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11월호 . 통권 165호/ 발행인 유혜자 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 편집차장 김의배 / 사진기자 김혜숙 (주경 / 기획실장 이철희 / 사무국장 서원순
정기구독 신청 02-532-8702
포토에세이 이정원 / 기행 에세이 김의배 / 화제의 작가 정희승 (권남희수필가 씀)
발행인 칼럼 유혜자 - 미술품 혼수
특집 1 자살과 웰 다잉에 대하여 ( 김경실 / 한영자 / 한동희 / 김미정 / 오세윤 / 이예원 / 손상희 / 이규백/ 이종옥 / 김준태 / 조성원 )
기획연재 김우종 한국현대수필 평설 ( 5)
연재 자란만 통신 김열규 초록과 파랑
지상강좌 정주환 수필문학의 허와 실
책과 함께 하는 세상
서원순 -김용만 수필집 '가와바다야스나리의 잠과 허튼 소리 '
사공정숙 - 지연희 시간의 흔적
에코수필 ( 임창순-용알뜨기 / 김용수 - 만능 복덕방)
문화탐방 ( 황정환 / 박원명화 / 최복희 / 정성채 )
시리즈 ( 이병남 처녀작-가을이 오는 창가에서 / 대표작- 별리 )
테마 에세이 -시간 앞에서
이원성 / 이당재 / 김문호 / 서경애 / 표화순
사색의 뜰 ( 이철호 / 정점길 / 이인희 / 주기순 / 박동석 / 하오명 / 김혜강 / 임도순 / 이칠환 )
문학회 순례 -용수문학회
강미희/ 강서영/ 고수부/ 권영재/ 김나영/ 김은성 / 민문자 / 백필기/ 서수련 / 서인숙 / 이명순 / 정동환 / 최염/ 황인강 )
신인상 당선작
노려 -오바 마 마마 외 1편 / 김영순 -음악이 흐르는도시 외 1편 / 윤묘희 - 내 전용 의자외 1편
서장원 - 창공을 향해 속소릴 뽑아서 외1 편
지난 호의 작픔평 (2008년 10월호 )
박양근 -수필에서의 독자 만족도와 자아도취욕의 편차
회원동정 / 편집후기
(한국수필2008년 11월)
수필에서의 독자 만족도와 자아 도취욕의 편차
박양근(부경대교수, 문학평론가)
평론가로서 수필을 평하려할 때,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신세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미가 있거나, 무릎을 칠만한 멋진 표현이 있거나,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감동의 글이 많을수록 좋은 평을 쓸 가능성이 많아진다. 반대로 밋밋한데다가 신변적이고, 눈을 확 밝히는 행간이 없으면서 까다롭게 굴거나, 윤색이 지나쳐 문맥이 뒤틀린 글을 연이어 읽게 되면 시간이 아까워진다. 문장이 주근깨 같고 내용에 블랙홀 같은 흡인력이 없는 글과 연이어 만나면 잘못 읽어낸 건 아닌가하는 자탄이 들기도 한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은 아니어도 “까마귀 무리에 해오라기 하나”가 되는 수필을 만나도 최소한 사흘은 즐겁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장사꾼을 생각할 것이다. 수필가들은 이 말을 모욕이라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생이 취업하려면 실력으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면접에서 뽑혀야한다. 글도 팔릴만한 상품이거나 명품 정도면 더욱 좋다. 중산층 고객은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만 고급 구매자들은 명품점에서 유명 디자이너가 재단할 옷을 입는다. 다자이너의 이름을 입는 것이다. 진정한 수필가라면 내심 명품점에 진열될 만한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문예지에 실린다는 만족감만으로 글을 쓴다면 결국에는 ‘땡처리 도매상’에 내다 파는 꼴이 되어 버린다. 차라리 글을 발표하지 않는 게 이름을 보존하는 방법일 것이다.
수필론을 이야기하여야 함에도 수필가의 자질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하였다. 솔직히 말하여『한국수필』10월호에는 가볍고 뿌리 없는 부유초 같은 글이 여러 편 끼어 있다. 편집진이 너그러운 탓인지, 경성의 지가가 폭락한 덕분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자랑하거나 단체를 찬미하는 글이나, 보도문 같은 글의 게재는 신중하여야한다. 독자는 책 한권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보상받고 싶어 한다. 하물며 평자야 더 말할 여유가 없다. 수준 미달의 글을 어떡해야하는가. 명품점이라면 당연히 싸구려 옷을 진열장에 걸어두지 않을 것이다.
글은 쓴다(作)고 말한다. 그러나 작품은 집필(執筆)의 결실이다. 집필한다는 의미는 서예가가 붓을 잡듯이 모든 에너지를 획마다, 어절마다, 구절마다. 문장마다 쏟아낸다는 뜻이다. 문장 요소간의 질서와 결속을 엄격히 지키면서 자연스러움을 이해한 글이 산 글이다.
지난 10월 호에서 읽어 주어야할 작품도 적지 않다. 화석이 된 두 유골에 언어라는 미감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김선화의 <포옹>, 치매의 예방을 생활화하는 내용을 담은 이경만의 <석양의 길목>, 차량 간의 안전거리를 2차적 상상화를 통해 심적 간격으로 풀어낸 이정아의 <사람과 사람 사이>, 해변의 새 발자국과 무당의 쌀 문양으로 발자국의 원형을 탐구해낸 전성희의 <새의 발자국 무늬 토기>,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까치를 자아로 하여 정전 문제를 다룬 강문석의 <까치 생각>, 초승달의 형상과 빛을 이미지가 충만한 언어로 묘사한 김홍은의 <초승달을 바라보며>, 다문화 사회의 적응과정을 바탕으로 분쇄기가 지닌 망각이라는 의미소를 천착한 한영의 <5월의 소낙비> 작가의 실수를 대화하듯 풀어나간 송승혜의 <시껍한 날> 등은 나름의 해석력과 장법(章法)을 조화시킴으로써 평을 받을만한 반열에 올라섰다.
어이된 일인지 그들은, 눈 감고 잠을 청하는 시각에도 나를 쫓아다닌다. 의식의 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아예 내 곁에 눕는다. 헤벌쭉 웃는 모습으로 정답기 그지않게.
김선화의 <포옹>의 일부를 인용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두 유골을 유골감정사로서 상상하며 글을 써내려 간다. 주목할 점은 유골이 주체이고 작가는 타자가 되어 간다는 반전이다. 죽은 대상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부활시켜 생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작가는 “그들과 얼싸안는” 흉내마저 낸다. 소재와 작가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 것이다. 뼈만 남은 물상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어 “헤벌쭉 웃게” 만드는 조물이야말로 플라톤이 말한 제3의 창조주로서 작가의 자리를 만들어준다. 김선화의 관점 세우기와 소재 살리기에 담긴 휴머니즘을 주목한다면 산 수필의 요건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허전할 때는 달도 쓸쓸해 보인다. 달은 내가 기쁘거나 슬플 적에는 마음속에 숨어서 뜨기도 한다. 달을 바라보면 언제고 지난날의 잊혀진 생각들을 하나하나 떠올려주며, 어머니처럼 잘잘못을 타일러주기도 하고 반성의 위로도 해 주었다. 초승달을 보면 어머니같은 생각이 난다.
위 단락은 김홍은의 <초승달을 바라보며>의 본론에 자리한 글이다. 서정성이 충만한 우유체로 엮어진 전문에서 고적감, 회상, 어머니, 초승달이라는 4개의 키워드가 월정(月情)이라는 심미감을 조성해 나간다. 그리움이라는 정조가 “나는 가냘픈 초승달이 좋다”는 대단원으로 항진하는 가운데 작가는 ‘초승달은 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부단하게 던지고 있다. 그 결과, 문맥은 초승달의 모양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인의 눈웃음 짓는 얼굴, 고갯길에 선 어머니의 얼굴, 연인 같은 얼굴이라는 의미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구성력을 돋보여주고 있다.
송승혜의 <시껍한 날>은 공항에서 당한 봉변의 에피소드로써 독자를 긴장시키는 재주를 갖고 있다. 무거운 주제와 격조 높은 문체가 없음에도 ‘시껍한 그 날’이 모두에게 ‘재수 없는 어느 날’로 발전하고 있다. 리얼리즘이 탄ㅌ나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우둔한 부주의를 해학의 소재로 삼아 타산지석의 일화로 자리매김한 서술력과 이야기 솜씨를 대하면 독자는 배상청구를 하지 않는다. 참고로 시껍은 식겁(食怯)의 한자말로서 ‘겁을 먹다’를 소리대로 적은 것이다.
김선화의 <포옹>과 김홍은의 <초승달을 바라보며>는 각각 수천 년 전의 먼 나라 유골과 현재 한국의 초승달을 소재로 선택하였지만 치열하게 다양한 관점으로 천착하였다는 공통성을 보여준다. 문장을 다듬기 이전에 성찰과 인식과 사유에 충실함으로써 수필작법의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무한한 창작기법 중에서 필수요건은 장르가 무엇이든 문학의 제 요건을 결속하고 언어의 의미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반면에 소재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개성적인 의식도 정제하지 못하여 상식적인 내용으로 부족함을 메우려다가 그마저 싱겁게 끝나버린 부류의 글도 다수 발견된다.
이종련의 <촛불>은 촛불과 관련된 인지된 여러 사실을 모으려 한 나머지 “나의 촛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망각한 결과 글의 초점이 흐려져 있다. 결미에서 제시한 ‘촛불, 커피, 고전음악’의 모티프는 너무 상투적이라 하겠다. 김성옥의 <고유가 시대>는 시사성 있는 소재를 택한 점에서 참신성이 있으나 고유가 시대라는 사실(fact)을 초월하여 진실(truth)로 확장해가는 의미통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문화탐방에 실린 유상옥의 <오사카에서 만난 오리>는 문화재와 소장품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관심을 끄는 제목에 비하여 수집 과정의 설명에 치우쳐 취미 코너에 실려야 할 글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정기의 <지상의 또 다른 세상>도 나열에 그쳐 긴장미와 흡인력이 미흡하다. 캄보디아 관광 일정을 소개하려 한다면 전일정이 아니라 주목을 끌만한 특정 문화의 탐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의 비참한 환경을 묘사하는 내용과 관광객의 가벼운 시선 사이에 궤리가 존재한다. 이런 결과가 무엇 때문에 빚어졌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문장가인 호적선생은 문장개혁 8가지 제안 중에서 “사물이 없는 글은 쓰지 말라”고 하였다. 글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사물이 있음으로 쓰게 되는데 사물이 없는 글이란 도대체 어떤 글인가. 그것은 표현에만 신경을 쓴 글, 진작 담아야할 내용을 담지 못하여 알맹이가 없고 주제가 소멸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글이다. 요약하면 글쓴이의 정신의 들어있지 않은 글이다. 수필은 아는 것만큼 만 쓴다고 한다. 글을 쓰기 전에 거듭 새겨보아야 할 말이다.
'월간 한국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료 5백만원 월산문학상 월간 한국수필 6월호 공고 (0) | 2012.06.04 |
---|---|
5월에 해야할 일(월간 한국수필 5월호 정목일 이사장 발행인 에세이) (0) | 2012.05.03 |
월간 한국수필 9월호 (0) | 2008.10.14 |
월간 한국수필 10월호 (0) | 2008.10.07 |
월간 한국수필 8월호 특집 고 월당 조경희 선생 3주기 추모 (0) | 2008.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