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월간 한국수필 5월호 (권남희 수필가 지상강좌 )

권남희 후정 2014. 5. 9. 10:48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정기구독신천 서원순 사무국장 02-532-8702  

월간 한국수필 5월호  발행인 에세이                    

시간을 담아 놓은 접시 

鄭 木 日수필가( 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하얀 접시위에 껍질을 벗겨 토막을 낸 복숭아가 담겨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황도(黃桃)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과액이 침샘을 자극하여 목으로 넘어가는 황홀한 기분에 취한다. 황도의 빛깔과 향기와 맛은 결실의 오묘한 완성이다. 한 개의 과실이 익기까지의 전 과정이 맛으로 녹아 순간으로 다가온다. 달고도 향긋한 맛을 내기까지는 봄철의 꽃과 여름의 뙤약볕이 있었다.

황도는 되도록이면 빨리 먹어야 한다. 과실 중에서도 보존성이 가장 취약하다. 조금만 딴전을 피우면 황도의 속살은 거무죽죽해진다. 어느새 어두운 빛깔이 뻗치고 달콤한 과액을 머금고 있던 황도는 허물어지고 물러빠져 볼품이 없어진다. 시간 흐름에 따라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림자, 퇴색, 해체, 소멸로 인도하는 것은 시간이다. .

모든 생명체들은 숨을 멈추고 맥박이 뛰지 않은 순간부터 소멸과 망각의 세계로 들어간다. 시간은 공평한 심판자, 증언자이다. 하얀 접시 위에 놓인 황금 빛깔은 금세 거무칙칙한 색깔로 변한다. 달콤한 점액질의 살색은 보기도 싫은 흉한 빛깔로 바뀐다. 썩어가는 세포의 현재진행형을 바라본다.

황도는 공포와 절망의 빛깔을 띠면서 몸서리치듯 주검의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아, 생명이란 숨결만 놓으면 시시각각으로 변질되고 마는가. 박테리아가 전신에 퍼져서 주검의 모습으로 하얀 접시 위에 허물어지고 만다.

 

숨을 쉬지 않으면 금새 황도처럼 변한다는 걸 알려준다. 어떤 저항도 있을 수 없다. 불가항력일 뿐이다. 입에 침이 고이게 황홀한 과액으로 기분을 북돋워주던 황도의 속살이 죽음의 빛으로 변해버린 것을 목격한다. 달콤한 음식물이 먹어선 안 될 부패물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란 얼마나 향기롭고도 추악한 것이며, 빛나고도 어두운 것인가. 아름답고도 달콤하던 것이 칙칙하고 더러운 꼴로 변모하고 마는 것인가.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황도 조각을 보고서 모든 생명체는 부패되어 사라지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된다. 아름다움과 달콤함은 일시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부패되어 사라지는 것임을 절감한다.

 

퇴색하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시간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의 체험들을 어떻게 남겨 놓을 수 있을까. 나의 삶, 인생을 그대로 망각 속으로 떠밀어 버리는 시간을 돌려 세우고, 퇴색되지 않은 삶의 체취와 온기를 ‘인생’이란 접시 위에 담아 놓고 싶어진다.

 

 

황도를 앞에 두고 행복과 불행의 맛을 함께 음미한다. 결실의 가을이 가면 비움의 겨울이 온다. 황도가 담긴 접시를 본다. 싱싱할 때의 황홀했던 맛을 상기한다. 그 맛을 보던 순간을 행복이라 생각했다. 점차 황도는 검게 변해가고 있다. 황도를 맛볼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만다.

하얀 접시 위에 검게 허물어져가는 황도-. 황홀감을 주던 달콤한 노란 복숭아, 그 열매를 키운 복숭아꽃을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는 하얀 접시는 그대로인 데, 숨 쉬고 살아있던 황홀한 순간은 사라지고 만다. 변질되지 않는 것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흉물이 된 황도의 모습을 보면서, 삶과 인생을 생각한다. 문학인으로서 작품을 써온 것에 대해 자위할 때가 있었다. 나에게 한 부분이라도 썩지 않고 남겨질 가치와 의미라는 게 있을까. 과연 어떻게 살아왔으며, 삶 속에 얻은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