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좋은 수필 2014년 12월호

권남희 후정 2015. 1. 4. 10:47

 

좋은 수필 2014년 12월호 신작수필 14인선  (발행인 서정환 편집주간 강호형, 편집국장 정선모)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2길 36 운현산화타워 305호

 

나도 출근한다 왜

권남희수필가

출근시간 전철 안은 혼잡하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는 것은 아예 포기해야한다. 서있는 일도 한 시간 넘도록 중심 잃지않고 가려면 웬만한 틈새도 체면불구하고 뽀작뽀작 밀면서 잡아야 한다. 출근하는 젊은이들 틈에 끼어 주위를 살피면 내 나이의 여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퇴직한 남편따라 귀촌하거나 해외 여행다니고 봉사활동에 손자 손녀 육아일로 불려 다니느라 여성의 쓰임새는 전 세계적이다.

“ 출근시간에 노인들은 왜 나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그래?”

조용하던 전철 안이 여인의 일침으로 잠시 휘청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은 물고기 꼬리 포닥거림이었는지, 못들은 척하는지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경로석에 앉은 남자노인들도 고개를 숙인 채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태도다.

나 혼자 가슴을 올랑거리며 여인을 바라본다. 칠십 중반 두 여인은 젊은 남자들이 몰려있는 가운데 통로에 서서 경로석을 흘낏거리며 다시 나이든 경로들을 공격한다.

“이 시간에 뭐 볼일이 있다고 젊은 사람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와서 돌아다녀? 아침먹고 느긋하게 나오면 자리도 넓고 그럴텐데, 할 일없으면 뒷산이나 올라가든지......하여튼 문제야”

거침없는 여인의 투덜거림에 나는 다시 설전이 벌어지는 상상을 하며 남자노인들을 바라본다. 옷차림은 등산복이거나 후줄그레한 파카차림에 푹 눌러 쓴 야구모자 아래 얼굴은 대체로 지르퉁한 표정이다. 위엄이나 유들진 면모를 잃은 지 오래 되어 눈빛도 아슴프레하다.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일까? 모두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어디선가 동조 하는 대꾸가 있다거나 이 모든 상황을 정치인이나 국가의 할 일이라고 몰아가며 유창하게 정견 발표하는 남자 어른이 꼭 등장하는데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전철 안 공기가 착 가라앉아 있다. ‘이봐 좁쌀 할매들 ! 입 닫어. 아침부터 떠들기는, 당신은 남편도 없어? ’그런 지하철 막말녀도 없고 이구동성 대꾸하는 입들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무한복제 퍼나르기로 신바람 내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 삼매경이고 고단한 얼굴로 쪽잠이라도 자두려는 듯 거의 꼬꾸라져있거나 눈감고 입벌린 풍경이다.

무엇 때문인지 분명히 의도적으로 공격하던 여인은 시큰둥한 반응이 예상외라는 듯 다시 갈갈거리며 말을 뱉는다. 젊은이를 역성들고 나이든 남자를 마음 상하게 하여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뜩이나 피곤한 젊은 사람들인데 힘좋은 노인들은 서서 가도 되지, 하필 출근시간에 나와서 자리 비키라는 식으로 버티고서면 누가 좋아하겠냐는 내용을 반복 한다. 듣고 있던 나는 점점 불안해져 맥박수가 빨라졌다. 이러다 어느 남자가 참지못하여 폭력이라도 쓰는 것 아닌가.마음에 상처를 주고 건드리면 가장 먼저 폭력적으로 변하는 게 남자 아닌가. 여인은 분명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려는 듯 자꾸만 자극적인 말로 깐족거린다, ‘그만 하세요. 당신은 경로 아닌가요?’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을 때였다.

“ 이봐, 상늙은 왕 언니 당신은 왜 나왔어? 분수없이.... 경로석에 안 서있다고 경로아녀? ”

드디어 경로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대변인처럼 입을 연다.

“어따 대고 상늙은이야. 나는 며느리 출근시키고 손자 유치원 등원시키러 출근이라도 하지

여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힘을 받아서 응수를 한다.

남자도 지지 않았다. 봇물터진 듯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젊을 때 뼈가 부서져라 일하고 이제 같이 오순도순 늙어가나 했더니 마누라 만나기가 대통령보다 어렵다니....... 애 봐준다. 여행간다. 모임간다며 해가 뜨자마자 나가버리면 저녁때나 들어오는데 잔소리하면 황혼이혼 들먹거리니 남자는 피눈물난다.

두 남녀, 무릎맞춤이라도 할 양 등등했던 패기로 설전을 벌이더니 시간이 갈수록 신파가 흐른다.

“ 당신만 출근해? 나도 출근한다. 공짜 점심 먹는 식권 못받을까봐 출근한다. 왜? 일찍가서 가서 줄을 서야 식권을 받을 거 아니야. 여편네들이 나 몰라라 팽개쳐둔 남편들이 이 모양이다, 알았냐 ”

나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갈 곳없는 부부싸움을 본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싸움은 같이 늙어가는 배우자와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은 목마름이고 외로움을 달래가며 정을 나누고 밥한 그릇 같이 먹고 싶은 저항정신이다.

아침 출근시간 전철 안은 나이 든 남성 대 여성대표가 벌이는 부부싸움조차 관심없다는듯 조용하기만 하다. 출근하는 젊은이들은 이들 외침이 들리지 않는지 들려도 관심이 없는지 무표정한 채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코방아를 찧고 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남편이 날바람잡이처럼 나간다. 야구 모자 눌러 쓰고 등산복 차림인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설마 점심식권 받으러 출근하는 것은 아니겠지.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덕성여대. MBC아카데미 수필강의

작품집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등 6권 . 22회 한국수필 문학상. 8회 한국문협작가상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