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유혜자수필가의 음악이 있는 문학 툭강

권남희 후정 2010. 1. 23. 16:28

 

유혜자 수필가'문학속의 음악'특강  /사진촬영 윤중일 수필가.사진작가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오전 10시 /

MBC아카데미 롯데잠실 목요수필  (이남수 회장. 김은순 총무)   

 

음악과 문학

단편소설·수필구성에서 음악의 역할을 중심으로


유 혜 자

   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前 이사장 .MBC라디오 PD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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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랍신화의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리라 연주가였다. 그가 리라를 연주하면 산짐승이 다가오고 나무와 바위, 흐르던 강물까지도 흐름을 바꾸어 모여들었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다윗은 여호와께 대한 찬양과 참회의 시(詩)를 현악기 반주로 읊었다. 음악은 이처럼 동 · 식물로부터 조물주까지 감동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문학에서 궁극의 목적은 감동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문학은 음악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상호 보완과 강조의 구실을 하며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대가요와 신라의 사뇌가(향가), 고려·조선조의 시조·가곡도 곡조가 있는 음악이다. 서양에서도 고대시가는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흘러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등은 괴테 · 실러· 하이네의 시로 작곡하여 가곡을 만들었고, 오페라는 거의 문학작품을 대본으로 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음악은 사람뿐만 아니라 신(神)과 동물 · 식물도 감동시키는 것이어서 문학에서도 음악을 많이 이용했다. 음악작품 · 악기

·음악용어 · 작곡가 · 연주가의 생애를 제재로 하거나 내용 중의 주요 소재로 삼기도 하고 작품의 배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내용의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등 보조적인 경우도 있었다. 음악은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청각적인 기억 안에서 오래 존재하며 예술적인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또는 순간적일지라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자아내기도 하고 문학작품 속에서 희로애락의 강도를 높여주는 음악, 영상매체가 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서 문학의 입지는 얼마나 축소될까 염려된다.

 우리에게 친근한 단편소설 몇 편과 수필에서 음악의 역할을 알아보고, 문학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 싶다.  2

 음악을 원용한 단편소설과 수필에서 음악의 역할을 살펴본다.

가.표제로 한 작품들

 음악가의 작품 · 연주를 제목으로 구성했다.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전기를 썼고, 그것을 바탕으로 음악가의 사랑과 진실에의 투쟁을 그린 『장 크리스토프』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체 소나타 』,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약』은 베토벤의 작품 제목을 표제로 했다.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밀바의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표제를 쓴 것이다.

 수필의 경우를 보면, 사실과 감상·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표제수필로 홍난파의 「월광곡」, 피천득의 「보스턴 심포니」, 정목일의 「대금산조」를 들 수 있다.

  “이윽고, 베토벤은 피아노를 향하여 앉았을 때 창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은 깜박거리던 촛불을 그나마 꺼버린 방안은 침묵과 감격과 신비에 잠겨 있을 때, 들창으로 넘어가는 달빛이 교교하게 흘러 들어와서 피아노의 건반 위에 비쳤던 것입니다. … 중략 …

 황홀하고도 신비한 이 광경 속에서 두 남매는 자기네의 심장의 뛰는 소리가 행여나 대 악성의 감흥을 …

 -홍난파의 「월광곡」에서

 음악은 상상력을 자극하여 극적인 스토리를 만든다. 작곡자와 신기료 장사 오누이 사이에 있었음직한 얘기로, 음악에서 못 느낀 감동을 더해준다.

 피천득의 「보스턴 심포니」는 작가가 라디오로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 중계방송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국에서 입장권을 살 때 번번이 만나던 하버드대생과의 회상장면이 오버랩되고,

“그는 이 가을도 와이드나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벌써 단풍이 들었을 야드에서 다람쥐와 장난을 하고 이 순간은 심포니 홀 삼층 갤러리에 아낮아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중략… 중계방송이 끊어졌다. 7000마일 거리가 우리를 다시 딴 세상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이든 심포니 제1악장은 무지개아도 같다.”

-피천득의 「보스턴 심포니에서

 보스턴 심포니 연주위 중계방송을 매개로 아름다웠던 만남을 재생시켜본 가편(佳篇)이다. 정목일의 「대금산조」는 한국인의 정서를 운율미 있는 대금 산조 가락에 의탁하여 명상적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

“대금의 달인 이생강의 대금 산조를 듣는다.  달빛 속으로 난 추억의 오솔길이 폎쳐진다. 한 점 바람이 되어 산책을 나서고 있다. 혼자 걷고 있지만 고요의 오솔길을 따라 추억의 한복판으로 나가고 있다. 나무들은 저마다 명상에 빠져 음직이지 않지만 잠든 것은 아니다.”

-정목일의 「대금산조」에서

음악 작품의 묘사와 이미지 기법을 통해서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나.음악을 매개로 주인공의 심리투영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연주는 인물의 성격묘사나 상황을 암시하기도 하고 서정의 실마리가 되긷 한다.

 김승옥(金承鈺)의 「무진기행」에서 주인공 윤희중은 무진에서 자신의 쓸쓸한 옛 모습과 닮은 여교사 인숙을 만난다. 그 여인은 ‘목포의 눈물’과 오페라『나비부인』의 아리아「어떤 갠 날」을 부르며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윤후명의 「호궁」의 경우, 호궁은 애달픈 소리의 악기이다. 주인공은 중국계 미인 미스 요의 아름다움에 설레다가 그녀의 자유분방한 이성관계 사실에 충격 받고 그의 나체 사진을 보는 그의 귀에 “…라이라이 그녀가 타는 호궁소리는 ‘나’에게 외로움에 떠는, 슬프게 애달픈 소리로 들린다.”로 주인공의 절망적인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정혜옥의 「도나우 강가에서」는 작가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도나우 강’ 노래를 듣던 회고와 현지에서 보는 도나우 강이 감회를 엮은 서정수필이다.

“나의 삶에 있어 이젠 강 건너로 띄워보낸 기억이 더 많다. 어릴 적 남강 곁에서 함께 성장하다가 흩어져 버린 얼굴들, 이제는 베어져 황량한 땅이 되고 있는 대숲의 기억. 닿지 못할 곳에 대한 동경의 노래를 혼자 부르던 어머니도 강을 건너가신지 오래이다.”

 - 정혜옥의 「도나우 강가에서」에서

작가는 “지금 내가 고향의 강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후일 나의 집에서 다시 도나우 강의 노래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고 어린 날의 추억과 의문들을 대신하고 있다.


 다. 음악·음악가를 제재로 드러내는 삶과 예술과의 관계

“바톤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을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피천득의 「플루트 플레이어」에서

작가는 오케스트라 구성원들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무명의 플루트 연주자가 그 모습니 감춰진 채 전체의 조화를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다는 사실, 이름 없는 연주자와 빛나는 지휘자를 비교하며 ‘나’와 우리 ‘삶’을 생각하게 한다.

 박경리의 「거리의 악사」도 음악을 제재로 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료수집과 초고작성을 위해 방문한 시골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린다. 노래 부르며 행상 다니는 노인을 만나고 어렸을 때 본 장터의 악사들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거리의 악사-멀리 맑은 공기를 흔들며 노파가 부르던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로 끝을 맺고 있는데 삶과 예술과의 관계, 전업 작가인 필자와 거리의 악사와의 선명한 대조가 일품이다.

 전숙희의 「음악이 주는 기쁨」그야말로 우리 삶에 도움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 음악의 이로움을 체험을 통하여 피력하고 있다. 보편적인 음악의 효용성을 강조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이라도 그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는 음악이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다.… 중략 …

 - 전숙희의 「음악이 주는 기쁨」에서

 유혜자의 「위풍당당한 연처럼」은 음악가 모차르트의 삶과 그의 작품(교향곡41번『쥬피터』)을 제재로 삶과 예술가의 관계를 그렸다.

“ 함께 뜨기 시작한 연들 중에서 우뚝 솟아 저 밑에서 다른 연들이 강풍에 떨어지고 다른 연줄과 얽히는 것쯤 아랑곳하지 않고 높이높이 떠 있다. 바람쯤 개의치 않고 위풍당당한 것을 보니 연관도 없는 모차르트의 『쥬피터교향곡』이 떠오른다.

- 유혜자의 「위풍당당한 연처럼」에서

줄 끊어진 연처럼 불안정했던 만년 모차르트의 삶과 승리의 찬가 같은

『쥬피터교향곡』, 그리고 높이높이 올라가는 상승의 연 같은 삶이 담겨 있다.

 정선모의 「지휘자의 왼손」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왼손 존재의 중요성을 갈파하고 있다. 지휘자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결미에서

“오늘 무사히 항해를 마치게 해준선장만의 공이 아니었다. 키잡이를 잘해준 왼손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표류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선모의 「지휘자의 왼손」에서

 완성된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문학인의 사명일진대, 삶의 자세를 소중하게 지켜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위의 수필들에 드러난 주제라 하겠다.


 라. 음악으로 영감을 얻거나 주요소재로 이용하여 주제를 강조 

 노래 부르는 즐거움, 음악을 즐기는 것을 표현하고, 음악과 악기의 인상, 분위기와 느낌이 작가의 정서에 들어와 재구성되기도 한다.

 조경희의 「음치의 자장가」는 사회적 모임에서 위축된 음치로서 노래 부르기를 꺼리는 작가가 쉬운 곡부터 배워 자신이 붙는다. 그리고 아기를 위한 자장가는 계속 불리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병호의 「음악은 흐르는데」도 음악과 자신과의 관계, 주변사람들의 음악에 얽힌 이야기가 내용이다. 반숙자의 「조팝꽃과 트로이메라이 언덕」은 과거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 얽혔던 작가와 제자의 일화를 수필화했다. 염정임의 「겨울의 빛」은 라디오에서 흐르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선율을 듣고 연감을 얻는다. ‘의식이 바닥부터 흔들려 창작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게 되고,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것이 내부의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 에너지의 원천은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는 답을 얻는다. 이옥자의 「나는 가끔 노래를 부른다」는 자신의 생활과 음악의 이력서라고 볼 수 있다. 여성다워야 하는 우리네 구습과 옛날 우리 조상들의 노래, 감성의 원류를 간절히 소망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다.

 음악은 행위의 동기도 되고 그대로 행위로 주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마. 기타


 오디오 기기의 보급 확대, 방송, 음반의 출반으로 우리 생활, 작가의 소설에 음악이 자주 반영되는 경향이다.

 신경숙의 소설집『오래 전 집을 떠날 때』에 실린 여러 작품에 음악작품 연주가가 등장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끼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음악과 긴밀한 작가로 볼 수 있다. 그밖에 권현숙의 「삼중주」, 김형경의 「푸른 나무의 기억」, 배수아의 「랩소디 인 블루」, 한강의 「여수의 사랑」등도 음악이 나오는 작품이다. 클래식, 가요 등이 주요 모티브가 되었거나 분위기 묘사, 성격을 드러낸다.

 김동삼 시인은 대부분이 작품이 음악과 관련된 시들이다.

 심미적인 감상, 예찬으로 일관하는 묘사가 아니라 음악이 생활화되면서 작품 속에 녹아든 신세대 작가들의 경우, 다양하게 심리 묘사, 상황변화에 이용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3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학과 음악의 관계를 볼 때 앞으로도 그 밀접한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문학과 음악은 둘 다 상상력의 소산이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추구하는 바가 같고 언어와 상징적인 기호로 나타내서 둘의 본질은 같다.

 현대인이 선호하는 영상매체는 일반적으로 즉물적인, 시각적인 것이어서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상상력을 갖고 있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한다. 인간이 인간이고자 할 때, 상상력을 누리려 하는 한 문학의 위상은 좁아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