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보들레르 < 화가와 시인>

권남희 후정 2010. 2. 7. 10:46

 

 보들레르 < 화가와 시인> 열화당 / 윤영애 옮김

보들레르 미학의 등대 들라크루아 , 그에게 바치는 미술론

 

역자해제 5쪽부터 20쪽까지

들라크루아, 보들레르 미학의 길을 밝혀준 '등대'

샤를 보들레르는 단연 <악의 꽃> 의 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단 한권의 이 시집에 의해

' 현대시의 시조'라는 명성을 당당히 얻고 있다.  베를렌, 랭보, 말라르매가 그로부터 출발했고 페기와 아폴리네르에게 길을 열어 준것도 보들레르이며 , 초현실주의의 시인들과 발레리의 먼 기원 역시 보들레르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시인으로 알려지기 전에 미술평론가로서의 명성부터 얻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그가 <악의 꽃>을 발표한 것은 1857년이지만 , 미술비평은 그보다 훨씬 전인  1845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다. 조형예술을 비롯하여 모든 예술 전반에 관한 그의 관심과  소양은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싹트고 가꾸어진 것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고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부친 덕분이었다. 18세기의 전형적인 귀족이자 예술 애호가이며, 동시에

그 자신이 그림을 즐겨 그렸던 그의 아버지 조세프-프랑수아 보들레르는 프랑스 대혁명의 격동기에 환속한 신부로

예순 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들 샤를을 얻게 된다. 보들레르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부터의 모든 미술품에 대한

끊임없는"   취미"를 물려준 것이 바로  그의 자상한 아버지였다. 자서전적인 성격의 <내면일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유일한; 나의 위대한, 나의 타고난 정열인 그림에 대한 신앙을 찬양한다."

" 어린시절,  루이 16세 풍의 고가구들, 고미술품들 , 집정정부, 파스텔화들, 18세기의 사교계 "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