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권남희 수필 나비 한마리 <좋은수필> 2015년 8월 발표

권남희 후정 2015. 8. 15. 11:37

나비 한 마리

권남희

버스를 기다립니다. 나무 둥치 아래 무언가 떨어져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꽃잎 같기도 하고 바람에 팔랑거리는 낙엽같기도 하여 다가가 쭈그려 앉았습니다. 나비였습니다. 날개마다 동그란 무늬가 점점이 박힌 나비의 손톱보다 작은 몸이 조금 부서져있습니다. 숨죽인 채 살그머니 다가가도 팔랑 날아가던 나비가 날지 못하니 작은 몸으로 어딘가에 부딪혔나 봅니다. 자칫 사람들 발길에 밟힐까 걱정되어 나무둥치 구멍에 꽃과 함께 넣어줍니다. 동굴같은 곳에서 추스르고 한잠 자고나면 나아지리라 기대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해, 이 나비만큼 가볍고 얇아져서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았던 나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쓸모없는 벌레, 비굴한 인간이라는 자책에 시달릴 때였습니다.

고3이 되자 아들은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는 담임선생님 전갈에 아이가 ‘여러 날 결석했다’는 고백을 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내 몸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 암담했지만 담담하게 ‘말해주어 고맙다’며 아이를 안았습니다.

살고 싶지 않다는 듯 축 처진 아이와 함께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 무릎 아래 읍소했습니다. ‘부모들은 멀쩡해요’ 면전에서 야단도 맞아가며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눈길이 아래로 떨어져있으니 선생님의 너저분한 옷자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날 무얼 드셨는지 바지부터 셔츠까지 얼룩이 심하고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집에도 못 들어갔는지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차림이 초라하고 아이의 어미인 나는 마음이 더 할 나위 없이 참담했습니다. 그런대로 선생님들에게 귀염 받으며 학교생활 잘했는데 학교가 갑자기 이렇게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니 꿈을 꾸는 듯 상황이 빨리 와 닿지 않았습니다.

미술전공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힌 게 화근이었습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갔으니 새 학기 군기를 잡아야하는 선생님 눈에는 ‘대표 선수선발의 절묘한 순간’에 등장한 아이였습니다. 급우들 앞으로 불려나간 채 선생님 앞에서 동성애자가 되어 갖가지 놀림을 당하고 ‘너 같은 애는...." 들으며 맞았습니다. 앙드레김이냐?......... 여러가지 앙드레김 말투 흉내에 너같은 애들은 갈 대학이 없다면서 한동안 세워두었습니다. 며칠 뒤 노란 머리를 어쩌지 못해 삭발하고 나타난 아이를 선생은 다시 ‘반항 하나?’ 때리고 겁을 주었습니다. 마음이 지극히 여리기만 아이는 엄청난 혼란 속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말수도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져갔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학교를 거부해도 고등학교는 졸업은 해야 할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날마다 교문 앞까지 태워다주고 교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다고 아이의 닫힌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요. 아이는 담을 넘어서 게임방으로 달아나거나 어찌 교실까지 들어가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다 모두 돌아간 교실에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엄마 말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의 아이가 학교를 거부하기 시작한 일은 집안을 컴컴한 동굴로 만들었습니다. 학부형이 된 후 처음 겪는 일이라 가슴은 늘 울렁거리고 머리는 텅 비고 바람이 드나들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 나만 버려진 것처럼 막연하고 초조했습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삭이자니 몸에는 항상 두드러기가 돋았습니다.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해의 1년은 아이와 나에게 남아있는 조금치의 자존심도 허용치 않는 듯 무엇을 해도 소수점 이하 무한대로 떨어지는 나날이었습니다.

‘저런 애들이 어떤 대학을 가겠어요. 가세요.’ 불러놓고 가라며 눈도 맞추지 않는 선생님이라도 만나 읍소하고 나오는 날은 절망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너희들은 괜찮은 거니?’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말수가 줄어든 아이는 아프고 저체중에 시달렸습니다. 그림마저 그리지 않는 아이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아이의 꿈이 나비의 날개처럼 한순간에 바스러질까봐 조바심을 쳤습니다.

깨질까 살금살금 살얼음 강을 건너는 조심스러움으로 하루하루 그저 견디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동굴에 숨은 한 마리 나비였지만 스스로 치유를 하면서 학교도 졸업하고 봄이 되자 꽃잎을 옮겨다니는 나비처럼 날개를 팔랑거리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도 수시로 염색을 하니 노랑나비도 되었다가 호랑나비도 되었습니다.

 

사진촬영 2013년 8월 속초에서 (원본을 가지고 포토샵했음. 나비도 화려해지고 바탕이 더 화려해졌네요)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 수필당선. 현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작품집《그대삶의 븕은 포도밭 》 《육감&하이테크》등 6권

덕성여대평생교육원 .한국문협평생교육원 .MBC아카데미강남, 잠실롯데 등 수필 강의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