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015.월간 한국수필 5월호 코드미디어

권남희 후정 2015. 5. 29. 15:02

 

  2015년 월간한국수필 5월호 수록 (발행인 지연희 이사장. 정기구독 02-532- 8702) 

수필 함께 읽기를 통한 4월호 수필 합평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기존의 월평코너를 다른 형태로 시도한 결과 의외의 호평을 받고있습니다. 회원들의 동참이 높아진 점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독창적인 의견이 있다면 뜻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분(중진이상 .중진, 신인)의 각각 다른 관점과 감각을 기대하며 합평위원 한분이 맡은 매수는 200자원고지 7매 기준입니다. 추천된 세편의 작품 총평, 질문취지에 적합한 평과 함께 문학 안에서의 순기능, 역기능, 특징을 분석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합평작품

1. 김기동 <논두렁 밭두렁 가는 왕진의사>

2, 최춘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

3, 김진복 <4월은 왜 아픈가>

 

합평위원

한동희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역임)

송복련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박기옥 (대구대학교 수필창작 주강 )

진행 (사) 한국수필가협회 권남희편집주간  

권남희: 서정수필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김기동 의<논두렁 밭두렁 가는 왕진의사>는 죽음까지도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보듯 아름다운 풍경을 수필 안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감정의 정서가 뿌리인 서정수필을 쓸 때 그 바탕이 반드시 자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도시나 과학, 문명의 발달부분은 왜 서정수필 수용측면에서 어려운지요?

 

한동희: 김기동의 <논두렁 밭두렁 밟고 가는 왕진의사>는 어떤 양식에 얶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문장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이렇게 편안한 문장력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내공의 힘이라 생각된다. 한 번 읽고 쉽게 이해되는 글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수필에서 두세 번 읽고 생각해야 이해되는 글은 사양하고 싶다. 이 수필은 서정수필의 진수를 맛보게 해 주는데,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에 동화되어 가난도 이겨내는 힘은 자연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승화시켜 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뤄 더욱 빛이 난다. 이 글에서 구지 지적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도입부의 첫 문장이 길고, 읍내에는 의사가 '하나뿐이어서'라고 한 것은 옥에 티처럼 보인다. '하나'라고 하는 것은 물건을 지칭하는 말로 여기에는 '한명 뿐' 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도시나 과학, 문명의 발달부분을 소재로 하여 서정수필을 쓰기가 힘든 것은 논리적인 면을 추구해야 되는 까닭이 아닌가 한다. 자연을 토대로한 서정수필은 '가슴'(감성)으로 쓰지만, 과학과 문명, 도시를 바탕으로 하는 글은 '머리'(理性)로 써야하기 때문이 아닐까. 도시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해관계로 피폐해지고, 그러므로 도시의 삭막함과 과학과 문명의 조직적 조합에서 정서적 감동을 끌어내기는 힘들다고 본다. 결국 인간은 자연에서 위로받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나 도시와 과학, 문명의 바탕 위에 그 어떤 인간애적 소재가 가미된다면 훌륭한 서정수필이 태어날 것도 같다. 좋은 수필은 서정의 바탕 위에 지적요소가 곁들여진 글이 아닌가 한다.

  

송복련: 기억은 과거를 왜곡하거나 새롭게 정리하는 회상의 역할을 한다. 김기동의 <논두렁 밭두렁 가는 왕진의사>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가난에 대한 기억보다 흰 가운을 입고 푸른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는 의사에 대한 부러운 시선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재생된다.

푸른 보리밭과 흰 가운의 묘사가 선명하며 맛깔스런 서사가 평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아버지의 운명에도 애도보다는 왕진해준 의사의 자비로운 모습과 논두렁 밭두렁 길을 가던 광경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화자의 내면의식에 자리 잡은 왕진의사에 대한 부러웠던 기억을 아름답게 형상화함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현 수필 풍토가 지나치게 서정적인 수필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문명의 발달과 도시 이야기 같은 소재를 취하여 수

 

박기옥 : 김기동 작가의 「논두렁 밭두렁 밟고 가는 왕진 의사」는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수필입니다. 수필의 지향점이‘감동’이라고 할 때 오늘날과 같은 산업사회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밟고 왕진 가는 의사의 모습은 분명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더구나 작품 중 배경으로 나오는 면내에 한 사람 뿐인 의사가 시골 동네를‘바느질 하듯이 찾아다니며 환자를 돌보았다’는 표현은 독자의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 양심적인 의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도립병원 의사를 대결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식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필을 쓸 때 작가가 특히 주의해야할 점은 펙트로 부터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일 것입니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시스템 보다는 의사 개인의 품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 수필가들도 시골, 자연, 가난은 인간적이고, 도시, 문명, 풍요는 비인간적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권남: 전시회나 음악 등 감상기를 쓸 때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춘의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행복’을 컨셉으로 쓰고 있습니다.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알기쉽게 했습니다. 감상기는, 원고 분량이 한정되었을 때는 전체를 담으려는 시도나 모든 것을 다 아는 능력자같은 ,작가의 전지적全知的 서술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한동: 최춘의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어느 햇살이 따듯한 날 미술관에 가서 르느아르의 그림을 감상한 글이다.

예술만큼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영혼을 맑게 해주는 매개체도 드물다고 본다. 예술 중에서도 음악은 듣는 사람의 정신세계와 가장 빨리 소통(감동)되지만, 그림을 감상하고 그 감동을 글로 표현하기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느낀 행복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준 이 글은 훌륭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나친 서술과 묘사는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기도 한다. 작가가 소개한 작품 중 한 두 점을 선택하여 그림에 자신의 인생을 접목시켜 삶의 의미를 확충 시켜나갔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생을 어느 정도 안다면, 음악이든 미술이든 감상이나 해설에 그치지 말고 그것에 자기의 삶을 결부시켜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송복: 최춘의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미술관 전시를 관람한 후 작품에 대한 묘사와 느낌, 화가의 말을 적절히 인용하여 예술 철학에 대한 해설까지 치밀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타 장르에 대한 안목으로 감성과 지적 내용이 조화를 이룬 수필이다. 이런 경우 자칫 작품에 대한 지식을 과대하게 전달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화자는 감상의 포인트를 ‘행복’으로 잡고 미술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화가가 색채의 화려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화폭으로 전달하려던 예술철학을 말하고 작품에 동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된 작품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다소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어서 화자의 남다른 시선과 해석으로 행복을 주는 화가에 대해 선명한 인상을 남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두 행은 주제와 동떨어져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최춘 작가의「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읽는 내내 화가의 행복한 기운이 번져 나오는 따뜻한 감상기입니다. 그러나 너무 여러 작품을 거론하여 세련된 미술 해설집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감상문을 통해 보다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주제를 향한 몰입성과 작가만의 개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는 독자보다 아주 조금만 앞서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경에 대한 너무 친절한 서술도 거북했고, 절제가 부족한 표현력도 작품의 흡인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열하일기 등장도 생경스러웠습니다.

 

권남: 김진복 <4월은 왜 아픈가>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그만큼 수필가들이 다루지않는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배경을 담고있는 글은 잘 풀어나가면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인되어 좋은 효과를 얻습니다. 그러나 과격해지거나 교훈적인 면만 강조하게되면 역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어떤지요?

 

한동:김진복의 <4월은 왜 아픈가>는 1960년 2월28일 대구에서 있었던 학생의거를 회상하며 역사와 시대적인 아픔을 토로한 글이다. 민주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시대정신과 정의감이 엿보이며, 그 시대의 아픔의 멍에를 지고 반세기를 살아온 작가의 한 (恨)의 형상화이다.

글의 중심은 2·28 학생 민주운동인데, 제목은 <4월은 왜 아픈가>로 되어있어, 독자는 제목만 보고는 얼핏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4월이 아픈 것은 도끼에 찍힌 나무 등걸의 각인처럼 우리들 마음속의 지워지지 않는 자국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그 자국 속에는 4·19 학생혁명의 아픔도 인각돼 있으리라. 작가는 지나간 역사속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이 4월,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혹한의 겨울을 견디어온 나무들의 고난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자신에게 나무처럼 든든함이 있는지 자문하며, 어느 역사의 한 줄에 자신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갖는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물처럼 지나간 4월에 매이지 말고 새롭게 다가올 4월이 더 중요하다며 미래 지향적으로 나간다. 작가는 지나간 역사 속의 사건을 기록에 그치지 않고,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역사라는 주제를 수필문학으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구성이 산만하고,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고 직설적이어서 서정성이 떨어진다.

송복: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게 되는데 ‘4월은 왜 아픈가‘라는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삼라만상이 모두 수필의 소재가 된다고 하면서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소재의 빈곤을 말한다. 시사성이 있는 글은 생명이 길지 않다는 말을 듣지만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임을 생각하면 어떻게 형상화하여 완성도를 높이느냐의 문제이지 순수서정만을 고집할 경우 신변잡기나 무감동을 불러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김진복은 보기 드문 역사적 기억을 소재로 4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보편적 판단과 가치 수준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수필이란 글쓰기로 끌어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두에서 역사에 대한 개념 서술이 모호하고 길어서 독자의 호기심을 반감시키므로 넷째 단락을 서두로 삼는 것이 좋겠다. 잦은 단락 구분은 산만하여 주제가 흐려지기 쉽다.

박기 : 수필이‘나의 이야기’에서‘우리의 이야기’로 발돋움해야할 때 김진복 작가의「4월은 왜 아픈가」는 주목할만한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28 민주운동과 같은 사건은 현존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잘 풀어나가면 공감대 확산도 수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재일수록 발이 흙에 착 달라붙는 현장감이 중요한데, 글 흐름이 전반적으로 감성에 치우쳐 공감대를 얻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더러 미완성 문장도 보이고, 압축과 생략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문단 나누기도 주제 전달에 걸림돌이 되었고, 결론 부분에서도 억지가 느껴졌습니다.

 

권남: 독자취향은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총평과 함께 평자의 관점에서 한편을 추천 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한동: 지금까지 감상한 세 사람의 수필은 모두 개성과 취향이 달라 누구의 작품이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4월이 왜 아픈가>는 역사와 시대성을 역설한 글로, 수필가는 때로 사회 비평적인 글로 독자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문화 예술 측면에서 권장할만한 소재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에서 경쟁적으로 유럽의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들여와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니 안방에서도 유럽 문화를 감상할 수 있어 반가운 소식이다.

편집실에서 선정해준 세편의 작품들은 기회가 되면 한 번씩 써보고 싶은 제재들이지만, 아무래도 <논두렁 밭두렁 밟고 가는 왕진 의사>에 긴 여운이 남는다.

 

송복: 세 편의 작품은 저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다. 김기동의 <논두렁 밭두렁 가는 왕진의사>는 서정수필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며 작품성이 돋보인다. 세상이 변하고 기호와 감수성도 변하는 현실에서 시대에 걸 맞는 내용과 표현에 변화를 위해서 가능성을 열어 보인 김진복의 <4월은 왜 아픈가>는 소재의 희귀성으로 관심을 끈다. 감동과 주제의 미적 형상화가 약하므로 타 장르의 예술에 대한 심미적 안목과 예술적 감각을 표현한 최춘의 <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를 추천합니다.

박기: 세 작품 모두 장르가 달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행복을 주는 르느아르」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부러웠고,「4월은 왜 아픈가」는 소재가 탐났습니다. 그러나 김기동 작가의 「논두렁 밭두렁 밟고 가는 왕진 의사」가 훈훈한 수필로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새로운 관점으로 시작하는 세 분 선생님들께, 세상 사물들까지도 생명을 얻으려는 이 봄날 탄력적인 평을 기대 해봅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