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김영갑사진작가 책과 사진

권남희 후정 2007. 7. 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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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수필가 정리 ( MBC롯데 잠실 목요수필반 독서자료였음)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사진. 글 김영갑 -  Human& Books

2005년 23년간 제주도의 풍경( 눈,비, 안개, 바람, 나무 등)을 찍어 한라산 중턱  페교를 개조한 두모악 갤러리를 연 그가 29일 임종을 지켜보는 이 없는 채 혼자 떠나갔다. 사진은 7만장에 이른다. 17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작품도 팔지 않았다. 저서로는 '그 섬에 내가 있었네'와 '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가 있다. 99년 루게릭병으로 4년 시한부 삶을 판정받고도 작품할동에 매달려왔었다. 역사박물관에서 톨스토이전을 보고 세종문화회관에 들러  본 그의 전시회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 허해순 수필밤 제자가  사준 사진모음카드중 몇 컷을 올린다 .       

차례 

1.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세상에서 제일 뱃속 편한 놈  / 그 여름의 물난리 /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 /고향이 어디꺼ㅏ? 빈 방이 없수다  /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 지키지 않아도 좋은 약속 / 나는 바람을 안고 초원을 떠돈다 / 오름에서 느끼는 오르가즘 /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 한라산 기슭의 노루가 되다 / 어머니의 쌈지 / 상처투성이 아버지의 죽음 / 결혼도 못하는 소나이놈 / 영개바, 나이 들엉 어떵허려고 / 나의 존속모델 / 뭍의 것들, 육지 것들 / 믿을 수 없는 일기예보 /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 떠나보내는 심정 / 다시 마라도

/ 내 삶의 길라잡이

2.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동백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 / 혼자 부르던 노래마저 그치니 / 어둠 속에서 길을 잃다 / 몰입의 황홀함  / 유효기간 / 기다림은 나의 삶 /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 /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 초대 /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난다 / 폭풍우 속에서도 태양은 떠오른다

/ 한 겨울에 숨어있는 봄

* 이어도를 훔쳐 본 작가  - 안성수 -


25쪽 시작을 위한 이야기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

외로움 속에 며칠이고 나 자신을 내버려둔다. 그래도 모자라면 등대 밑 절벽 끝에 차려 자세로 선다.  아래는 30미터가 넘는 수직 절벽이고 , 바닥은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 조각들이 날카로운 이를 번뜩인다. 떨어지면 죽음이다. 정신이 바짝 든다. 잡 생각이 끼어 들 틈이 없다.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된다. 눈을 감고 수직 절벽을 인식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하다. 수직 절벽을 인식하면 다시 두려움이 든다.

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않는다. 살맛이 나지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죽고싶다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도피처를 찾는다. 그 최종 도피처는 죽음이다. 원치않는 상황에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잊기로 했다. 죽음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늘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곤란으로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침을 삼키다가.  , 물을 마시다가 ,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다가, 수시로 호흡곤란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어쨌든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건강할 때도 문밖이 저승길이라는 옛말을 늘 기억했다. 아름다운 꽃이 열흘을 가지 못하는 허무한 세상살이를 잊기 위해 미친듯이 하나에만 몰입했다. 살고싶다는 나의 기도는 사진 작업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어디에도 얽매임없이 사진을 찍는 하루 하루는 자유로웠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싶어 홀로 걸었다. 자유로운  만큼 고통도 따랐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의 어두운 부분도 내 몫이기에 기꺼이 감수했다. 진정한 자유는 혼자일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에 마라도에서 혹은 이름없는 섬에서 혼자 지내보았다. 그러나 며칠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 후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체념했다.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혼자이길 원했다. 혼자일 땐 온전히 사진에만 몰입할 수 있다. 남들이 일 중독이라고 충고해도 웃어 넘겼다. 중독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세상과 삶을보고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 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기 깊어지면서 삼년 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걱정에 우울해하던 그 때를 ,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고  춥고 배고팠던 그 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년이나 찾았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 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이제 난 카메라 메고 들녘으로  바다로 떠돌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온 종일 마을을 산책해도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150호가 넘는 큰 마을이지만 구멍가게 하나 없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중산간 마을 삼달리의 옛 초등학교 터 , 그 안에 온종일 갇혀 지내지만 건강할 때 느껴보지 못한 평온한 날들의 연속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집착도 내겐 허용되지않는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이기에 아주 작은 욕심도 내겐 허용되지 않는다. 집착과 욕심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바람을 안고 자유롭게 떠돌던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 즐거워한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하여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 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 줄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내 사진은 ‘외로움과  평화’ 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크기의 필름으로 작업을 했다. 그 중에서 파노라마 ( 6* 17) 사진이  내 사진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땅에서 사진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라고 고백했다. 사진의 홍수속에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사진에 대해 너무 모른다. 나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이미지를 완성한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이미지는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사진이 어이없게 재단되고 변형되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한 장의 사진에는 사진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나의 사진을 나의 의도대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이십여 년 만에 얻었다. 허락해준 하응백 사장과 손현미 편집장, 정진이 디자이너, 그리고 출판사 식구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갤러리 두모악에서  김영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