 과정을 주제로 이끌어가기엔 약한 면이 있다. 수필은 사유의 길이며 사유를 통한 의미의 확장이다. 사색의 시간을 여유있게 가져야 한다. 최문석 「어떤 후회」에서 휴지를 가을 거리에 뒹구는 낙엽으로 형상화했다. 형상화는 그 글을 가장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감동도 따라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창조성이 요구된다. 독특한 주제와 소재로 재미와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노정래 「나는 바보야」는 화자와 전남편 사이에 얽힌 이야기이다. 지루하게 ‘나는 바보야’만 강조하고 사유의 길을 밟는 형상화가 부족했다. 세 편의 작품에서 공히 사유를 통해서 길러지는 의미의 언어를 찾는 작업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좀더 여운이 남는 밀도있는 글을 위해 정진하기 바란다.
김선: 작품의 형상화는 작가에게 있어 커다란 자산이며 쉽게 내보일 수 없는 보물이다. 이번에 다루게 된 세 편을 읽으며 형상화에 주력한 작품을 찾는다면 ‘꽃물의 노래’이다. 이야깃거리, 즉 소재가 다소 많이 동원된 감은 있지만 이를 민족혼으로 형상화시키기까지 고뇌하는 작가의 의도가 차원 높게 비친다. 시대의 아픔이 녹아든 역사적인 노래, 그것을 문장으로 격조 있게 빚어냈기에 문학으로 빛을 발한다.
권: 작품감상 총평과 세 편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 한편을 거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 세 편 모두 읽을거리이며, 특색이 있다. ‘바보야’는,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다른 여자가 낳은 아이까지 내가 맡았다는 고백에서는, 훌륭한 부덕(婦德)에의 존경심과 어리석은 인생살이에의 호기심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꽃물의 노래’는, 하나의 제재에 매달리는 작가정신이 돋보인다. 다만, 앞에서 작품 끝 부분을 일부 지적하였듯이 언어의 선택이나 조사의 활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 들춰내자면, 육이오 참전 용사인 바바라 집안의 서술에서 ‘며느리도 각별히 지내는 것 같았다.’같은 문장은 독자의 시청각을 거부할 수 있는 문장이다. 쓸모없이 불쑥 튀어나온 이 문장은 며느리가 누구와 각별하게 지내는지 쉽게 알 수 없다. ‘며느리도’를 ‘며느리와도’라고 한다면, 주어 없이도 문장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어떤 후회’는, 문장에 촌철살인의 힘이 있다. 힘에는 장단점이 있다. 잘 쓰면 이웃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잘못 쓰면 피해자가 발생한다. 종류 또한 다양하여 손이나 발길이 센 사람, 입이나 마음이 센(强)한 사람 등 다양하다. 이런 힘을 가진 작가가, 자기 스스로 정한 제재를 다시 ‘후회’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후회를 다시 후회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기법이 아니다. 이왕에 후회한 소재라면, 이 작품만은 후회 없이 써야 할 것 아닌가?
김혜: 세 편 중 최문석 「어떤 후회」는 파격의 수용면에서 돋보인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어냈고 주제와 소재, 표현력 모두 변화를 이루고 말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실험수필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어떤 후회」를 추천하고 싶다. 다만 시작 부분은 좀더 은밀하게, 끝부분은 통통튀는 언어로 표현했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욕심인가. 김광숙 「꽃물의 노래」는 문장이 간결하고 쉽다. 50대 후반 이후의 여성에게 공감을 주는 추억어린 편안한 글이다. 작가로서 역량도 크게 느껴져서 발전이 기대된다. 그러기에 새로운 각도의 착상을 주문해 본다. 봉선화가나 그리스 신화의 예는 주제와 약간 거리감이 있어서 생략해도 무방할 듯하다. ‘카타르시스 하다’ 등 표현이 어색한 부분은 퇴고 과정에서 걸러졌으면 좋겠다. 노정래 「나는 바보야」는 제목에서 호기심이 생긴다. 제목을 용기있게 잘 선택했다. 집중해서 읽었다. 하지만 끝부분까지 읽고 나니 기대에 못미쳤다. 주제가 모호하고 설명이 중언부언 겹쳐서 지루함이 따른다. ‘…것이다’ 등 거슬리는 표현이 많다. 존댓말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됐고 접속사도 지나치게 많다. 생각은 많았지만 사유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듯하다.
좋은 수필은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수필이 체험의 문학이라 해서 이야기를 남발하면 안된다. 주제가 실종되고 감흥이 사라진 수필을 누가 읽으려 하겠는가. 퇴고의 중요성도 인지하고 천천히 거듭 읽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정진하길 바란다. 내게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선: 살펴본 세 편 모두 서사와 형상화 면에서 각기의 특성을 보이지만, ‘꽃물의 노래’와 ‘나는 바보야’는 문학성과의 관계에서 좀 더 치밀한 밀도가 요구된다 하겠다. 반면 ‘어떤 후회’는 문학적 언어에 자유를 부여했으면 하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결국 이 글을 발표하고 나면 또 한 번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운을 뗀다. 파격적인 글의 파동에 적잖이 엄살을 떨면서도 표현의 자유에 공감하는 독자를 만나기를 작가는 설렘 속에 기다리고 있다. 그 수준 높은 심리적 장치에 함께 서성이게 된다. 이로써 ‘어떤 후회’의 일독을 권한다.
* 월간한국수필 합평코너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회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개월씩 맡아 진심으로 합평 해주시는 위원님들께도 인사드립니다. -편집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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