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정목일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 만난 서상은 수필가

권남희 후정 2010. 8. 29. 19:23

2010년 7월호 커버스토리

수필문학 사랑을 실천하는 수필가로

고향 호미곶이 한국수필문학의 메카로 거듭나기를 꿈꾸며

20년 넘게 나무를 심어오고 있는 문화예술운동가 서상은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0. 6.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실

정리 :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호미수운동‘으로 불리는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겠다’는 운동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어떤 영향으로 시작했고 현재의 상황과 다른 나라와의 연계운동을 생각하고 신지요?

서상은 : 처음에는 호랑이 꼬리에 털을 심자는 슬로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해변에 해송을 심어온 지 23년이 되었지요.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 ‘헌수운동’을 벌이던 당시는 묘목지원을 1년에 두차례 2천에서 3천 그루를 했고 이제는 3-4년생 소나무를 심고 있어요. 3만 그루가 넘었는데. 해변 소나무 숲은 방풍림으로 어부림으로 바람직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북한에도 확산바람이 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요.

정: 한흑구 문학상 추진위원장으로 문학상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서: 흑구와는 오래 전부터 일던 사이였습니다. 그 부인도 음악 선생이었고 내 안사람도 미술교사로 같이 근무했지요. 포항에 은둔하면서 포항문학에 빛을 준 흑구지요. 피천득 못지않은 분이라고 여깁니다. 1983년 영일군수 때 흑구 문학비 건립을 지원하고 2009년 15회 호미예술 흑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문학심포지엄을 하고 제 1회 흑구 문학상 시상식을 했습니다. 대구 김규련 수필가를 선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호미곶인가? 호미곶은 구만리 끝 마을로 보리가 생산되는 ,보리 집산지이지요. 그곳에서 시상을 떠올린 ‘보리’가 흑구의 대표작이지 않겠어요? 올해 2회 수상자는 윤재천 선생(현대수필 발행인)입니다. 흑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 문화군수, 문화시장을 향한 보경예술제, 선산 풍년제 등 다양한 문화예술제를 이끌어오셨습니다. 그러한 문화운동에서 보람도 많이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서: 문화는 결국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하늘의 별처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 삶에서 탄생하는 것이기에 늘 사람들 속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선산은 쌀농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산을 상징하면서 군민의 화합을 다지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한 것이 ‘선산 풍년제’였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영일군수 때는 보경예술제로 하다가 다시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하여 일월문화제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지요. 민속박물관, 등대박물관을 세웠고 달성군에서는 달성 충효제를 만들어 지역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 획일적이지 않은 문화축제를 키우기 우해 노력했습니다. 구미시장 때는 구미예술제를 하면서 구미문인협회와 구미 예총 창립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문화운동가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습니다.

정: 영호남 수필문학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영호남의 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단절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영호남인이 모여 ‘영호남 문학인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988년 당시만 해도 ‘ 미쳤다'는 반발에 부딪혔지만 긍정적인 사람들끼리 모임을 시작하면서 동서화합과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임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런 교류를 계기로 영호남 유치원 자매결연사업도 시작하고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주었지요.

정: 문학을 하게 된 동기가 고시공부를 위해 들어간 을릉도를 소재로 한 글이 대구일간지에 발표되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시 정식 등단이 63년 월간지 신세계인데 심사위원이었던 선우휘 언론인과는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는지요

: 젊은 시절에는 고시공부에 전념했었습니다. 1963년 공보실장을 응모하여 울릉군으로자원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시간을 벌어 공부를 할 생각으로 ‘젊음을 스스로 유배시킨 결정’이었지요. 컴퓨터도 없던 그 때의 섬 생활은 외롭고 막막했는데 문학이라기보다 섬소식을 전하는 자료를 만들어 대구일간지나 방송에 보내다가 그 해 신세계 잡지에 응모를 했지 않았겠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박연구수필가와 둘이 당선되었는데 면식도 없던 선우휘선생의 추천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정: 구미시장 시절 수요문학문고를 개설한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 구미시장을 할 때였습니다. 구미에는 8만-9만의 근로자들이 있지만 그들이 여가활동을 할 거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TV보기나 남자들은 스포츠경기에 몰두하는 일 외에는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데가 마땅하지 않아 안타까웠던 차 포장마차를 생각해냈지요. 그들의 오후시간을 책을 읽고 사색할 무엇을 선물하자는 아이디어로 포장마차 문고를 개설하였지요. 낙동강 강변은 음악이 흐르게 하고 밤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도록 가로등을 설치하여 사색의 거리를 조성하였습니다. 말로만 책을 읽어라, 생각을 키워라, 강요하기 전에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일도 중요한 것이지요. 가을에는 금오산주변 은행나무를 걷도록 낙엽밟는 거리를 만들었는데 당시 한국수필가협도 참여하였고 한국문인협회도 낙엽밟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을 위한 문학은 이렇게 미처 생각지 못했던 틈새에서도 가능하고 더 낭만적으로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 NGO라고도 할 수 있는 평화운동은 무엇인지요?

서: 세상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참사랑 운동입니다. 종교도, 인종도 국적도 넘어서 평화운동을 주장하는 문선명총재의 요청으로 각계각층 5만명이 넘는 원로들이 모였습니다. 평화대사들이 전국 시도군 지역에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경북지역 회장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국제축복가정 지원, 에이즈 퇴치운동 등 ,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정: 한국수필가협회에 덕담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고 월당 조경희 선생님 계실 때 저는 최선을 다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다시 이철호 이사장 , 유혜자 이사장으로 체제가 바뀌면서 활기가 넘치고 생기발랄하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정목일 이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지역을 초월하고 범 문단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런 열기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문호를 개방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질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가 가장 선두

주자인만큼 모든 면에서 내실을 기하고 일반 모임도 응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아울러 지방에도 시도단위 지부를 만들어 연계고리를 만들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현재 몇 개 지역만 자발적이라기보다 필요에 의해 결성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곳에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정: 감사드립니다. 나무심는 운동, 문화운동가의 열정을 오래도록 이어나가기를 바라면서

아울러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상은

신세계 수필당선(선우휘 심사) .한국수필가혐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국제펜클럽 한국분부자문위원 외

구미시장, 영일군수 등을 지내고 은퇴 후 ‘영일호미용수회’회장을 맡아 문화예술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호남 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제 24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2006년)

수필집 『나무를 심는 남자』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