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2014년 한국문인 8.9월호

권남희 후정 2014. 8. 3. 13:03

 

                                    2014년 한국문인 8.9월호 (조병무 문학평론가. 김용만 잔아문학박물관 관장.심영희 수필가.. 권남희 수필가 외 )  표중식 편집주간

세상을 고이는 일

권남희 수필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상품으로 담아주면 안되나?

제사상 올리는 여러가지 과일을 들이고 상자를 뜯을 때마다 실망하는 적이 더 많다. 포장술만 대단하지 내용물은 기대만큼 알차지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 마음을 잡느라 포장용으로 첫줄에 올린 과일과 밑바닥 상품이 항상 차이가 나는, 오래된 관행같은 고질 앞에 번번이 좌절한다.

불편한 마음이지만 나 역시 접시에 과일을 괼 때 물건파는 이와 같은 방법을 쓴다. 작은 것들을 아래로 깔고 보기좋고 큼지막한 것들을 위로 올리느라 애를 먹는다.

무의식적이다.

지금까지 배워온 패턴대로 당연하다는 듯 제물을 괴며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대추를 쌓아올리거나 깎은 밤을 접시에 고일 때는 어려운데도 어쩔 도리가 없다. 크기가 일정하지않고 울퉁불퉁하니 작고 모양이 나지 않는 것을 아래로 깐다.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만 흔들려도 간신히 고인 것들이 우르르 무너진다. 틈새로 크고 작은 것들을 조화롭게 끼워 맞추면 괸 제물들이 흔들리지않고 견딜 수가 있다. 고이기 편한 일만 생각하면 큰놈을 아래로 두고 작은 것을 쌓으면 쉬운 일이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모양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은 것만 골라서 아래로 쌓기 시작하면 위로 갈수록 큰 것만 올라가니 아래는 힘을 받지못해 흔들리다 조금의 부딪힘이 있어도 무너지고 만다.

처음 시집살이 할 때는 일을 잘 못하니 뭐든지 접시에 담는 일을 먼저 배우라고 하였다. 제사가 여러 상씩 이어지면 그만큼 상에 올리는 제물도 모두 새로 바꿔줘야 한다. 밤과 대추 과일 접시를 몇번씩 고이는 일이 힘들어서 제일 큰 놈들을 아래로 깔고 작은 것을 올리니 탄탄하고 흔들리지도 않고 좋았다. 그러나 평생 제사상 괴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있는 집안어른들이 누구인가. 매서운 눈썰미로, 뒤집힌 음식상을 모두 철수시켰고 여러날씩 모여서 장만했던 제물을 형편없게 만든 새 며느리는 집안 형님들에게 경계 대상이 되고 말았다.

중고등학교 체육행사 때의 기수단을 생각한다. 도 대항 학교별 체육대회가 있을 때 우리는 종합운동장으로 가 매스게임에 참여하곤 했다. 그럴 경우 학교에서 하는 조회시간과는 달리 키 작은 친구들은 당연하게 가장 뒤로 밀려난다. 도지사와 도민들이 관람하는 큰 체육행사이니 키가 크고 멋져 보이는 아이들을 기수단으로 뽑아 앞줄을 장식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줄 꽁무니에서 볼품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으며 열적어 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종말론이나 망국亡國론을 반복해오고 있다. 그런 위기사회 진단 근거도 얄팍하기만 하다. 그저 막연하게 인간의 죄를 거론하거나 지나치게 발달한 과학문명을 탓하고 멸망한 로마처럼 한국에 목욕탕이 많아지고 음식문화가 발달하여 과식하는 징후들과 닮아있다는 그럴싸한 경고 메세지를 보낸다.

시오노 나나미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에서 ‘정신의 위기’를 말한 부분이 있다. 현대 문명상황과 5세기 말 고대로마의 멸망이 흡사하다고 하며 중세암흑기가 다시 온다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부추기는 위기론을 꼬집은 것이다. 위기론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의 위기라고 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선진국형 사회에서는 생활수준이 낮은 이민족의 문명으로부터 침입을 받는다고 한다. 로마는 3D 노동시장과 외인부대에 야만족(시오노 나나미 표현)을 받아들여 처음에는 그들 문화까지 흡수하고 자국의 문화로 발달시켰다.

하지만 힘든 일을 하지않으려는 국민들의 정신은 나약해지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동기유발이 강력한 야만족이 유입되면서 그들 문화가 다시 그 나라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노동시장은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거의 맡아주고 있는 현실을 곳곳에서 본다. 건축일이나 식당은 물론 서비스, 판매, 교육까지 파고들었다.

갓난 아기부터 유아들을 돌봐주는 다른 국적을 가진 보모들을 마을 버스나 마트에서 종종 보면서 생각을 한다. 이 세상 부모들 어느 누가 자식들이 힘든 일이나 허드렛일을 직업으로 갖기는 원하겠는가. 자신의 자식들만은 존경받으며 돈 많이 벌어들여 권력을 창출하는 직업 갖기를 꿈꾸며 바깥일에 매달리고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은 모순이다.

이제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부터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남한산성을 가면 안팎이중으로 쌓은 성벽의 바깥성을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끼운 형태로 쌓아올린 한봉성벽을 볼 수 있다. 모양이 일정하거나 크기가 고른 돌만 골라 성벽을 쌓아올리는 일은 힘들 것이다. 큰 돌과 작은 돌을 끼워가며 성벽을 쌓았다. 가장 아래는 넓고 큰 돌들이 주춧돌로 자리 잡고 있다.

주춧돌을 놓지 않아, 숫제 무시해버려 세상이 고여지지 않은 채 흔들리다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일들이 터지고 있다.

믿음직하고 가장 잘난 것들이 밑바닥을 고이는 일. 세상을 그렇게 되돌려 놓는 일이 힘든 것일까.

권남희 약력

(현)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당선

작품집 《육감& 하이테크》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등 5권. 수필선집 《내 마음의 나무》.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제 8회 한국문협 작가상.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