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월간 한국수필 1월호 2015년

권남희 후정 2014. 12. 30. 16:02

 

2015년 한국수필 1웛호 발행인 에세이

 

마음의 붓

 

鄭 木 日수필가 (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장)  

 

나는 붓 하나를 갖고 싶다. 피리장이에게 피리 하나만 있으면 되듯이, 그림 장이에게 그림 도구만 있으면 자유가 주어지듯이 말이다.

제약에 따른 글쓰기에서 벗어나, 붓 가는대로 써보고 싶다. 마음 가락을 타고 피리를 불어 보듯이. 배에 몸을 맡기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이. 아무 욕심 없이 바람 따라 흐르고 싶다.

잘 쓰겠다는 의식, 멋 부림이나 기교 같은 것, 모두 털어버리고 붓이 가자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

심심하여 누구와 말하고 싶어도 혼자일 때, 가장 좋은 일 중의 하나는 글을 쓰는 것, 그 이상도 없을 듯하다. 무엇을 쓸까, 얼마나 잘 쓸까, 이런저런 걱정도 버리고 마음 닿는 대로 산책을 나서고 싶다.

붓 가는대로 막힘없이 가려면 구름처럼 돼야 한다. 이기, 집착, 욕망을 내려놓아야 구름같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 구름은 하늘이란 무한 공간에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소유나 형식을 갖지 않는다. 구름은 정처가 없기에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

 

붓 가는 대로 가려면 마음이 맑아 샘물이 넘쳐흘러야 한다. 붓 가는대로 마음을 맡기지 못함은 이기와 탐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스러움과 초탈한 모습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

지금까지 잘 꾸미기 위한 의식과 형식에 얽매이고, 과장과 수사를 일삼았다. 잘 알지 못하고서 아는 체 했다. 모든 것 비워버리고 무엇과도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싶다. 풀밭에 앉아 쉬기도 하고 강둑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싶다. 해변에서 지는 저녁놀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 황토의 속살에 뿌리내려 핀 풀꽃들, 나비와 나방이들, 냇물의 버들치, 숲 속의 산새와 꿩들의 빛깔을 보고 싶다.

형식이나 구속을 떠나서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거닐고 싶다. 마음속에 오래 쌓였던 한, 상처, 비애도 참아내고 달래서 젓갈처럼 삭히고 싶다. 속 터지고 환장할 일도 세월 가는 동안 물러져서 참을 만하게 되었으면 한다.

욕심만 거두면 될 일이다. 붓 가는 대로 하자면 마음의 경지가 필요하다. 형식과 틀을 뛰어 넘어 자유로움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져야 한다.

언제 마음의 붓을 갖게 될 것인가. 거침없이 제약 없이 그리운 대상과 만나고 소통할 것인가.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나리라. 덕이 있어야 문장에서 온기와 향기가 흐를 것이다. 바깥에서 들어온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삶에서 얻은 체험과 사유로 피운 깨달음의 꽃을 피워내고 싶다.

체험의 깊이와 깨달음 없이는 붓을 얻을 수 없다. 인생을 보는 눈과 사유가 없다면 어찌 붓 가는 대로 쓸 수 있을까.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자유자재의 필법이지만, 침묵과 절제가 있고,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꽃피워 놓아야 한다.

나는 언제 마음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는 마음의 붓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