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로버트슨 스콧 지음 '코리아' 1920-1940

권남희 후정 2007. 5. 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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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평양강변'  -평양의 귀한 유적들은 1894년 청일전쟁 때 많이 파손되었는데 그것은 중국군인들이 전쟁용 흉벽에 사용하느리고 주춧돌을 빼갔기 때문이다. 소나무 아레 나뭇가지가 없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땔감으로 잘라깄기 때문이며 어딜가나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다 -   평양강변 그림 과 글 중에서 부분 발췌  

 

책소개


영국화가 에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책과 함께 )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지은이 엘리자베스 키스와  엘스펫 K 로버크슨 스콧

자매인 두 사람은 1919년 3.1운동 직후에 한국을 여행하면서 언니 엘리자베스는 그림을 그리고 동생 엘스펫은 글을 썼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897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1915년부터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판화, 수채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동양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판화가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 그중에서도 한국을 소재로한 작품이 뛰어나다.  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1956년 세상을 떠났고 그 해  일본에서 마지막  전시가 열렸다. 동생 엘스펫은 남편 스콧과 함께 일본에서 살면서 언니의 충실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옮긴이 송영달 ( 1937년 서울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62년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고 196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시트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 행정학 교수로 30년간 재직하다가 은퇴한 후 노스 캐롤라이나주에 거주하고 있다      


차례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삶 - 송영달

엘리자베스 키스의 머릿말(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내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그린 수많은 그림들 중 수십점을 선정한 것인데 , 개중에는 아주 초기작품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어떤 것은 아직 미완성인 것도 있지만 , 주로 한국 관련 그림 중심으로 이 책에 맞는 것들만 골라 보았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전 세계가 참혹한 일들을 많이 겪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미지의 작은 나라에 세상의 따뜻한 눈길이 머물수 있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들을 널리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그림 전체를 천연색으로 인쇄해야 마땅하겠지만 , 사정상 그림을 흑백으로  출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모든 여건이 어려운 시기에 천연색 그림을 16점이나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 그림들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의상, 집들의 모양, 풍습 그리고 그 밖의 여러가지 일반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애썼다. 친절하게도 전통의상을 입고 모델을 서준 많은 한국인들 덕분에  나는 한국의 옛모습을  돌아보며 재현할 수 있었다. 어떤 그림은 무척 짧은 시간 내에 스케치를 해야 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식 자작을 모델로 한 그림이 그런 경우인데 , 그는 궁정예복을 입고 모델을 서 주었다. 김윤식자작은 당시 80세가 넘은 고령이었고 또 감옥에서 풀려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동생 엘스펫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 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삼일 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애국자들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줄지어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 그런 심한 고통과 구속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많은 한국인들을 죽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나 아픔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스케치한 어느 양갓집 부인은 감옥에 들어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도 일본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 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뿌려져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려고 흰 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일본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행되어온 자국에서의 악질적인 선전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열린 마음을 가진 일본인들은 한국의 문화와 그 미술을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하고 잇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국의 역사가 일본 역사보다 더 오래 되었고 또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1936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외국인을 상대하는 ’ 가게의 한국인 직원들은 일본 사람들만큼 영어를 잘하는데도 대우나 승진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 이하 5단락 생략 `                          -       

로버트슨 스콧의 머릿말

1장 서울 ( 그림 1 .달빛아래 서울의 동대문 -/ 2. 모자가게 3. 주막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3. 두 명의 한국 아이들 -1940년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으로도 사용 4. 두명의 학자- ‘협상을 한참이나 끌었는데 그게 동양식 대화법이었다. 그들과 얘기하려면 용건을 빙 둘러서 해야 하므로 요점까지 도달하는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 5.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한국어린이의 연날리기 기술은 대단하다 ’  6. 장기두기 7.서당풍경 8.신식학교와 구식학교 9.한옥내부 - ‘사랑방 나무 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줄거운 일이다’ 라고 써 있는데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10.널뛰기 11.돗자리 가게 12.어느 골목길 풍경      ) 

*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 한국의 남자들은 참 좋은 사람들같았다. 그들은 몸매가 날렵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고 표정은 침착했다. 단 하나, 극동 어디에서도 그렇지만 침을 아무데나 마구 뱉는 것은정말 문제였다.몸 단장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머리와 발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  - 여기 저기 많이 들어서 있는 음식점에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으며 . 하루 종일 구수한 음식 냄새를 풍기고 있다 . ... 가정집 대문 앞에서는 기다란 담뱃대를 물고 마치 꿈꾸듯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으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는 모두 한복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은 아주 매력적이다. 옷의 재료는 비단, 베, 또는 무명이다.  ...남자들이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바지만 입기 때문에 세탁물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세탁은 오로지 여자의 몫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세탁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여자만 어마어마한 양의 세탁물을 담당한다. 41 쪽부터  -  

2장 한국의 여성들 ( 그림 13. 모자 14. 아기를 업은 여인 -크리스마스 실 사용 15. 바느질하는 여자  16. 맷돌돌리는 여인 17. 수놓기 18.함흥의 어느 주부 -함흥여자는 서울여자들보다 키가크고 자세도 꼿꼿하다  19. 아낙네들의 아침수다  

* 아름다운 한국여성들 - 74쪽부터 ‘ 한국여자들이 입은 옷은 대개 집에서 물감을 들여 손바느질해서 만든 것인데 , 옷감은 무명, 비단 또는 명주 등이다. 색깔은 흰색이나 엷은 옥색이 많았다. 옷고름은 분홍색이고 소매는 남색으로 끝단을 댄 것이었다. 여자들의 옷만 보고도 여자가 시어머니인지 젊은 새댁인지 ’ 첩‘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국 여자들은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인내와 복종이 제 2의 천성이 된 듯하다. 하자민 온순하기만한 한국여자들에게도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다.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그들의 신조를 바꾸려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한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한국풍습을 존경하며 끈기와 친절로 대하는 것 뿐이다. ...


한국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말들하지만 , 내 생각에는 기생충 때문이랍니다. 어떤 여자 환자에게서  무려 200여 마리의 십이지장충을 빼냈어요 . 이 불쌍한 여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영양부족과 기생충이랍니다.

78쪽 ‘ 한국사람들이 아시아에서 언어능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인이 일본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들 중에서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해도 학문을 쌓은 학자라면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를 갖고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사도바울로와 그 제자들의 행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3장 무당의 춤을 보러가다 ( 그림 20. 무당 21. 여승이었던  동씨 22. 시골결혼잔치 -신부는 하루종일 꼼짝않고 앉아있으면서 제대로 먹지못하는 불쌍한 신세인데 신랑은 사랑방에서 친구들과 맘껏 먹고마신다. 신부의 어머니도 옷치장을 제대로 못하고 종일 몰려오는 손님접대에 제일 남루하게 보인다.    23.신부행차 24.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결혼식날 꼼짝도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안방에 그림자처럼 앉아서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뎌내야 한다.  25. 결혼식에 온 손님   26.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 서울성내에서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게 법이다. 영국여왕이 이 그림을 수집했다 한다 .  27. 4월 초파일 28. 정월 초하루    

* 한국의  풍속

4장 양반가를 방문하다 (29.홍포를 입은 청년 30. 궁중 복장을 한 청년 31. 해뜰 무렵의 동대문  32. 아침안개 ‘ 아무리 이야기해도 원산의 아름다움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같다. ... 자칭 영리하다는 일본인들이 이런 온들의 비결을 모르다니! 33. 평양의 동문 34. 원산

35. 평양강변 - 유명한 도시 평양은 기자가 묻힌 古都에 자리를 잡았다. 기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비드보다 이른 시기에 한국을 다스렸던 인물이다. 기자의 우믈이 여기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물은 한국 어느 지역의 샘물에서 나오는 물보다 무겁다고 한다. 이것을 빼고는 평양에 우물이 없다. 이 도시가 마치 보트처럼 생겼기 때문에 우물을 파면 도시가 위태로워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36. 금강산  37. 금강산 구룡폭포  38. 금강산 절 부엌 39. 백불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여기에서 기원을 했다고 한다  40. 절의  내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동대문 밖 사당          

* 인상적인  한국의 풍경( 118쪽부터  ‘한국의 응접실에는 서양사람들 눈에는 가구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지모르지만 가구들은 적당한 비율로 배치되어 있었고 지저분하거나 자니치게 장식적인 가구라든가 눈에 걸리는  잡다한 물건은 전혀 없었다. ...실내는 소박하면서 위엄이 깃든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부인은 낯선 손님이 오는 자리에 나오지 않는 법이므로 그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영광이었다.... 한국여자들은 어깨를 곧게 펴고 고개를 똑바로 드는 단정한 자세를 좋아하는데 며느리도 그런 자세였다. 동양의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특수한 매력같은 것이 있다. 부드러움, 전혀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듯한 태도, 섬세한 선과 색,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 등은 하늘하늘한 꽃을 연상시켰다. 수천 년 내려온 풍습에 따라 그 어린 여자아이들이 일찍 결혼을 하여 억압당하는 성생활을 해야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5장 독립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 독립선언서에서 발취한 다음 글은 정치적 성명서라기보다는 한편의 시같은 느낌이다

  -거룩한 단군의 자손인 우리들 / 온 사방에는 우리의 적들뿐 / 우리는 인류애의 깃발 아래 목숨을 바친다 / 구름은 검어도 그 뒤에는 보름달이 있나니 /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약속하도다 .   -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결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잇었다. 그 사람들은 6척 또는 그 이상 되는 장신이었는데 , 그 앞에 가는 일본 사람은 총칼을 차고 보기 흉한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데다가 덩치도 왜소했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보였다.  ” 서울에서만 20여 만 명이 길거리를 메웠고 그와 동시에 한반도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도 똑같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애국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   

그림 41. 과부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고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42. 예복을 입은 순이 -동양의 다른 나라여자들처럼 한국 여자들은 연극이나 연예방면에도 소질이 많다.         

6장 두 자작 ( 그림 43. 자작 김윤식 -동도서기론을 주장하여 수구파와 개화파 모두에게서 배척받다 .  166쪽부터 168쪽 상단 까지 ‘독립청원서’ 내용  44. 한국의 어린이들  45.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46. 필동이 ‘ 필동이는 내가 그린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무슨 조그만 일이라도 해달라고 하면 크게 소리지르고 불평을 했지만 정직하고 충성심이 많아 믿어도 될만한 사람이었다.  47. 담뱃대 문 노인

48. 우산 모자 쓴 노인 ‘한국에서는 노인을 지나치게 공경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버릇이 있다 ’ 49. 시골선비  50. 선비 51. 원산 학자와 그 제자들 ‘이 학자는 밥하는 것, 빨래하는 것 그 외의 가사 일체를 여자에게 맡기고 고고하게 살아간다

* 내가 만난 다양한 한국 사람들 1 ( 착해빠지고 기백도 없고, 경멸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사람들이 그런 반란을  일으키다니! 폭군같은 일본 식민지당국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이 현명한 통치자였다면 그냥 노래를 부르도록 내버려두라!고 햇을 테지만 , 폭군은 원래 현명하지가 못하다. ... 열두살쯤 되어보이는 여학생은 맞을 때마다 만세를 불렀으며  경찰에게 ‘ 내 속에 만세가 꽉 차있어 나도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했다.

7장 현명한 한국 사람들 ( 그림 52. 민씨 가의 규수 53. 궁중 복장을 입은 공주  54. 내시

55. 종묘 제례 관리 ‘서울의 종묘 제례는 1920부터 페지된 베이징의 그것보다 더 전통에 충실했다.  ’56. 무인 武人 ‘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무인을 경시하는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등용되어야만 출세의 길이 열렸으니 무인은 중인보다 낮은 계급으로 취급되었다. 어떤 때는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의 신분이 거지보다 조금 나을 정도였다. ’     57.초록색 장옷 ‘여자가 결혼 전까지는 장옷을 입지 못한다. 초록색 장옷은 오래전 어떤 용감한 전사를 기념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하는데 빨간색 단과 리본은 그 사람이 흘린 피를 상징한다’

58. 농부 ‘ 전문가에 의하면 한국의 쌀이 중국이나 일본 쌀보다 맛있다고 한다’

59. 대금 연주자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 생겼으며 , 대금을 부는 사람의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60.좌고 연주자 61. 궁중 음악가 ‘고종, 순종시에 궁중 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사람들 ’

62. 신발 만드는 사람들 ‘ 한국사람처럼 키는 크면서 발이 예쁘게 작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정부인이 신발을 사러 가는 법은 없다. 남편이 발 크기를 잰 막대기를 가지고 가서 갓바치에게 준다.신발은 오른쪽과 왼쪽이 따로 없다. ’... 일본사람들이 고무신을들여와서 고무신이 인기다.       



*  내가 만난 다양한 한국 사람들 2  ( 한국인 청년의사의 말 “ 역사적으로 보면 어떤 정신적 바탕위에 건립되지 않은 나라는 결국 재난을 당합니다. .. 적어도 한국에 나와 있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


8장 한국을 위해 애를 쓰다 - 영국인 의사이자 선교사인  프랭크 스코필드의 한국 사랑

 이야기 ( 그림 63, 수원의 수문, 화홍문 )

9장 총독과 대면하다( 그림 64. 왕릉 앞에선 시골 선비 

부록 

엘리스아펜젤러 박사가 쓴 하와이에 있는 한국인들

세실주교의 추천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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