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014년 월간 한국수필 6월호 발간

권남희 후정 2014. 6. 3. 13:13

 

                       발행인 정목일 수필가.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정기구독 신청 서원순 사무국장 532-8702   (월산문학상 .제 33회 한국수필사협회 세미나주제발표문수록 )  

한 그루 나무이기를

 

정 목 일수필가(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나는 나무 향기를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한 날에는 산이나 숲으로 가서. 나무 향기를 맡곤 한다. 나무에게선 마음을 맑게 해주는 향기가 있다. 눈을 감고 나무가 전하는 초록빛 말을 듣는다. 뿌리로부터 가지를 타고 잎맥으로 흐르는 물방울의 말, 햇살을 받아들이고 귀를 기울이던 잎사귀들이 팔랑거리며 바람에게 들려주는 말……. 나무처럼 가슴을 쭉 펴고 쉼호홉을 토해내면 시원하고 편안해진다.

   

나는 나무의 삶을 우러러 본다.

  나무는 나비와 벌들을 불러 모은다.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채취하면서 땅의 구석구석까지 나무의 유전자를 퍼트린다. 나무는 꽃을 피워내 나비와 벌에게 꿀을 나눠준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도 열매와 씨앗으로 양식을 제공한다. 나무는 남을 해치지 않으면서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먹이를 내주고 있다. 나무는 뭇 생명체들의 삶을 돕는 거룩한 어머니다.

   

나는 나무의 생명력을 사랑한다.

 

나무는 뭇 생명체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고, 꿈과 낭만을 준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일깨워준다. 나무는 동물들에게 평화와 휴식을 베풀어 준다.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하늘을 향해 모든 힘을 뻗혀 햇빛을 맞아들이는 모습은 성자처럼 거룩하다.

  

나는 나무의 일 년을 본받고 싶다.

 

나무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 일 년씩의 삶을 완전무결하게 이루어 낸다. 나무는 해의 계시를 받아 삶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일 년이란 시간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공전하는 시간이다. 나무는 그 동안의 삶을 어김없이 한 줄의 나이테로 아로새겨 나간다.

 

 

나는 목리문(木理紋; 나이테의 무늬)을 찬탄한다.

 

나무는 천체와 지상을 통찰하고, 기상을 측정하는 기록자이다. 한 줄의 나이테 속에는 나무의 일 년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삶과 자연의 교감에서 얻어낸 깨달음의 미학이 아로새겨져 있다.

 

목리문 속에는 햇살의 말, 바람의 체온, 물방울의 생각, 노을의 표정, 새소리의 음향이 담겨있다. 목리문을 보고 있으면 순간의 최선만이 깨달음의 꽃임을 말해준다. 목리문은 이 순간의 기록인 동시에 깨달음이다.

   

나는 나무의 일생을 본받고 싶다.

  나무를 본받아야 삶도 아름다워지리라. 예부터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곤 했다. 거목(巨木), 동량(棟梁), 재목(材木)이란 말들이다. 나무와 나비는 서로 도우며 상존함으로써 만물을 먹여 살리고 평화와 기쁨을 제공한다. 서로 먼저 얻으려 경쟁에만 치달리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배경색이 되고 배경 음악이 돼준다면, 자신의 앞날도 자연스레 열려지리라. 인간도 하나씩의 나무가 된다면, 숲 같은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

   

나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어떤 나무로 태어나서 어떤 환경 속에 뿌리내려 살아가고 있는가. 삶을 통해 주변에 어떤 빛깔과 향기를 내고 있는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유익함을 보태고 있는가. 일 년마다 한 줄씩 가슴 속에 아로새기는 목리문에는 어떤 의미와 깨달음을 새겨놓았는가. 나는 나무 등걸에 기대어 삶의 목리문을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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