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주홍글씨 류의 강박관념은 누구나 갖고 있다

권남희 후정 2010. 5. 2. 15:32

내 안의 주홍글씨

                                              권남희

버진이냐, 아니냐에 목숨까진, 아니더라도 결혼생활을 걸어야 했던 선사시대가 (자유 의지에 따른 성적경험 이 전 )있었다. ‘누나, 그남자하고 자지마요, 나도 잘해요’ 이런 영화광고가  대문보다 크게 걸려있는 지금,  ‘할 줄알아?’ 노래가 돌아다니는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 코미디다.    

 어머니는 화통하고 뜨거운 피의 소유자였는데  딸의 바깥생활에 대해서는 냉혹할 만큼 통제를 했다. 친구 집에 간다면 심중에 깔린 의심을 드러내며 꼬치꼬치 캐묻고 늦으면 혼날 줄 알라고  윽박질렀다. 나의 불만은 다른 친구들은 시험기간에 친구 집에서 같이 밤을 새며 공부를 하는데  나만 그러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휘둘려주는 척 했던 것인지 속일 수  있었는데 자식을 꿰뚫어보는   어머니의 육감과 신통력은  무서웠다.

 억압과  순결 콤플렉스 속에서  자란 나는 서울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가끔 남자친구들의 스킨십 요구에 부딪히면 엄청난 혼돈이 왔다. 갑자기 내 자신이 무척 더러워진 느낌을 버릴 수 없어서 스스로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 때는 일년 넘게 만나던 한 살 위 오빠가 키스를 하려고 했다고 절교를 한 일도 있다.   추측해 보면, 그런 부자연스러운  태도는  나의 의지라기보다 무의식에  잠재해있는 부모의 억압이  나를 통제했다고 봐야한다.  부모를 대할 용기가 나지 않는  정서적 불안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내 마음 속에 감추어진   ‘성적인 호기심’을   들키고 만 모멸감 때문에  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다..  때문에 차라리 부모가  원하는 그런 얼치기 딸로 있는 게 편하겠다는 자포자기(?)심정이 되어 성적으로는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피터팬같은 결심이 나의 인생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남편을  3학년 후반부터 만나기 시작했는데 두어 달 쯤 되자 육체적인 접촉 요구가 집요했다. 손잡기나 끌어안기는 예사였지만 키스와 패팅이 만날 때마다 진행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가족들 얼굴이 차례로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의 딸이 아니지 않을까 뭐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키스 이상은 안된다는 고집으로  4학년까지 끌고 갔는데 졸업시기가 되자 그는 자기의 존재를 나에게  확인받으려고 강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둘만의 여행을 떠나야한다는  억지 논리는 막무가내였다. 자신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이유가 무어냐, 다른 이유가 있느냐, 자기가 책임지겠다는데 왜 피하느냐  , 그는 상당히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서로에게  안심되는  이벤트를 갖기 위해 졸업 한달 전 우리는 과감하게 대천으로 겨울바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즐겨듣던 노래 속의 겨울바다는 낭만이 넘쳤지만 도착해서 바라 본 대천  바다 모래사장은  꽁꽁 얼어붙어있고 사람도 없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녹음기에 우리의 과감한 선택을 의식을 치르는 양 녹음하고  허름한 민박집을 찾아들었다. 싸구려 나일론 이불 속에서  좀 싱거우리만큼 거사를 끝낸 후 솔직하게 표현하면 행복하지도 않았고 아침이 되자  나락에 굴러떨어진 느낌이 그 아침의 춥고 어설픈 방만 큼이나 가슴에  꽉 차 있었다.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면 그게 나을 것 같다는 후회가 일었다.  

 그 후 나는 무언가 잃었다는 상실감에 시달렸다.

이제 나는 친구들과는 거리가 먼 여자가 되었고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는  순결한 딸이 아니니 어떻게 처신해야하나 하는 불안감과  아웃사이더라는 피해의식이 떠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행적에 아연실색을 했다. 나 또한 가족의 그늘에서 비굴하게 지내며   부모님의 절망과 한탄을  겪느니   스스로 버림 받는 쪽을 택해야 했다. 그와 머리를 맞댄 끝에 그가 다니는 학교 앞에 방을 얻어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비주류적인 내 행실에 대한  소문은 빨리 퍼져 나가 어느 날은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찻집에 앉아 그 친구는 친구들의 대표인 양 말을 했다. ‘넌 어린 나이에 너무 큰 바다에 휩쓸려버렸다. 이젠 친구라고 생각하기에는 거리가 느껴진다’  어린 나이에 불결하지 않느냐는 힐난이 담긴 투였다.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며 말없이 헤어졌다.

 그 뒤로 나는 친구들도 피하고 집안의 대소사에 되도록이면 참석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중심사회에서 밀려나도록 강요받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자의건, 타의건 나는 오랫동안 정통 결혼의 서자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살았다.  

 훗날 내가 경악을 한 것은 그렇게 순결을 목숨처럼 내세운  그 선사시대에도

 바람둥이가 많았고 그런 경험을 쌓은  친구가 결혼도 선택적으로 더 잘했다는 사실이다.   주홍글씨는 종이 호랑이였고 그 종이 호랑이에 나는 쫒겨다닌 셈이었다..  세상경험을 뿌리삼아 자기 삶의 주체자로 당당히 서야 하는 것을...      


권남희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수필당선 / 현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개인 작품집-『미시족』『어머니의 남자 』『.시간의 방 혼자남다』『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공저 - 결혼조건 0순위 등 30권 

        국제 펜 클럽, 한국여성문학인회이사/ 문학의 집. 서울회원/  대표에세이 회장 역임.

         송파문학회 문인협회 자문위원/ 미래수필문학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문단사 편찬위원 

강의 -MBC롯데 잠실, 덕성여대평생학습원, 분당 홈플러스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