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월호 발행인 에세이
겨울나무의 미(美)
鄭 木 日수필가9한국문협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겨울나무는 비움과 여백의 표정이다.
나무들은 알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다. 산기슭엔 색과 향기와 새들의 소곤거림도 사라지고 말았다. 침묵과 바람 앞에 온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잎과 꽃을 떨쳐버린 나뭇가지들, 허공으로 미끈하게 뻗은 선들이 예사롭지 않다. 무성한 잎들과 화려한 꽃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던 가지들이 절묘한 균형미를 드러내고 있다. 치장과 화장을 지워버리고 알몸을 내놓은 나무들이 성자처럼 경건해보인다.
벚꽃나무들의 맨몸을 바라본다. 겨울의 벚꽃 나무는 볼 품 조차 없을 줄 알았다. 큰 가지들이 허공으로 휘어지며 뻗어나간 선형(線形)들이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상하좌우로 뻗어나간 가지들의 곡선들은 어떻게 주변의 환경과 어울려 절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뤄내고 있을까.
오랜 연륜을 지닌 나무일수록 땅의 여건에 맞춰서 기막히게도 조화와 균형의 미를 보여준다. 나무들은 한두 개 밑둥 가지로부터 뻗어 올라 어디쯤에서 다시금 가지들을 뻗어가야 안정과 조화를 이룰지, 모두들 신묘한 비법을 지녔다. 세찬 바람에도 잘 꺾이지 않도록 최상의 미감과 생명률을 지니고 있다.
겨울나무들은 기도하는 모습이다. 인고의 침묵 속에서 얻은 내공과 깊이가 만만찮다. 녹음이나 색채로 드러나는 바깥의 모습이 아닌, 바람과 추위와 침묵에서 얻은 삶의 발견과 깨달음의 세계가 보인다. 고목일수록 연륜의 깊이와 삶의 표정이 보인다.
겨울나무들이 이루는 오묘한 조화와 균형감각은 어떤 화가의 솜씨라도 따를 수 없을 듯하다. 마치 하얀 가지들이 하늘로 치오르는 분수 같다. 겨울의 시련과 고통을 딛고 선 내공과 달관이 보인다.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버린 모습이다. 욕망을 다 내려놓아 홀가분하고 초탈한 마음이다.
여태까지 신록과 꽃에만 눈이 팔려 겨울나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 나뭇가지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화려한 모습과 마음을 끄는 향기에만 취해서 겨울나무와 대면하지 못했다. 겨울이면 모두 바람과 추위를 피해서 두툼한 옷을 입을 적에, 겨울나무는 나신(裸身)이 되어 눈바람 앞에 서있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결실을 얻기 위해선 둥지와 가지들이 서로 뒷받침하고 있음을 본다.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려면 벌거숭이가 되어 올리는 기도와 묵상이 있음을 본다. 꽃을 피우는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한 계절의 미학에 있지 않고, 맨몸으로 눈과 바람을 얼싸안으며 견뎌낸 나무의 인내와 내공에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도 겨울나무가 되어 벌판에 서서 세찬 바람에다 몸을 맡기고, 나뭇가지들이 켜는 꿈의 교향악을 연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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