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고모
권남희
그녀는 남동생들이 차례로 결혼하자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들을 상상하며 고모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녀 생각에 조카가 태어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걸렸다. 어서 빨리 조카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연신 올케에게 아이소식을 묻는 조바심을 드러냈다.첫 번째 동생에게는 빨리 아기를 가지라는 뜻으로 아이 이름을 먼저 지어놓기도 했다. 조카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때면서부터 제일 먼저 배워야 할게 ‘고모’라고 상상을 했다. '고모‘라고 불릴 때 그 행복감은 대단할 것 같았다. 고모라니..고모가 없던 그녀에게 ’고모‘라는 존재는 환상속에서 늘 부풀려졌다. 어머니에게 느끼지 못하는 여유와 포근함, 때로는 과분하다싶은 선물, 때로 복권 탄 기분을 안겨주는 용돈을 줄 것 같은 사람은 고모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모가 된다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까지 흠뻑 주겠다고 맹세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어머니 역할도 해야하지만 고모는 자녀들에게 엄격한 엄마와는 달라 응석도 받아주고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대상이 돼야하고 늘 가까이 하지 못하는 만큼 더 따뜻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다리던 조카들이 차례로 태어나자 고모는 바빠졌다. 이름 짓는 일부터 옷을 사는 일,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고모 몫이었다. 거리를 지나치다가 예쁜 옷을 보거나 , 신발을 봐도 조카들을 위해 사두곤 했기 때문이다.고모는 날마다 꿈을 꾸었다. 아이들이 빨리 자라서 ‘고모’ 라고 부르는 날, 아이들과 손잡고 나들이 가는 날, 아이들이 고모집에 놀러와서 고모가 차려주는 식사와 요리도 맛보고 침대에서 자도록 해야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말을 하기시작하자 고모는 책을 사들였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모두 시였다.고모는 조카들을 보러 자주 집을 드나들었다
어느 새 한 두 살 터울로 여섯명의 조카가 생긴 후 그녀는 큰 선물상자를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 상자 속에 선물을 사 모았다가 보내곤했기 때문에 ‘산타 고모’라는 별명을 얻은 고모는 집에 가면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여섯명의 나이를 기억해야 했기에 수첩이나 달력에 학년을 적어두곤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한번 나이보다 작은 치수의 옷을 사서 보내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나씩 내려입고 제일 큰 조카만 받지 못한 것으로 얼버무려졌지만 마음 속에서 자라는 조카들보다 빠르게 자라는 현실 때문에 고모는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이들이 차례로 학교에 다니게 되자 어느 덧 고모와 조카아이들은 초등학교 동창생이 되었다.고모는 그 학교 1회 졸업생이었다 . 40여년이 넘은 집은 고모가 네 살무렵 이사와서 그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던 어느 가을날은 초등학교에 모두 찾아가 고모가 졸업식날 사진을 찍었던 운동장 한 구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이들은 고모를 만나면 똑같은 물음을 묻곤했다
‘고모가 우리 아빠의 누나 맞아요?’
‘고모가 정말 이 집에서 살면서 우리학교에 다녔어요?’
행복감과 신기함에 어쩔줄 몰라하며 조카들은 고모를 에워싼 채 떠나지를 않는다 고모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아이들이 자라면 어떻게 멋지게 성인식을 치뤄줄까 . 결혼상대도 알아봐야겠지.
“ 고모 방학했어요, 서울 갈거예요 ”
고모는 전화 소리에 꿈에서 깨었다.그리고 바빠졌다. 여섯명의 조카들 숫자에 맞춰 밥공기, 수저, 컵도 준비해두고 이부자리도 마련해야 했다. 게다가 지난 가을 만났을 때 사주었던 마법 동화 해리포터 10권을 모두 읽었다며 해리포터 영화까지 보겠다고 한다.아이들이 볼 영화 표도 예매해야 하고 놀이공원 할인 티켓도 알아봐야 한다. 햄버거나 피자는 어느 식당이 깔끔하고 맛있게 할까 알아두어야 했다.
- 찰스 램(Charles lamb)의 ‘꿈속의 아이들’을 읽고 -찰스 램은 정신질환을 앓는 누님 메리를 돌보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45세에 11세의 ‘엘마 아이소라’를 수양딸로 양육했다.-
제 3수필집 '시간의 방 혼자남다'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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