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문학의집. 서울 소식지 수록원고입니다.
더 미쳐야 피는 꽃
권남희 수필가 월간한국수필 편집주간
세상 꽃들이 나를 무시한다.
잘 피어난 꽃들을 보면, 피기도 전 모가지 툭 떨어뜨리던 동백이 생각나 좌절하고 만다. 내 인생에서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기 분야에서 능력껏 피어난 꽃들을 질투한다. 나에게 없는 정열이 갖가지 색깔로 흔들리며 나의 무능을 탓하는 것 같다. 꽃봉오리를 내밀었을 때 그들은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었을테니 꽃이 열리는 최고봉 그 순간은 아무나 붙잡을 수 없다. 정열을 다해 미쳐야 꽃도 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생각으로만 맴돌고 뜨뜻미지근하여 밤새워 공부한 적 없는 나를 돌아본다. 배움이든, 관계이든 몰두하여 끝을 내지못하고 ‘언젠가 제대로 완성해야야지 ....’ 이런 핑계를 대며 미루어둔 것 투성이다.. 어머니는 나를 ‘무능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답답하다며 짜증을 냈다. .
동백을 키우다 번번이 실패를 했던 일은 내게 상처로 남아있다. 제라르듀 빠르듀가 나오는 <그린카드> 영화에서 보았던 유리 온실을 꿈꾸던 나는 한 때 베란다에 많은 화분을 사들였다. 그 중에 붉은 꽃을 잔뜩 매달고 있는 동백꽃이 나를 사로잡아 몇 개 구입했는데 그 해만 꽃을 달고 있다가 동백은 시름시름 죽어갔다. 여름 더위에 꽃눈을 틔웠다가 겨울이 오면 슬슬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동백, 나는 붉은 그 꽃을 볼 시간을 기다리며 화분 앞을 서성이고 물을 주었다.
‘언제 필래? 슬쩍 내밀지 말고 활찍 피어야 한다.’ 주문을 걸어두곤 했는데 영양제도 상관없었는지 막 피어나기 전 꽃봉오리인 채 점점 말라가다가 어김없이 자기 모가지를 부러뜨렸다. ‘눈물처럼 후두득 떨어지는 ’꽃이라 송창식은 노래 불렀지만 나는 꼭 아기낳다 죽은 산모를 보는 것같아 조금만 더 힘주지! 안타까움으로 내 몸을 떨었다.
동백꽃도 나를 거부하다니...... 떨어진 동백꽃봉오리를 들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기르던 꽃들이 죽거나 잘 되지 않으면 나는 내 능력의 한계라 느껴 기력을 잃고 죽고 싶었던 것이다.
문학에 미칠 일이다.
‘내 인생은 왜 제대로 한 번 피지도 못하고 늘 이럴까“
어린 시절 동네 알코올 중독자들이 그악스럽게 주사를 부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영향인지 나는 무엇이든 적당히 하다 그만두었다. 악착스럽게 매달려 도달해 본 게 없다. 밤을 새워 시험공부 한 번 한 적 없으니 성적은 바닥이고 사춘기 때는 다이어트한다며 실컷 먹지도 못한 채 먹다 말았으니 마디게 자란 나는 키도 작아 주눅들고 쭈뼛거리며 친구들 뒷전에 숨어 지냈다. 몸치에다 뜸지근하니 춤이나 운동도 배우다 그만 둔 것 투성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고질병으로 나타나 살사댄스, 테니스, 수채화, 볼링 등....... 몇 달 다니다 그만 두고 말았다. 피아노, 영어회화도 반거충이로 끝났다.
이성한테 몰입하는 일도 체면만 세우느라 ‘오는 사람 쫒고 가는 사람 더 쫒아내는 ’ 식이었으니 불지르고 불타는 연애를 어찌 할 수 있을까. 속마음을 들킬까봐 겁나게 변명한 일도 우습기만 하다, 무엇이든 정성도 들이지않고 흑즉학죽하여 끝을 못내니 “제대로 끝내는 게 없냐?” 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연애에 빠져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은 친구를 보면서 깊이 빠져들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한테 오는 모든 것은 죽어버리거나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일까?
그가 내 곁을 떠날 때 던진 말은 나에게 평생 풀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너하고 살면 일도 안 풀리고 말라비틀어져 죽는단다.”
떠나거나 죽거나 한 내 인생에서 살아남은 문학 하나!
‘미칠수록 낫다’고 한 어느 작가의 말처럼 문학에 고마워하며 남은 시간 억수로 미쳐야 할 일이다. 시간날 때만 문학을 생각하고 짜투리 시간에 글을 쓰고 아니면 말고 방식도 버려야 한다. 잠 잘 때도 문학 속에서 잠들고 꿈도 문학 안에서 가꾸는 것이다.
문학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 생각으로 생각을 모아 생각으로 일어서고 생각으로 탑을 쌓아 그 안에서 제대로 미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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