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베르 로베르(1733-1808) 의 오페라座의 화재
유채 캔버스. 85* 104센티미터 / 1770년 건축가 모로에 의해 왕궁안에 세워진 오페라좌는 1781년 6월 8일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 그 불타는 광경을 로베르는 육중한 건물을 저녁의 어스름한 빛 속에 떠올리게 함으로써 힘찬 박력을 지니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사 프랑스 미술 300주년 그림집에서 발췌)
불의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 1749년 초연 헨델
영국 런던 템스강변의 불꽃놀이는 예나 지금이나 유명하다. 화약을 이용한 근대 적 불꽃 놀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돼 영국에서 꽃피웠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가 멋진 문화를 갈망하는 욕구에 불을 댕긴 것이다.
야외 음악의 명곡으로 꼽히는 헨델의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음악'은 템스강변에서 탄생했다. '물'과 '불' 을 그린 두 곡은 왕실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직업인으로서 헨델의 면모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오페르를 공부하고 프랑스인에게 국제 사교술을 배운 뒤 영국에 정착한 헨델은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었다.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털리아어 영어를 마구잡이로 섞어쓰며 우스갯소리도 잘했다.
1717년 작곡한 '수상음악'은 그의 생존용 음악이었다. 독일하노버 왕조 선제후의 악장이었던 헨델은 영국에 눌러앉아 선제후의 미움을 샀다. 그런데 영국의 앤 여왕이 죽자 그 선제후가 영국왕위를 계승해 조지 1세가 됐다. 헨델은 국왕이 템스강가에서 뱃놀이를 할 때 '수상음악'을 연주하는 이벤트를 벌여 노여움을 풀 수 있었다. 그로부터 32년 헨델은 조비 2세에게서 '불의 음악'을 작고해달라는 의로를 받는다. 8년이나 이어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왕궁행사였다. 헨델은 트럼펫 9개, 호른 9개, 오보에 24개, 파곳 12개, 팀파니 3쌍, 작은 북 2개등 대합주 편성으로 곡을 만들었다. 복스홀 정원에서 열린 리허설에는 1만2000명이 모여 런던 다리에서 세시간 동안 치증이 빚어지기도 했다.
화창한 봄 날씨가 펼쳐진 1749년 4월 27일 , 런던 그린파크에는 400피트가 넘는 길이의 천막이 설치됐다. 그런데 밤하늘에 아름답고 거대한 성당 모양을 그려내야 할 불꽃이 하필 천막으로 튀었다. 화재로 불꽃놀이는 엉망이 됐지만 , 헨델의 음악은 사람들의 가슴에 더욱 아름다운 불꽃을 남겨주었다.
2002년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50주년 콘서트에서도 '왕궁의 불꽃놀이'가 연주됐다. 이렇다할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한 영국은 헨델을 영국인으로 존중해왔다.
1759년 그는 독일인'게오르그 프리드르히 헨델' 이름이 아닌 '조지 프레더릭 헨델'이란 이름 으로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혔다. (동아일보 제 26673호 . 전승훈 기자 )
권남희 글
불꽃은 사람들에게 긴장감과 함께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다.
불꽃이 타닥 튈 때 누구나 화들짝 놀라지 않는가. 롯데월드 앞 매직아일랜드 쪽 석촌호수에서 살 때는 한 달 에 한 번씩 저녁에 불꽃쇼를 구경했다. 가기 다른 음악에 맞춰 색색의 불꽃이 밤하늘로 솟구쳐 터지면 갖가지 글씨나 형태가 나타났다. 산책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장관의 불꽃쇼에 넋을 잃고 멈춰선 채 끝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막에 아리랑이 연주되면서 폿죽이 마구터지면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추석때와 설날도 꼭 불꽃 쇼를 했다. 들리는 말로는 한 번 공연에 보통 2천만원이 든다고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불구경을 자주?했던 것같다. 당시에는 초가집과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어서 불이 자주 났다.
이상한 일은 낮보다 밤에 불이 난 광경을 기억하는 일이다. 목조건물은 공장이 많았다.
더 신기한 일은 일곱살 무럽까지 우리집은 초가집이었는데 불이 나지 않은 점이다. 어머니가 무섭게 단속을 했을 것같다.
내 밑으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있었고 우리들은 볏짚이나 다른 것들로 불장난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보름날이면 밤에 깡통에 구멍을 뚫고 불을 넣어 돌리며 쥐불놀이도 했는데 그런 날은 오히려 불이 나지 않았던 것같다.
아파트에 살면서 두번의 화재를 보았다. 아파트는 불이나면 위아래 옆 등 피해가 번진다.
노인이 많이 살아서일까? 곰국 등을 끓인다고 올려두고 깜빡잊었거나 가스레인지에 무언가 올려두었다가 화재가 난 것으로 짐작한다.
상가에서는 칸지고고중식당에서 불이나 한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붉은 등을 달아 처음에는 절인줄 알았다가 웃음을 사기도 했는데 붉은 빛에서 늘 불을 연상했다. 불이 난 일이 붉은 빛깔과 자꾸만 마음에 남아있다. 불이라고 모두 붉은 빛은 아니련만, 붉음은 '불'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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