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현대 모비스사보 11월호 권남희 수필

권남희 후정 2015. 12. 13. 16:41

 

               현대모비스 사보 11월호 권남희 수필 수록(발행인 정명철   발행처현대 모비스 홍보실 )  www. mobis.co,kr

 

케첩 내 인생을 접수하다

권남희

“아따---, 고추장 엎은 밥은 매워서 못 먹는디요.”

첫 미팅자리에서 망신 줄 톡톡히 샀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대학에 입학하여 미팅을 나간 그 봄날은 레스토랑에서 남학생들이 저녁을 사는 나름의 신사적인 자리였다. 빵집도 안 가봤던 나는 메뉴도 처음이고 음식이름도 생소하여 남들이 시키는 것을 눈치껏 따라 주문했다. 나이프와 포크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돈까스를 시킬 일이지. 듣도 보도 못한 오므라이스라니... 처음 본 오므라이스는 고추장을 한 대접 쏟은 모습으로 접시에 수북하게 나왔다. 짬뽕도 매워서 먹지 못하는데 나는 속으로 얼마나 놀랐던지, 급한 마음에 파트너에게 귓속말로 속삭일 것을 전라도 특유의 꽁지 늘어지는 말투로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 고추장이 아니라 토마토로 만든 케첩인데, 맵지 않고 달콤새콤해요........”

파트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알려주었을 때 나는 케첩만큼 얼굴이 빨개지고 거의 멘붕 상태로 오므라이스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고추장 닮은 토마토소스 케첩이라니, 내 상식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어디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토마토 농사짓구요 .토마토라면 아버지가 전문인데......’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절친이 나를 배신한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내 눈앞에서 토마토가 다른 모습으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토마토 너 진즉 알려줄 것이지......’

농사짓는 우리 집에서 먹을거리는 온통 토속적인 것들이었다. 소스가 무언지도 몰랐고 그저 고추장 된장 간장 참기름 들기름 그런 정도만 알았다. 컬러 TV도 없던 시절 거의 최초로 만난 양식요리는 중학교 가정시간에 마요네즈범벅의 감자샐러드를 속에 넣고 튀긴 고로케였는데 느끼한 맛에 먹지 못했다.

아버지는 토마토농사 덕분에 4남매를 가르치고 키우고 있었지만 그 열매가 케첩으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익지 않은 토마토는 장아찌를 담고 좋은 것은 상품으로 내다팔고 그 나머지는 우리 4남매가 먹기도 바빴다. 둥글고 붉은 열매가 그렇게 고추장 짝퉁같은 얼굴로 나를 놀라게 할 줄은 상상초월이었다.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토마토(케) 汁즙(첩)은 아시아를 돌고 돌아 미국으로 건너가고 다시 동양의 한 식탁까지 찾아들었다. 고추장이 케첩의 나라를 가도 그런 반응이었을까.

어쨌든 동석한 친구들은 언제 그런 음식을 먹어보았는지 ,모르고도 아는 척하는 건지 세련된 모습으로 돈까스를 자르고 밥알도 흘리지 않고 케첩 범벅의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오므라이스 일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날 파트너에게 깨끗이 차였다.

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간 나는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긴 일이 있었다. 동생 셋을 데리고 시내로 나가서 이곳 저곳 구경도 시켜 준 다음 양식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처럼 어디가서 망신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배려도 있었지만 서울물 먹은 누나가 어떻게 세련되어졌는지 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양식집은 젊은이들로 붐볐고 동생들은 생경한 분위기에 겁을 먹었는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외식이라고는 졸업식 때마다 행사처럼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어본 일이 전부고 여름이면 부모님과 강가로 나가 닭백숙 삶아먹는 일이 최고 나들이었으니 난생 처음 들어선 양식당이었다. 동생들은 시내 나가서 맛있는 것 사준다는 누나말만 믿고 신나게 따라나섰는데 주문해 준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를 느끼하다고 먹지 못했다.

오므라이스를 보고 너무 매울 것 같다고 놀라서 엄두를 못내고 징징거리는 막내에게 ‘아버지가 농사짓는 토마토로 만든 케첩, 신식 고추장이다. 맛은 달콤새콤하다’고 설명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김치와 나물무침반찬에 된장국 우거지국 이런 음식들만 먹다가 처음 대하는 식탁풍경이었다. 버터냄새와, 역시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만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 동생들은 음식에 손대 안대고 칭얼거리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흐뭇했다. 이런 문화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해도 나의 할 일은 한 것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나는 동생들이 배고프다며 집에 가서 빨리 밥 먹자고 하는 뒤통수에 대고 서울에는 무엇들이 있는지 장황하게 말하고 다음 방학 때는 서울구경 시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집에서 틈만 나면 케첩을 만들고 이것저것 음식들 만들었다. 토마토를 푹푹 끓여대는 나에게 어머니는 장아찌를 만들 것이지.... 야단을 했고 가족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다. 하지만 내게 케첩은 꼭 풀어야 할 숙제였기에 뒹구는 토마토를 케첩으로 만들고 튀긴 돈까스와 볶음밥에 얹었다. ‘새로운 것에도 부딪히고 적응해봐’ 이런 신호였는데 내 속을 모르는 듯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거의 최초로 토마토를 온상 재배하여 이름을 얻은 아버지도 케첩에는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남다른 농사법을 연구하여 성공 한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 인생을 바꾸어준 토마토인데.......

케첩은 나의 첫 서울살이에서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새로운 먹을거리나 옷이 나오면 나는 늘 호들갑을 떨고 안달을 했다. 동생들도 사주어야 하고 부모님께 멋진 옷을 사드리고 싶어 부지런히 사다 날랐는데 농사짓는 아버지는 한 번도 입지 못했다. 가족들은 내가 버거웠겠지만 그 후로 나는 신기한 일, 새로운 것들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사들이거나 확인해보고 구경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케첩은 그렇게 내 인생을 흔들었다.

권남희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한국문협평생교육원 .MBC아카데미 수필강의 . 작품집 《육감&하이테크》《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등 6권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