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노천명 시인의 산문과 소설 전집 1997년 출간

권남희 후정 2007. 7. 1. 09:49
 

 권남희수필가 정리

노천명 산문 집 “ 나비” - 솔출판사

노천명 : 1912년 황해도 장연출생 . 1957년 재생불능성 빈혈로 세상을 떠남 . 진명여고보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 1934년 ‘조선중앙일보’ ‘여성’ ‘ 매일신보’ ‘서울신문’ ‘ 부녀신문’ 등에서 십여 년간 근무 . 시집‘ 산호림-1938’ ‘ 창변-1945’ ‘ 별을 쳐다보며- 1953’  유고시집‘ 사슴의 노래- 1958 ’  수필집 ‘ 산딸기 -1948’  ‘ 나의 생활백서- 1954’   그 외에  여성서간문 독본- 1949 등이 있다

차례 

편집자의 변 /사슴같은 시인, 노천명의 전집을 내며

일러두기 / 해설 : 김윤식-송충이와 나비의 몸짓

1부 산딸기 ( 1. 진달래- 포도춘훈/ 천춘보/봄과 졸업식/ 목련/ 나비/ 소녀/ 봄/ 대동강변/ 시골뜨기/ 단상/ 양계기/ 한식 )

(2. 모깃불- 산일기/ 여름밤 얘기/ 송전초/ 향산 기행/ 바다는 사뭇 남빛 / 여중기/ 바다로 가리/ 망향/ 집얘기/ 와일즈 로즈) 

(3.머루다래- 추일사조 / ‘심청전의 감상’ / 교우록/ 낙엽/ 편지)

(4. 함박눈 - 향토유정기 / 망향/ 설야산책 / 초동기 /새해 /눈오는 밤/ 남행 / 겨울밤의 얘기/ 신문배달/ 제야/ 성탄 )

2부 나의 생활백서

산나물(오월의 구상/신세진 부산/나와 송충이/산나물/ 서울체류기/ 산다는 일/ 아름다운 여인/ 관악등산기/ 원두막/ 대춘/ 서울에 와서 / 자동차 / 거리/ 캘린더/ 술의 생리/ 이기는 사람들의 올굴/ 소울은 일어난다/ 골동/ 가야금/ 나의 생활백서/ 하나의 역설/ 작별은 아름다운 것/ 젊은 시인에게/ 바다를 바라보며/ 원고부탁/ 서울은 멀리서 / 차중기/소감/ 전숙희 수필집에 붙임

3부 그 밖의 산문( 3.5달아래서/ 광인/ 백년제가 돌아오는 시인 찰스램/ 단상/ 나의 신생활 계획/ 내 가정의 과학화/ 오월의 시정/ 어느 일요일/ 피해야 했던 남성/ 여백/ 여성/ 시의 소재에 대하여 /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 / 국화의 싸움 / 나의 이십대/ 어떤 친구에게/ 봄이 오면 / 수상/ 정/ 아스파라거스의 조난/ 식목일/ 서해 바다의 밤 / 고우의 추억/ 신록/ 노상의 코즈머폴리턴/ 썰물에 밀려간 해변의 자취 / 발예찬 / 언덕의 왕자/ 추성/ 해변단상 /금강산은 부른다/ 산책 / 바다/ 추풍과 함께 가다/ 금강산 놀이 후일담 / 겨울밤 / 담넘은 사건/ 올해 못한 일 / 직장의 변/ 인텔리 여성의 오늘의 사명/ 새모단상/ 새해의 포부/ 우리 예술 확립에로 매진하자 / 첫인상/ 직업여성과 취미 / <시문학>시절 / 진주기행/ 해인사기행 / 인간 월탄 / 야자수 그늘과 청춘의 휴식/ 문패

4부 일기

5부 소설 (일편단심/ 닭�던 개/ 사월이 / 하숙/ 외로운 사람들/ 오산이었다  )      

편집위원 ( 김윤식-서울대국어국문과 교수/ 김현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교수

        / 김옥순-국립국어연구원 )

      

전숙희 수필집에 붙임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처녀- 이는 바로 전숙희 모습이다 .

한복을 입으면 할 일 없는 촌뜨기-양장을 하면 아무런 걸 주워입으나 맞춘 것처럼 어울리는 체격의 그는 어쩐 일인지 늘 시집 안간 처녀같은 인상을 남한테 주고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슨 얘기 끝에 ‘ 우리 강이 어쩌구’ 그럴 때면 그제서야 비로소 ‘ 참 숙희가 결혼 한 사람이지’ 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가 이화 영문과를 졸업할 무렵에는 영화 ‘어화’에도 관계를 하고 하여 여자 영화감독이 하나 나오나 보다 했던 노릇이 결국은 소설 쓰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아직은 작품보다도 인간이 더 좋아  촌뜨같은 그 순박한 인간성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한다.  겸손하고 어질고 착한 전숙희에게 나도 반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할까, 인간이 좋으면 반드시 문학도 좋은 것이 나온다는 것을 믿는 나는 앞으로의 전여사의 작품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네 아이의 어머니 노릇을 하며 살림하는 그 여가에 어느 틈에 부지런히 붓을 들어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이루었던가. 언젠가 그의 ‘새치기’라는 수필을 읽어보고 땅에다 발을 붙인 그 리얼한 태도에 접하며 그는 앞으로 소설을 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작품 해석 -김윤식(461쪽부터

 -송충이와 나비의 몸짓- 노천명 소묘

1. ‘산호림’과 ‘오감도’

 ‘산호림’의 시인 노천명(1912-1957)은 오감도-1943의 이상(1910-1937)보다 한살 아래다.  오감도가 발표되는 장면을 노천명은 훗날 이렇게 적었다.  “ 그 때 학예부에 새로 등장된 문제의 인물이 이상씨였다.  ( 피해야 했던 남성이라고) , ”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다.  괸삼밖의 일이기에 이러써 족한 것. 그녀의 신문사 내에서의 별명이 ‘ 찬바람불다’ 였다.  황해도 장연군의 한 농촌에서 자란 노천명의 유년기를 복원할만한 자료가 없어 뭐라 하긴 어려우나 1. 아들 없는 집의 차녀였다는 것  2. 남장을 시켜 키웠다는 것  3.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의 친정 쪽인 서울로 옮겨온 것이 여남은 살 적이었고  4, 서울서 소학교와 중학과정을 마쳤다는 것  5. 이화여전 문과에 다녔다는 것 등을 그녀의 글에서 알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스스로 말한 ‘찬바람불다’라는 기질적인 측면이 그녀의 문학과 어떤 관련을 갖는가는 ‘산호림’ 시집에 나오는 ‘자화상’ 에서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구절에 주목하면 된다.  이것으로 부족했던지 다음처럼 좀 더 심도있게 덧붙여 마지 않았다.


    도무지 길들일 수 없는 내 나귀일레

    오늘도 등을 쓸어주며

    노여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너와 함께 가야 한다든지...


    밤이면 우는 네 울음을 듣는다

    내 마음을 받을 수 없는

    네 슬픈 성격을 나도 운다

          < 반려> 전문 

강렬한 자기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자기 의식이란 점에서 보면 ‘오감도’ 의 시인과 흡사하다. 그렇지만 전자가  기질적인 자기 의식이란 점에서 후자의 방법론적 자기 의식과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날개’의 작가는 기하하학적 상상력을 배운 근대인이었다. 근대인의 비극이 방법론(기교)이란 이름의 ‘의식의 과잉’에서 비롯되었음을 ‘날개’의 작가는 알고 있었다. -중간 생략- 463페이지 하단 -이와 견주어 볼 때 노천명의 경우는 어떤가. 점박이 당나귀라 자처하지 않았던가. 당나귀에게 비유클리드의 기하학이란 무엇이겠는가.  당나귀에게 그 누가 감히 방법론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타고난 기질이기에 당나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이 사실을 알아차린 기묘한 당나귀. 이른바 족보에도 없는 자기 의식을 칠보관처럼 머리에 인 점박이 당나귀. 그가 노천명이다.

464페이지-   정서를 감추고 아껴서 미화하고 순화하려는 점에서 영국의 상류층 출신인 엘리스 메이늘( 1847-1929)과 닮았다.(문학과 지성- 최재서) 

김광섭은 노천명 집 방두개를 빌려살았다   (이하 생략) 

  


권남희 멘트 * 김윤식의 평론이 아주읽을만하다.시간날 때 전문을 옮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