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월간문학2015년 8월호 권남희 수필

권남희 후정 2015. 7. 30. 13:36

 

 

멀미

권남희

어느 날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어도 멀미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얼마나 신이 났던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야호... 탄성을 질렀다. 비로소, 세상에 나와 무엇에건 흔들리며 떠들고 웃다가 멀미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신기하면서 대견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아예 버스를 타지 못해 외가라도 가야하면 외삼촌이 1시간 거리를 걸어와서 나를 업고 갔다. 어른들은 비위가 약해서 그런다며 소금을 한 숟갈 먹여 쓴물을 토하기도 하고 여름이면 익모초 즙을 마셨다. 차라리 쓴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차멀미는 나를 힘들게 했다.

외딴 집에서 자라던 내게 처음 만나는 세상의 어지간한 것들은 나를 어지럽게 했다. 많은 사람들, 그들이 내는 큰 소리는 천둥소리 같아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거대해 보이는 도시에 잘못 빨려들었다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멀미나는 일을 피해 나는 세상 속을 걸어 다녔는데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걸어 다니는 일이 편하고 좋았다.

집에서 10분정도 거리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중학교는 훨씬 멀어졌는데도 나는 걸어 다녔고 고등학교는 더 멀어졌는데 날마다 걸어 다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휘발유냄새 틈에서 흔들리다가 어느 정도 가면 중간에서 내리든지 틀림없이 구토를 하고 마는 일은 공포였다. 고3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나서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는 밤 시간에 교문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버스 타는 일에 빨리 익숙해졌으면 힘들지 않았을 것을, 농사일마치고 피곤했을 아버지까지 나의 차멀미 때문에 고생한 것이다. 6.25때 입은 총상으로 통증을 달고 살며 진통제가 필요했던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목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병을 사곤 약사에게 습관처럼 내 비위 약한 것을 알려주었다. 어느 누구도 차멀미를 이겨내려면 끝까지 버스를 타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흔들리는 일이 내게는 그렇게 겁나는 일이었을까. 멋모르고 나선 제주도 수학여행 때는 뱃멀미에 물멀미까지 시달리다 제주도 식물원에서는 꽃향기에도 멀미가 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어떤 친구는 탈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때로 차가 덜컹 하며 세게 흔들리면 신난다며 비명을 질렀다. 놀이기구를 타듯 즐기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학 입학 시험을 보러 고속버스를 탔을 때도 당연히 멀미 끝에 서울 도착할 때쯤 하나밖에 없는 외투에 구토를 해 어머니를 걱정시켰다. 다음날 시험인데 어머니는 약국으로 달려가 비위를 가라앉히는 약을 사들고 오니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교가 중심지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때 같이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학생들은 무척 많은 듯 했고 따라온 학부형까지 점심시간에 몰려든 구내식당은 아수라장이었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밥을 먹는 곳이 아닌, 운동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줄서는 문화가 몸에 배지 않았던 그 때 서로 먼저 밥을 가져가려고 소리 지르고 점심을 거르면 시험을 제대로 못 치를까 안타까운 부모들은 말싸움에 몸싸움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 겨울 점심시간에 밥을 놓고 벌이는 광경에 나는 사람멀미를 하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하는 서울은 참 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낙심으로 귀먹은 사람처럼 아득하게 앉아 있었다.

어느 틈에 어머니는 줄을 새치기했는지 냉면그릇의 넓은 대접에 밥을 말아서 디밀었다. 반찬도 없고 달랑 국밥 한 그릇에 충격을 받은 나는 , 한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너무 낯설고 꼭 그렇게 그악을 부리며 그 밥을 먹어야하나 참혹한 기분이 들어 차라리 안 먹겠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모험심많고 활달한 편인데도 난장같은 곳이거나 어지러운 풍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던 나는 화를 내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내 표정을 훑더니 내색도 않은 채 국밥에 얼굴을 묻고 말끔하게 해치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충분히 내 앞으로 펼쳐질, 이리저리 흔들리고 채일 인생을 알았으리라. 어머니가 없는 서울에서 나 혼자 별의별 삶의 멀미를 하며 칭얼거려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서울거리와 사람들에 익숙해지고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서 멀미도 하지않을 만큼 비위가 탄탄해졌을 때 통증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살기 힘들 것 같이 아득해보이던 서울, 아무도 나의 멀미하는 일에 관심보이지 않는 시집살이에서 나는 냉면대접에 밥 한그릇 뚝딱 말아 후르륵 흡입하는 뱃심좋은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안고 버스에 서 있어도 끄떡없이 30분 이상 흔들리는 강철여인,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넉살, 뚝심 앞에 멀미는 달아나버렸다.

이제, 차멀미 때문에 포기했던 버스에서 책 읽기까지 해내고 있으니 어느 한구석 나를 불편하게 했던 ‘흔들리는 일’에 대한 좌절감이 사라진 기분이다.

권남희

전주출생. 세종대 졸.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 현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작품집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육감&하이테크》등 6권

수상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덕성여대평생교육원. MBC아카데미 강남. 롯데잠실 수필강의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