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권남희 후정 2007. 5. 18. 19:01

 

 예술의 전당 한가람 전시장에서 50% 할인받아서 사다. 한,러수교 5주년 을 맞아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전-1900-1920년대 '을 가졌다 (1995년 4.11일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 .유제니시도르프 러시아 공화국 문화성 장관 . 이종덕 예술의 전당 사장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강성구 문화방송 사장 . 

 

도록 중에서 - 이른바 형식주의자들의 '이번 전시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속한다 ' -작품들은 창고에 처박혀서 1960년대 이후에도 이 작품들을 대중들에 선보이는 것은 쉽지않았다. 여러 통치자나 공론가들에 의해 그 작품들에 부과된 제재는  5-10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러시아나 외국의 대중들은 오늘날 러시아 아방가르드라고 불리는 그 강력한 예술적 현상에 대해 점차로 알게 되었다.     

 

마쉬코프  1912-1913 모스크바 전망 마스니츠키 지역 캔버스 유화 920* 970 밀리미터

마시코프는 대단히 열정적인 화가였다. 그가 속했던 다이아몬드 체험회의 예술적 강령은 수제품, 간판, 브로드사이드등과 같은 러시아 민속품의 유산과 세잔의 업적에 대한 해석에 근거했다. 이 그림에서 자연의 모티브는 특이한 선과 색의 리듬에 의해 지배되는 형태의 통합적 배열로서 표현되고 있다. (도록 158쪽  해설 중에서 )  

 

 

권남희 글

 우리는 왜 수교가 안된 소련을 갈려고 했을까?  

 우리는 모두 솔직히 유명해지고싶었다.  그렇게 다녀온 여행기를 나같은 무명도 계몽사 계열 잡지와 지역일간지 신문에 연재를 했으니까.

1989년 8월 말 경 舊 소련을 갔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13명 정도가 갔는데 출발부터 문제를 안고 떠난 여행이라는 것을 안 것은 덴마크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한국과 수교가 되지않았던상태라 비자발급이 되지않았는데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하루정도 관광은 되지만 체류가 불가하여 밤늦게 투숙한 호텔은 잠도 못자고  새벽에 나와야 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급하게  한바퀴 돌았다.   

붉은 광장, 레닌 미이라,  유람선 타기, 에르미타즈  등. 얇은 옷을 가지고 가서 추위에 무척 고생을 했다.   

고려인이 많이 사는 타슈켄트에서 관광도 하지 못한 채 사흘을 투숙하며  대표와 일정 때문에 싸웠다.

처음부터 안되는 여행인데 싸움만 하면서 타슈켄트에서 금쪽같은 3일을 체류하면서 , 고려인 조선어학과 학생들과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가지고 간 책을 주고 양배추김치와 국수 등 을 먹었다.   

다행인 것은  헝가리와 불가리아를 돌며  유적지를 감상하고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었던 일이다.

동유럽은 다시 가보고싶은 곳이기도 하다 . 그 때 같이갔던 사람들과는 다시 가고실지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타슈켄트에서 받은 북한 책자는 공항에서 모두 빼앗겼다.  대학선배는 내가 받은 책을 보고 호텔에서 말없이 그 책을 모두 메모하면서 내게 아무 언질도  해주지않는 치밀함을 보여 선배의 인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1992년  수교 이후 다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체홉의 생가가 있는 흑해 쪽 을 다녀왔다.

9월초인데도   겨울추위라는 사실을 몰라 추위에 너무 고생을 했다.가지고 간 옷 모두- 청쟈켓과 바바리. 양복 등 을 모두 껴입어도 추웠다.   레닌그라드 국영백화점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여행 동료 때문에 돈을 걷어 주기도 했다. 그 때 삼백만원 정도였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그돈으로 일년을 산다고 했다. 한국사름들은 현금이 많아 늘 걸어다니는 '현금-봉'이라는 평을 들었다.  나 역시 관광지에서   꼬마 거지가 오길래 불쑥 1달러 지폐를 주었는데 어디선가 십수명의 아이들이 달려들어 고역을 치르고 가이드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보는데서 돈을 꺼내는 일도 위험한데 일달러는 이곳에서 일주일을 살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이다.     와인생산지. 겨울궁전, 체홉생가. 고리끼 문학연구소 교수가 나와 강의하고 한달 봉급이 100불인데 물가가 자꾸 올라 빵값도 안된다고 푸념했던 기억이난다. 톨스토이 가 살던 집,  푸쉬킨 등 작가들이 묻힌 묘지 를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문학으로 관광수입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했다.

그후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도 곳곳에 문학관과 예술인 생가들이 생겼다. 좋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