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민현식 교수 / 시사칼럼 김영중
포토에세이 성춘복
특집 1 제 1회 조경희 수필문학상 허세욱 교수
특집2 세계속의 한글( 김후란 / 김학래/ 한분순 / 이성림/ 장재현
특집 3 제 27회 한국수필문학상 . 한국수필상 ( 박영자/ 오세윤 / 김혜숙/ 김선화
특집 4 27회 한국수필가협회 국내 세미나
연재 김우종 교수 형대수필 평설
연재 김열규 교수 자란만 통신 1
화제의 작가 이정아
사색의 뜰 이철호 / 김홍은 / 이종련
문회탐방 유상옥 / 전성희 / 이정기
문학회 순례 LA 수향문학회
신인상 당선작( 김영은 / 김유민 /김복연 / 윤영자
월평 박장원
회원동정 / 편집후기
지상강좌 시리즈 (9월호 등재될 원고)
결미의 처리기법과 필요요건
하 재 준
수필에서의 결미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제목을 잘 붙이고 서두에서 흥미유발을 일으키며 전개에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으로 짜였다할지라도 결미가 잘못 된다면 작품 전체가 부실해지고 만다.
이른 봄, 밭에 씨를 뿌렸을 때 소담스러운 새싹이 돋아나면 농부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기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며 가꾸어 간다. 그런데 결실기에 와 보니 기대와는 다르게 탐스러운 열매는커녕 쭉정이가 되었다든가 엉뚱하게도 가라지였을 때 거기서 오는 실망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미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독자는 한편의 수필을 다 읽고 난 후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젖어든다든가, 아니면 마음속에 재미있는 글로 남아 또다시 수필을 읽고 싶다는 등 그의 매력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한 작품은 대부분 결미처리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문예지에 발표된 몇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품의 결미를 말하려할 때 우선 서두와 전개부분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결미부분이 어떻다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곧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 부분을 대략 살펴본 연후에 결미부분에 대하여 밝혀 놓았음을 미리 말해둔다.
전윤권「사랑의 기쁨」이란 작품에서 결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목원에서 문우들의 모임이 있었다.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마침내 자분자분 봄비가 내렸다.” 이렇게 도입부분을 시작한 작품이다. 전개에 와서는 봄밤에 내리는 빗속에서 고교시절의 첫사랑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침내는 그 그리움이 마음에 일렁이었고 이윽고 가슴을 파고드는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의 노래로 이어졌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남았네.”의 노랫말과 그 곡이 심연에 울려 퍼진다. 라고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심정을 단적으로 들어내 놓고는 순진무구한 사랑의 사연과 함께 결미에 이른다.
내 마음속에 잊혀졌던 그 노래「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가 이 밤 봄비를 타고 다시금 살아남은 왜일까. 무슨 환영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욱하고 솟아오른다.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까. 첫사랑은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한다지만 애련함이 노래에 실려 가슴 깊게 파고든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포켓에서 다급하게 나를 깨운다.
“여보, 어디야? 밖에 비가 오는데 우산 갖고 있는 거야?”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일을 심리적 갈등의 구조로 형상화시켜 독자로 하여금 잠시도 작품에서 눈길을 뗄 수 없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결미에 이르도록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히 돋보인다.
포켓에서 다급하게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지난날의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러한 반전의 계기는 독자로 하여금 은은하게 여운을 남기게 하는 결미다. 더욱이나 맨 마지막에 “여보 어디야? 밖에 비가 오는데 우산 갖고 있는 거야?”라고 하는 말로 종지부를 지었다. 그로 인하여 작가의 가슴에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의 심정은 물론 지난날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게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 보게도 한다. 이럴 때 작품의 폭은 한없이 넓혀져 문학의 진가를 드러내게 한다.
김은자의 「팔뚝베개」작품 중 결미를 살펴본다.
이 작품의 도입은 “밤늦은 시각 시부(媤父)의 제수거리를 장만하려 오랜만에 식구들과 장을 보러 갔다.(중략) 문뜩 누런 황토베개가 눈에 들어온다.(중략) 이리저리 살피니 아이 엄마가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로 시작 된 작품이다.
전개부분에서는 “남편의 팔을 제대로 베보지도 못하고 그를 보냈기에(중략) 새로 사온 베개를 떠올리며 사뭇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댁처럼 흥분된 하루였다.(중략)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품에 안아보니 어린 아이처럼 쭉 가슴에 안겨든다. 이제 자기 전 이 베개와 씨름하는 것에 재미들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얹어보기도 하고 발목을 올려보기도 하고 다시 목 아래 넣어본다.
야곱은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홀로 잠들었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중략) 그는 꿈으로 인도받아 모든 어려움을 이긴 이스라엘 영웅이다.(중략) 허전한 내 마음을 이 베개는 어떤 꿈으로 인도해 줄 것인가.“ 라며 결미에 이른다.
처음 사용했을 때에는 불편하던 것이 차츰 익숙해져 간다. 너무 편해 일어나기기 싫어져 나태하게 만드는 그런 폭신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마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려주는 듯 탄탄하게 힘을 주는 이 팔뚝베개에 애착이 붙기 시작한다. 마치 젊은 사내의 힘을 느끼게도 하는 이것을 누구에게 권해볼까. 꼭 필요할 성 싶은 한 친구를 떠올리며 혼자 웃어본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근본 의도는 무얼까?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듯이 이 베개를 베고 잔 나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 허전한 이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일까. 아니면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일까. 이 두 부분 중 한 부분을 빼내면 주제가 좀 더 선명하게 독자에게 다가서지 않을까.
물론 이 작가는, ‘수필은 어디까지나 나상(裸像)문학이요, 또 진솔하게 표현해야만 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이같이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가의 심정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한 작품이 완성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정작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결미에 통괄적으로 요약정리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영희의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란 작품의 결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가방을 꾸렸다. 마음만큼이나 너절한 옷을 개켜 넣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선 서늘한 바람이 돌아 나온다. 그래, 가자. 무엇에 더 미련을 두랴.” 라는 말로 이 작품을 연다. 그리고 집을 나가려는 딸을 다독이면서 적극 말리는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들었던 가방을 힘없이 내려놓는다. 라는 내용으로 전개부분이 시작되어 아직도 철없이 나풀대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는 내용과 함께 결말에 이른다.
“지난 결혼 25주년, 나무를 사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누구도 모르게 못질을 하고 락카 칠을 하며 몇 날에 걸쳐 야무지고 튼튼한 책장을 만들어 내게 선물한 남편, 은혼식을 기념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이 선물이 몇 배나 행복하다. 책을 꺼내 들 때마다 남편을 만지듯 책장을 애무한다.
살아보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비가 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마치 이 작품의 결미를 읽고 나니 언 듯 그 속담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 작가는 내게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은 도입 부분에서 작가가 심리적 갈등으로 가정파탄에 직면한 것을 전개 말미에 와서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므로 마침내 감사로 바뀐다. 그리고 결미에 와서는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 심리변화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같이 자기 성찰을 통하여 희망으로 끝을 맺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미라 여겨진다. 수필은 자성의 문학이요, 고백의 문학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런데 맨 마지막 행에서 “살아보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가 2002년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제목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란 말이 여전히 대중에게 정상적인 의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그 말을 맨 마지막에 써 강조하려한다면 독자들에게 이 글이 작가의 감정만을 쏟아 놓은 작품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럴 때 이 작품이 수필이 아니라 신변잡기 즉 잡문으로 오인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말을 빼거나 다른 말로 바꿨으면 한다.
결미의 처리기법은 이 외에도 있다. 작가가 결미에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수법이다.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이 이러한 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아요? 그 돈으로 무었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 글의 결미는 사건의 심리묘사와 행동묘사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할 수 있겠다.
이상에서 몇 작품을 통해, 결미의 예를 살펴보았다. 필자는 꼭 이러한 결미여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겠다. 그러나 잘 된 부분과 모순된 결미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미래의 수필이 보다 나은 문학작품으로 독자에게 환영을 받으리라고 여겨지기에 여기서 지적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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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0. 한국수필로 등단(‘86). 0. 수필집 : 웃고 사는 마음 외 4권. 0. 문학수상 : 노산문학상 외 4회. 수상 0. 수필이론서 : 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 (공저). 0. 고등학교 작품교과서 작품등재 작가.
한국수필상 심사펑
치열한 작가정신 구현한 작품들
한국수필상 후보로 오른 대상이 모두 일곱 분이었다. 등단 10년 전후한 수필가로 근년에 수필집을 낸 분을 선정하게 규정하고 있다. 오늘의 수필문단을 통찰하면서 수필문학이 초기의 아웃사이드문학, 아무추어문학, 비전문문학 등 온갖 폄훼의 시선을 받던 시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시대를 맞아 수필문학은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삶의 중심문학, 본격문학이 되었다.
본격문학이 된 이상 전문성, 치열성, 차별성을 지닌 문학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필에 대한 초기의 개념대로 ‘40대의 문학’ 여기의 문학‘ ’산책의 문학‘ ’생각나는 대로 쓴 글‘ 등의 느슨한 태도로선 본격문학의 역할을 충족시킬 수 없다.
수필가로 데뷔하는 신인들이 치열한 작가 정신을 전제하지 않고 안일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한국수필상’ 심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본 것은 오늘의 수필가로서 수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와 치열성을 지닌 작품을 낸 작가인가를 검증하는 일이다.
일정한 경력과 기간이 지나고 그냥 수필집을 낸 평범한 작가와는 달리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수필을 쓰고자 노력한 작가를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심사위원들은 검토와 심사숙고 끝에 이러한 요건을 만족시킨 김혜숙 수필가의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한국수필출판부) 김선화 수필가의 ‘포옹’(선우미디어)를 제 회 한국수필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순리에 따른 마음의 경지와 깨달음- 김혜숙의 수필세계
김혜숙 수필가는 ‘젊어지는 샘물’을 펴낸 이후 6년 만에 한꺼번에 세 권의 수필집을 동시에 출간하였다. 회갑을 기념하여 낸 세 권의 수필집 중에서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를 선정하였다. 작자는 ‘책을 내면서’라는 서문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저는 문학을 통해 새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문학과 사색과 기도의 시간이 돼주었고, 펜과 원고지는 친구가 되어 외로움까지 몰아냈습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즐겁고 ,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의 밭을 갈며 글쓰기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써 내려갔습니다. 때로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지요. 서정의 샘이 고갈되어 몸살을 앓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맑은 샘물을 조금씩 흘려보낼 때는 얼마나 시원하고 후련했는지요.’
이 대목을 보더라도 이 작가의 작품을 쓰는 태도와 진지성, 문학의 터전이 서정임을 알 수 있다. 김혜숙의 수필은 서정수필이고 서정의 근간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생의 영원한 주제어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숨쉬게 만들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원동력이다.
수필집을 읽는다는 것은 픽션 류의 작품집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문장을 통해서 인생과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수필의 경지는 곧 인생의 경지, 마음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 인생이란 악기가 좋아야만 소리가 좋을 것이며,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도 향기가 나는 법이다. 김혜숙 수필가의 ‘인연의 굴레 사랑의 고리’에서 드러나는 삶의 지향점은 ‘인연에 대한 사랑법’이다. 가족을 비롯하여 친지, 동창, 이웃, 동료 등 여러 인연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한 사랑과 배려, 조화와 균형을 얻어내는 슬기와 노력을 보여준다. 이 바탕엔 따뜻한 휴머니즘이 흐르고 있다. 삶을 둘러싼 대립, 갈등, 단절을 없애고 화해, 포옹, 융화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인생 성숙과 깨달음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김혜숙의 수필은 물 흐르듯 모든 인연과 관계가 막힘없이 상통하고 합류하여 더 큰 바탕을 이루는 상생의 세계이다. 순리에 따르며 진정성을 지녀서 인연의 굴레와 사랑의 고리를 원만하고 조화롭게 풀어가는 인생 경지를 보여준다.
배려, 경청, 봉사, 겸허. 정성이 굴레와 고리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며, 이런 삶의 태도와 정신이 그의 수필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김혜숙의 문장은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순수하고 맑아서 맑힘이 없고 거슬리지 않는다. 이런 문장은 순수한 마음의 경지에서 나온다.
‘천하제일의 차’ ‘사진 속의 어머니’ ‘명사십리의 물결’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손이 큰 여자’ 등에서 주조를 이루는 테마는 삶의 미학이며, 구체적으로 작자의 추구는 진, 선, 미에 닿아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의 거울이셨다. 팔순의 나이에 바바리가 어울리고, 자식들에게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려가는 자존심 강한 어머니의 거울에 비친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리라.
어는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부이 누구냐?’고 물어온다면 서슴지 않고 “나의 어머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세월이 훌쩍 지나 30년 후, 나의 아이들도 ‘우리 어머니’를 가장 존경 한다‘ 고 하게 될른지 두려워진다.
어머니를 닮은 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내게, 사진 속의 어머니가 화한 미소를 보낸다.
‘사진 속의 어머니’ 일부
‘사진 속의 어머니’에 나타난 작자의 삶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어머니의 삶을 본받고 이어가려는 생활 태도를 보여준다. 자녀들에게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계승하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현대에 와서 존경받는 어머니상, 아버지상이 깨어지고 효에 대한 개념이 점차 희박해져 가는 현상 속에 효사상의 계승과 실천을 통한 한국 가정의 정체성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김혜숙의 수필은 그의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의 꽃이다. 어떻게 최선의 노력으로 삶을 의미의 꽃으로 피워 놓느냐 하는 데, 수필쓰기의 목적이 있다. 그는 근면과 노력, 성실과 봉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통해 삶의 미소와 향기와 빛깔을 빚어낸다.
이런 조율과 화합을 얻어내기 위해 순리와 이치에 순응하며 숨결을 맞추고 있다. 전통과 자연에서 배운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이 자리잡고 있다..
김혜숙의 문장은 자신의 인생 경지에서 흘러나오는 청계수처럼 막힘이 없다. 정의 따스함과 배려의 미소와 손길이 있다. 한마디로 그의 수필세계는 모범적인 인생 미학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좋은 인간, 좋은 인격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전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김혜숙의 수필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제나 소재 면에서 신변잡사, 특히 가정과 가족 등 인간관계에 국한된 듯한 느낌과 문장이 천편일률적으로 흐르고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게 오히려 답답한 맛을 준다는 점이다. 장점이 많은 반면 단점이 있으므로 더 진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지만 독자성, 전문성, 개성을 통해 본격적인 작가의 면모를 살려나갔으면 한다.
처녀 수필집을 낸 이후 6년 만에 수필집 3권을 한꺼번에 묶어낸다는 일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수필에 대한 치열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김혜숙 수필가 60년 회갑 인생의 깊이와 성숙을 음미하고 ‘인연의 굴레’와 ‘사랑의 고리’에 얽매여 굴종과 고통으로 지내는 삶이 아닌, 그 속에서 인생을 발견하고 관계와의 소통을 통해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얻어낸 삶의 미학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수필문학에 대한 꾸준한 정진과 성과를 인정하여 심사위원회는 금년도 한국수필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치열한 수필쓰기를 통한 인생 탐구- 김선화의 수필세계
김선화의 ‘포옹’은 ‘씨’ ‘포옹’ 등 60여 편을 수록했다. 이번 수필집은 ‘둥지 밖의 새’(1999) ‘눈으로 보는 소리’(2002) ‘소낙비’(2005) 에 이은 네 번째 수필집이다. 3년 주기로 수필집을 낸 경력으로 보면, 수필문학에의 집중력과 열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수필집 ‘소낙비’는
5매 수필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이는 하나의 시도이기 전에 치열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선화 수필가의 근래 작품을 살펴보면 주제나 소재가 여느 여류 수필가의 보편적인 영역인 일상적 신변잡사에서 벗어나 발견, 탐구, 추구의 세계로 관점과 시각을 확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개인사적인 기록 차원을 초월하여 작가의 안목과 인생 관점에서 찾아낸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추구해내려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본격 수필가로서의 탐구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개인사의 정리나 신변잡사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면, 이는 작가 만족의 글쓰기에 불과하며, 독자를 위한 글쓰기에서 비켜난 셈이 된다. 독자의 삶에 도움을 주려면 개인의 체험에 대한 기록에서 한 차원 높은 인생에 대한 의미 부여나 가치 창출이 있어야 한다.
먼저 주제나 소재에서부터 독자성, 개성, 전문성, 흥미성을 지녀서 차별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선화 수필가의 경우엔 가정이나 개인사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의 구축과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탐구정신을 보여준다.
남녀 한 쌍이 꼭 부둥켜안고 땅에 묻혀 지내다가 세상에 나왔다. 이탈리아북부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뼈와 뼈로 얽혀있는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발굴 팀(엘레나 멘토니)은 5천년~ 8천년 전의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소식을 우연히 인터넷 창에서 접하고 , 한참동안이나 멍한 채로 다음 할 일을 잊었다.
우선 두상을 살펴보면 뒤통수의 곡선까지가 또렷하다. 암만 봐도 뒤통수의 돌출이 적고, 턱 선이 약간 부드러운 쪽이 여성인 듯싶다. 서로 눈과 눈의 높이가 금세라도 불꽃 튀는 교감이 이뤄질 태세이다.
어깨와 어깨를 휘감은 팔과 허벅지와 허벅지께로 포개어져 있는 건강한 다리뼈. 한참을 들여다보자니 나 자신이 어느 결에 ‘유골감정사’가 되어 이름 모를 옛 삶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아마도 지극히 젊고 뜨거운 연인이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상기된 모습으로 맘속의 파동을 소곤거렸으리라. 그러다가 정애에 겨워 와락 켜 안기도 하였겠지. 그런데 그날은 어떠한 사정으로 둘이 함께 숨져가야만 했을까.
‘포옹’의 일부
‘포옹’은 작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소재를 우연히 취하여, 작자만의 관점과 의미 부여로 ‘5천년~8천년의 포옹’을 그려냈다. 주검의 흔적으로 뼈만 엉켜 있는 남녀 한 쌍의 유골 출토를 보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부활을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작자의 능력이다.
이따금 탈춤을 추고 싶다. 탈에 가려진 인물은 저절로 흥이 올라 삶의 굴레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것 같다.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외형을 빌려 고바동이도 되고 들짐승도 되어 기진맥진하도록 놀아보고 싶다.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걷고 헤벌쭉이 입을 벌려 바보흉내를 내거나 성난 듯 포효도 하면서 관객들 앞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한바탕 흥 오른 마당놀이를 만날 때, 내 이런 욕구가 주체할 수 없는 추임새를 넣게 한다. 그래 봤자 ‘얼쑤’ 하고 힘 좋게 내지르지도 못하고 슬며시 지폐를 꺼내 맘에 드는 놀이꾼 앞에 내놓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러한 몸짓으로나마 그 누구보다 걸지게 놀이패의 무리가 되어 놀아본다.
‘탈’의 일부
‘탈’은 탈춤을 보고서 쓴 글이다. ‘탈’이란 가면이란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질병’ ‘사건’을 의미이기도 한다. 균형이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 파장으로 탈이 나 질병이 생기고 액을 부른다. 탈이 생기면 굿을 하고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는 등 민간신앙을 이용함으로써 평정을 되찾으려 하였다. 김선화 수필가는 ‘탈’을 통해 자신의 처한 마음과 질병으로부터 비롯된 억압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를 표출하고 있다.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고 싶은 열망이 보여준다. 탈을 쓰고 전연 다른 사람이 되어 마음대로 놀이를 펼치며 신명을 내거나 포효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김선화 수필가의 주제는 삶 속의 영원 찾기이며 행복 추구이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그는 삶에 대한 최선과 열정을 수필에 불어넣는다. 삶을 통한 의미, 가치, 영원을 찾아보려는 의식이 철저하며, 이러한 삶의 정신과 태도가 수필에의 열정으로 일관되고 있다. 그의 수필은 뼈에 사무친 애절함이 있고, 민족 정서와 닿아 따스함과 푸근함을 준다.
소재 찾기를 위한 여행과 현장 답사 등 노력이 돋보이며. 이런 전력투구를 통해 작품이 빛을 발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이에 대한 미학, 존재에 대한 의미 찾기, 삶을 통한 깨달음, 순간과 영원에 대한 의미 부여가 김선화 수필의 골격이다.
김선화 수필가의 문장은 간결하고 유려하다. 이미 5매 수필집 ‘소낙비’를 낸 바 있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파고드는 문장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 수필의 분량이 짧아지고 있다. 오늘날 수필쓰기의 방향성은 독자가 원하는 대로 ‘짧게, 쉽게, 참신하게, 입체적이게’ 쓰는 게 바람직하다. 김선화 수필가는 독자들의 구미와 감각을 잘 맞춰내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어느 작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체험의 확대와 전문 세계의 확보를 통해서 작품에 깊이와 무게를 불어 넣는 일이라 할 것이다. 형식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철학과 사상과 인격이라는 내용이 부합되지 못한다면 수필의 경지를 높일 수 없다.
김선화 수필가는 데뷔이후 4권의 수필집을 상재면서 보여준 집중력과 열정, 투철한 작가의식과 탐구, 아울러 실험성을 보여준 수필가로 그 잠재력을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금년도 한국수필상 수상자의 반열에 올라도 손색이 없다는 확신으로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하였다..
금년도 한국수필상 수상자인 김혜숙, 김선화 수필가의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문운을 빈다.
심사위원 김우종, 유혜자. 정목일(글)
이사장 유혜자 / 편집주간 권남희 / 기획실장 이철희 / 사무국장 서원순
편집차장 김의배 / 사진기자 김혜숙 (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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