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청년정신 출판사 ' 첫사랑 피카소 ' 훼르낭드 올리비에의 '비밀기록'
1973년 4월 8일 92살 때 피카소 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7명의 연인과 사랑을 속삭였고 그들로부터 예술에의 원동력을 얻은 세기의 풍류아 피카소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침대 옆에는 마지막 연인인 자클리느 -로크 부인이 임종을 지켰다. 훼르낭드는 피카소가 젊고 가난했을 때 난난 첫번 째 여자이며 그림믜 모델이 되어준 여자다.- 권남희 정리-
에필로그
존리차드슨
-앞부분 생략-
그 다음 해에 피카소가 공산당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도 그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념적으로 동조해서가 아니라 비서 자리 하나라도 얻어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피카소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면서 보낸 또 다른 편지(1947.8.17) 에서 ㄷ그녀는 아파트에서 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팔아버린 사실을 자세히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는 늙어서 이렇게까지 비참한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호소했다. 1956년 훼르낭드의 나이는 75세였다. 그녀는 관절염이 심해지고 귀까지 잘 들리지 않아 일하기가 힘들었다. 마담 크릴이 옆에서 많이 염려해주고 돌보아 주었으나 그녀가 필요한 것은 오직 돈 뿐이었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은 나중에 책으로 역어진 옛날의 일기나 편지, 기타 기록들이 담긴 여행용 가방 뿐이었다. 하지만 피카소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은 내용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밀'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환경도 바뀌면서 그녀는 마르셀 브라크를 브로커로 내세워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녀의 내밀한 추억을 책으로 출판하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100만 舊 프랑을 받았다. 그리고 마르셀 브라크의 주선으로 남은 여생동안 피카소로부터 소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훼르낭드의 내밀한 회고록은 피카소와 그녀,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난 지 꽤 오렌 새월이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겨우 출판되었다.
1956년 훼르낭드는 프랑스 텔레비젼에 몇 번 출연하였다가 거의 반세기 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한 피카소는 파랑헤 질리면서, 그녀의 출연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다. 그녀는 너무 늙고 뚱뚱한데다가 이까지 빠져서 웃음거리가 되엇고 그 결과 피카소의 초기 작품에서 상징화 된 미의 이미지를 배신하고 말았다. 75세의 나이와 추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훼르낭드는 텔레비젼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녀가 연극적인 어조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잇으면 그녀가 왜 화법 교사로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관절염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으므로 침대에 있기가 너무 지루하다는 편지를 자신의 代子인 길버트에게 보냇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966년 1월 29일 , 아멜리에 랭으로부터 태어나 한 때는 마담 폴 포르쉐통이었다가 때로는 벨바레였다가 피카소를 통해 훼르낭드 올리비에로 불후의 명성을 얻은 이 여인은 8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언제나 혼자 죽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녀는 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독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 그 대신 열린 문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피카소가 준 100만 프랑으로 매입한 그녀의 무기명 채권을 가지고 도망가버렸다.
그림 <긴 머리의 아가씨> 1906년 캔버스 유채 81* 54센티미터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1906년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제작에 착수한 해이며 마티스를 알게 된 해이다. 동시에 피카소가 루브르 미술관에서 이베리아 조각을 새로 발견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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