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최승범 시조시인 고하문학관에서 인터뷰 월간 한국수필 9월호

권남희 후정 2010. 9. 7. 10:02

古河 최승범 시조시인 .수필가

전북 문인의 대부로 막 싹트는 눈엽嫩葉의 맑은 정신을 이어가는

한국의 피에르 쌍소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장소: 전주시 교동 고하 문학관

일시: 2010년 8월 13일 금 오후 3시

정리와 사진촬영 :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사진은 오후에올립니다)

최승범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전주 남문의 고하문학관은 세계시조사랑 행사에서 제1회 한국시조대상을 수상하신 선생을 축하하는 듯 환한 모습으로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수 만권의 책과 귀중한 문학자료가 있는 문학관은 한옥마을이 이웃하여 전주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고문서에서부터 증정받은 작품집,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 사진까지 연도별로 세밀하게 정리되어 대통령의 기록실을 보는 듯하다.

 

정목일 이사장 : 선생님은 시조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65년 이미 수필쓰기 이론서의 하나인 『수필문학 ABC』를 발간하셨고 1980년에는 <한국수필문학연구>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아 수필이론을 정립해두었습니다. 수필을 쓰는 후진들이 알아아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승범 관장 : 당시 전북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수필쓰기 이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범우사에서 책은 내주었는데 이번에 다시 개정판을 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시집 못지않게 수필집도 출간했는데 수필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세속초월의 정신과 관조의 정신을 수필에 담고 싶은 면도 있었습니다.

정: 이제 수필의 르네상스시대라 할 만큼 한국에서는 수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최승범교수 : ‘천천히 살아가는 지혜’가 수필에 담겨있어서이지 않을까요? 무언가 생각하면 그 순간 벌써 지구 어느 곳에선가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의 시대, 상대적으로 ‘느리게 살기’운동이 일어나 일상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많지 않아요? ‘산책하기’ ‘기다리기’ 등이 있지만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지요. 느림의 미학에 적절한 정신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사가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말은 파스칼도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글쓰기는 자신을 다스리는 좋은 운동이지요.

: 전라북도에서는 문인의 대부, 신석정 시인의 사위로 유명한데, 문학청년 때부터 시조를 쓰셨는지요.

 

최: 초창기부터 시조로 시작했습니다. 가람 이병기 어른의 영향으로 시조 개설과 창작론을 공부했습니다. 그 때 석정 선생으로부터 '젊으니까 현대시를 하지 그러냐‘는 소리도 듣기도 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계셨기에 맥이 이어지는 일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정: 문학의집.서울(김후란 이사장)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실 때 누군가로부터 대학에 오래 계셔서 제자도 많아 좋겠다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배움이 소비의 형태로 변질된 사회가 되다보니 의미있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 40년 동안 국문학자를 했으니까 제자들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내세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르친 학생들은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자는 자기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 제자이기 때문에 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전북대교수인 양병호 시인, MBC이병찬 작가 모두 내세울 수 있을 만큼 훌륭합니다. 제자를 키우는 일, 제자가 되는 일 모두 쉬운 일이 아니지요. 고리타분한 이야기 같지만 무엇 때문에 사는가? 늘 고민해야지요. 삶의 질이 우선인데 살맛이 안나는, 맛없는 세상이 되었어요. 세속을 초월한 풍류정신으로 어울렸던 동갑내기작가들의 우정이 그립기도 합니다. 시조시인으로 박병순이 중심이되어 최진영, 이기반시인 여성작가는 고임순수필가. 문정숙 김제작가들과 ‘새벽’동인지(후에 신조로 바뀜)도 만들고 했습니다.

: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수제자이시기도 한데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최: 수제자라고 하면 좀 쓱스럽고 부모같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겠네요. 친부모처럼 모셨는데 또 그만큼 사랑을 주시고 아껴주셨습니다. 이병기 선생이야말로 해방 후부터 서울에서 중고등학교에 있다가 대학에 계셨는데 제자가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분은 말년 18년을 전주에 거주하였습니다. 우거지가 교동 58번지였는데 일요일마다 선생님에게 갔지요. 그 때 난 분갈이하는 것, 살아가는 이야기, 말씀을 들었던 것 등이 학교에서 공부한 것보다 더 큰 배움으로 남았습니다.

: 전라도의 아름다움은 가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불’을 쓴 최명희도 전라도에 태어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지요. 가락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고 타고난다고 하는데 문학에서도 가락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선생의 수필을 읽다보면 풍류를 느끼곤 합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청매분을 두고 친구와 즉석에서 시조를 읊었다고 했습니다.

: 풍류도 겨레의 정신적인 면에서 어느 한 갈래 이어져 온 것이지 않습니까. 친구의 집에 술이 있다는 말을 바람결에 듣고 찾아간 송강정철의 글도 있지만 저 역시 지인의 집에 설중매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어 번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침식사 도중 벙긋 벌어 웃고 있는 난 앞에서 그야말로 밥한 숟갈 넣고 꽃을 바라보고 또 한 숟갈 넣고 꽃을 보느라 찬이 없음도 탓하지 않았던 그런 낭만이 이제는 사라졌지요. 바람을 안타고 우리의 가락, 풍류를 지킬려고 애를 쓰고 있지요.

옛노인들이 한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료보다 터잡고사는 지방수령이 세고 그보다 아전들 세력이 더하고 아전보다 그 아래 서리들이 더높고 기생들이 서리보다 센데 그보다 높은 것은 음악이라 하더라. 하지만 음악보다 음식이니라, 그 네 가지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락은 삶으로 직결되어있지요. 이곳이 좋은 고장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 한국수필가협회 조경희 선생과의 인연을 말씀해주세요

최: 첫 만남은 대학생 때 조경희선생의 수필집 『우화』를 읽은 일입니다. 서로 대면을 했던 시기는 1970년대였는데 활동적이고 유머가 있고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분이라는 느낌을 가졌고 2001년 전북문단 출판기념회에 선생이 전주에 오셔서 축사도 해주고 격려금도 주어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1999년도 서울에서 민족문학상 수상을 할 때도 오셔서 축하해주었는데 늘 감사한 마음 잊을 수 없어요.

정: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은퇴작가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인데 긍정적인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최: 글을 쓰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은퇴하고 밀려드는 절망감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뚜렷한 의식, 생각을 갖고 글을 쓰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다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술이나 도박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가치있는 일인데 단순히 타이틀이 필요해서, 내세울수 있는 명함 때문에 등단한다면 오래가지 못하겠지요. 지식사회에서는 알은 체하는 일보다 감동이 우선이지요. 꾸준하게 노력하고 깊이있게 사유하고 활동해나가야 인생 3모작을 완성할 수 있겠지요.

: 지난 7월 6일 강화에 조경희 선생 수필문학관이 개관을 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문학관이 늘어나는 현상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적인 형태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할까요.

최: 내실있는 운영과 관리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지방 문학관들이 건물만 짓지 말고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자료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지요. 예를 들면 김남조 시인이 사인해서 기증한 시집, 조경희 선생과 나하고 얽힌 이야기들을 지방에서 중앙으로 발신하는 통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국이 그렇게 가야합니다. 내게는 등단할 때부터 선배문인인 박목월, 김동리, 안수길님들과 내왕한 편지들이 천통이 넘습니다.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이니 얼마나 귀한 자료입니까.

그리고 이 곳에서 다시 문학 강좌도 시작하는데 문학사의 현장이지요. 건강 때문에 한동안 쉬었다가 문학관에서 매주 수요일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한 두 해 쌓은 인연이 아니기에 저의 수필 ‘난연기’를 보는 듯한 인연들입니다. 선생과 제자가 따로 없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이지요.

정: 고하문학관 완공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곧 있을 개관이 기다려집니다. 선생의 문학관이 이곳 예향의 도시 전주에서 세계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한국수필가협회에도 지금처럼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최승범 시조시인

1958년 <현대문학>에 시조시 <설경><소낙비><등고>를 발표하여 문단에 오르다.

전북 남원 출생. 신석정 시인의 장녀( 一林)와 결혼.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계축일기의 연구>로 석사학위받다. 1980년 전북대학에서 <한국수필문학연구>로 박사학위받다. 전북대학교 인문과학대학 학장. 교무처장 역임.

1968년 수필집 『반숙인간기』 『여운의 낙서』 『철따라 생각하는 목소리 』 『지등같은 달이뜨면』외 다수 .△정운시조상, 현대시인상, 학농시가상, 가람시조문학상 황산시조문학상 수상 △고하문예관장, 전북대 명예교수

△시집『난 앞에서』,『천지에서』 등

△저서『蘭緣記』, 『한국수필문학연구』, 『거울』, 『한국의 소리』, 『3분 읽고 2분 생각하고』 등

 

* 본 내용은 월간 한국수필 2010년 9월 커버스토리에 실렸습니다 (정기구독 신청 02-532-8702-3)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편집주간 권남희 / 사무국장 서원순 / 기획실장 이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