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정목일 (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 구양근 대만대사 (오른쪽)
구양근 대만대사/ 권남희 월간한국수필편집주간
수필가 구양근 (주) 타이페이 한국대사
일시 : 2009. 9.19. 12시
장소 : 대만대학교 문학원
대담 : 정목일 이사장
글. 사진 : 권남희 편집주간
구양근대사는 한국에서 대학 총장으로, 수필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대만 대사로 깜짝 발탁하여 그의 외교적 역량과 친화력을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구 대사는 이번 한국수필가들의 세미나를 대만대학 최초로 유치하여 수필가협회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었다.
정목일 : 바쁘신 중에도 대만대학에 한국수필가협회의 세미나를 유치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수필가로 같이 활동했는데 다시 외교사절로 다른 나라에서 만나니 감개무량합니다. 대만대학에서 40년 전 석사학위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와 지금을 돌아보면 변화가 많겠지만 문학 분야는 어떤가요.
구양근 : 대만은 나의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청춘의 황금시기를 이곳에서 5년간이나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국립 대만대학과 세미나가 이루어진 것은 저보다도 오히려 수평(修平)대학의 김상호 교수에게 더 큰 공로를 돌려야 옳습니다. 내가 대만대학출신이라는 것이 참고가 되었겠지만 김상호 교수가 일체의 알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김상호 교수는 한국인인데 이곳에서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김 교수는 내 일이라면 마치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무엇이나 손수 맡아서 뛰어주지요.
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문학 장르에서 ‘수필’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단어로는 수필이란 말이 있는데 아주 저급한 글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수필이란 이들은 ‘산문’이라고 합니다. 아까 세미나 도중에도 내 옆에 앉아있던 대만대 문과대학장 예꾸오량(葉國良) 교수가 쪽지를 건네 와서 보니 ‘수필=산문?’이라 써져 있었습니다. 내가 물음표를 지우고 ‘스(是. 그렇다)’라고 써서 보내자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 수필가로, 교수로 캠퍼스 안에서만 활동하시다 외교사절로 삶의 영역이 확대된 점에 대해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구 : 제가 공관장이 된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이번 대선에서 MB가 되지 않으면 큰 일이 나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당의 J씨는 경제에 실패한 정당의 사람이고, 같은 정당의 P씨는 아무런 경력도 실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국에 인간은 잘 사는 것이 목적인데 경제를 아는 사람이 MB밖에 없었습니다. MB가 되지 않으면 큰 일이 나게 되어 있구나 하는 위기위식에서 MB지지 성명을 발표하였고 그것이 그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대만 대사를 할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인연입니다. 1960대 초반, 그 때 한국 사람들은 중문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중국어에 반해서 전기 후기 대학을 모두 중문과만 시험을 치렀으니까요. 전기대학의 중문과에 입학한 저는 ‘중국어 미치광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모든 중국어 교과서를 다 외워버리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그랬더니 1등도 하고 장학생도 되고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문과 교수가 되어서도 어떤 책을 읽으면서도 반드시 사전을 뒤적이며 단어를 암기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요긴하게 써먹으려고 그 모든 준비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네요. 덕분에 이곳 대만 외교관들 중에서 중국어를 가장 잘하는 대사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역대 한국대사 중에서도 중국어를 가장 잘하는 대사가 왔다는 말도 듣고 있지요. 마잉주(馬英九) 총통을 만났을 때도 원래는 통역을 넣어 30분 대담을 약정 받았는데 실제는 통역 없이 40간이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더러 대만대의 쉬에장(學長. 선배란 뜻)이라 부른 데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 : 각종 행사에 참여하셔야 하고 각 나라의 외교관들. 국내의 귀빈들까지 만나고
가끔은 한국에서 방문한 손님들까지 맞이하다보면 한국에서 수필문우회 운영위원으로, 수필합평가로 활동하던 때가 그립지 않을까요? 글을 쓰고 싶기도 할 것이고요 .
구 : 아무리 바빠도 수필만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장르에서 나를 인정해 주었는데 이것을 십분 활용해야지요. 이 뒤로 외교관 생활을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일단 3년이 기한입니다. 이 3년 동안에 한 권의 독립된 수필집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너무 바쁘면 창작은 뜸해지지요. 창작은 사람이 좀 무료해져야 하거든요. 극도로 무료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무료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토요일 일요일도 파티다 모임이다 해서 열심히 뛰면서 웃어줘야 하니까요.
정 : 이러한 행사를 계기로 대만거주 한국교민회와 대만작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희망하며 대사님의 적극적인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구 : 이번이 참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만의 펜클럽에서 이렇게 상대해 주기란 쉽지 않거든요. 더구나 주 멤버가 대만대 교수들이었습니다. 이곳은 아시다시피 정제계 할 것 없이 모두 대만대에서 장악하고 있을 만큼 대만대는 자존심이 강한 곳입니다.
교포들은 자기가 문학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 터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발굴해내야 합니다. 이곳 작가들을 한국에 유치할 필요도 있습니다. 모든 가교역할을 제가 해보겠습니다. 사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역대 대사들 가운데서 저처럼 문학 창작활동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 : 엘빈 토플러는 21세기를 문학위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만의 문학세계
흐름과 젊은 층의 정서를 알고 싶습니다.
구 :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활자문명이 전자문명으로 전환하는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미래에 어떤 형태의 사회가 되던 문학은 영원할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바삐 돌아가는 멀티미디어의 세계에서 시계의 초침이 멈춘 듯한 고요(문학)를 더 요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대만의 문학이 우리보다 높다고는 평하지 않겠습니다만, 단 한 가지 특색만 말씀드린다면, 이곳은 각 신문 마다 부간(副刊)이란 것이 있는데 문학 편을 말합니다. 모든 작가나 평론가들이 대개 이 부간을 통해서 등단합니다. 대만의 문학의 조류를 알려면 신문의 부간을 꼼꼼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 : 세계가 하나처럼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좀 더 국제적인 감각을 갖기 위해서 국내 작가들은 어떤 점을 생각해야 하나요?
구 : 영어와 중국어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을 써봤자 영어나 중국어로 소개되지 않으면 세계가 모릅니다. 외국의 도서관에 가서 한국문학작품을 찾으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영어나 중국어로 직접 쓰던지, 아니면 그들이 보고 하도 좋아서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을 하게 만들든지 입니다.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면 특히 영어로 써야만합니다. 이번에 저도 제 수필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서 한, 중, 일, 영 4국어 판을 올 안에 출판하려고 지금 서두르고 있습니다.
대만 화련 지방과 인근 지진소식이 들렸습니다. 공무에 바쁘실 텐데도 한국수필가협회 세미나 때 보여주신 친절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본 내용은 2009년 월간 한국수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6가 237-17. (사) 한국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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