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실에서 인터뷰 중 (이길원 시인.이사장과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지연희 발행인촬영
하회탈 쓰고 자전적 춤을 추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이길원 시인
일시: 2010년 7월29일 오후 3시
장소: 여의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실
대담 :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국제펜(PEN)클럽한국본부는 위치부터 특별하다. 국회를 가까이 두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방이다. 늦게 도착하여 송구한 마음에 땀 흘리는 얼굴을 씻겨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한강과 끝없는 하늘 , 대로의 풍경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집무실이 생각보다 넓다. 이길원 시인은 시 ‘자화상’에서 ‘써보지 못하는 칼날하나 감추고 산다’ 고 밝혔지만 ‘하회탈 자화상’이 더 어울리는 웃음을 짓고 있다.
7월에 시집을 출간한 시인에게 소개를 부탁드리니 불어로 번역하여 프랑스 출판사에서 발간하였다는 시집을 사인하여 주신다. 프랑스어로 변역되었으니 뜻도 모르지만 표지의 Lee Gil -Won 는 알아볼 수 있다. 기쁜 일이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이렇게 번역되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시인은 1977년부터 『주부생활』편집장을 10년동안 하였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행로가 궁금하였다. 당시 주부생활사에는 강민 시인이 편집국장을 멋있게 하고 있었고 구혜영 소설가, 민영 등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시인이 중학교 때의 꿈을 말한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어느 날 거리를 걷는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들려 너무 아름다웠다,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다가 음반을 샀다.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수학을 잘하니까 의사나 과학자가 되어라’ 하는 권유를 받아들여 연세대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교지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펜싱을 배워 64년도에는 전국체전에 나가 금메달을 탔는가하면 학생회장도 하였다. 시인에게서 활동적이면서 감수성 풍부한 청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살아 숨쉬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황홀한 춤을 추어야 한다는 시인의 시구처럼 시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사건이라고 할까.
시인은 유신개헌 반대 운동을 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취업이 안되는 상황에 몰렸다. 그 때 조경철 박사가 ‘우리 회사로 오라’ 하면서 이력서를 받아가셨는데 그 분도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이력서는 학원사에 맡겨졌다. 후에 시험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시험도 치르고 입사한 곳이 주부생활이었다. 현대인 다이제스트, 엘레강스, 소년생활 등 편집을 많이 맡았다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시인이 되지 않았다. 주부생활에서 정년까지 하였다면 지금의 이길원 회장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신체제 필화사건으로 정식 시인이 아니었던 그 때 ‘아직도 어둠’이라는 시를 써서 편집하면서 보여주었더니 ‘빼라, 구속감이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사직해야 한다고 하여 사표를 냈다. 마침 연세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같이했던 친구가 무엇을 해서 먹고살거냐고 물으면서 ‘너는 인쇄를 아니까 회사를 주겠다‘고 하였다. 매년 적자를 내고 있었지만 인수받은 회사 <태평양 그랜드>를 10년 동안 잘 운영하였다., 특수인쇄회사로 산업용 포장이나 상표 인쇄를 하는 회사로 열심히 하면서도 문학의 본향을 취재하는 일을 했다. 서정주,모윤숙, 신석정, 장민영 등의 시를 묶어 ‘명시의 고향’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다시 시인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났다. 틈틈이 써둔 시를 모아 개인 시집을 내려했는데 문덕수 시인이 ‘등단은 언제 했냐?’고 묻고 시를 골라 시문학으로 등단하도록 주선을 해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시인의 꿈을 이룰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학생운동을 거쳐 시인도 아니면서 겪은 필화사건 등 굴곡진 시간을 거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장에 당선되었을 때는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펜 회장 문효치 시인을 도와 부회장을 하고 있었지만 등단이 늦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결국 문효치시인, 김종상 시인 등이 도와주어서 중책을 맡게 되었다. 부이사장을 하면서 세계펜대회를 다녀보았는데 한국회원들을 위해 도와줄 일이 많다고 느꼈다. 시인이 되기 전에 이미 편집으로 국제펜에 입회하여 세계펜대회에 많이 참석햇다.. 어른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3년 후 바로 이사가 되었고 10번 정도 한국대표로 갔다. 시인은 2008년도 보고타 펜대회에서 우리나라에 국제펜대회를 유치할 것을 운동하여 2010년도 10월 일본동경, 2012년 펜대회를 한국에서 하겠다는 결정을 이사회에서 얻어냈다. 모든 연설은 영어로 하기 때문에 원고를 작성하여 직접 연설을 하는 행동가이다. 영어도 잘해야 하니 대중연설교육도 외국인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국제펜에서 한국이 7위이니 열심히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한국작가와 작품을 홍보하는 일이 펜 회장의 임무이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에서 하는 일의 근간은 국제적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국제적 교류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쭈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고 문학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신세계를 찾아가는 만남의 장을 만들기 위해 매년 각 나라를 바꾸어가며 행사를 하고 있다.
시인은 늘 ‘시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개인 독서량‘을 강조하였다. 시인이 쌓은 독서세계가 궁금하였다. 학생 때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청년기에는 종교서와 철학책을 즐겨 읽었다. 불교학교를 6개월 다닌 적이 있는데 시를 쓰는데 도움을 받았다. 시 이론서는 많지만 이미 시를 쓰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책이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려운 시론을 써야 알 수 없으니 시가 무엇인지 근본을 가르치고 싶어 시를 모르는 사람도 읽고 쓸 수 있는 이론서를 썼다. 한동안 국내의 ‘시 쓰는 법’은 다 읽었다. 현재 시 이론을 솟대문학에 연재하고 있다.
시인의 고향은 청주다. 지연희 발행인의 고향도 같다. 청주출신 문인들이 문단에는 많다. 시인이 꼽는 홍기삼 동국대 총장, 고등학생 때 이름을 날린 김문수소설가. 충주 신경림 시인이 좋아했던 박정희 시인, 김초혜시인, 등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이다. 학생 때 시화전하고 시낭송하고 감상하면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문학성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했다. ‘시인의 가족’ 을 시문학에 발표할 때 자서전을 쓰려다 아버지의 시를 발견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버지 어머니 일대기를 썼다. 시인의 문학성은 소년기 때 발아하지 않았을까. 집에서 벌써 잡지구독을 해주었고 ’농민생활‘잡지를 매일 아버지께 읽어드렸는데 그 때 문학수업을 한 것 같다.
‘피난길’ 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새벗에 실리기도 했으니 시골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과연 타고난 시인이 있을까 답을 알고 싶었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는 많지만 그만그만하지 않느냐고 답한다. 명시의 고향을 출판 할 때 서정주선생과의 정읍 여행길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좋은 시를 어떻게 쓰느냐고 여쭈니 선생은 ‘욕심내지 마라’는 당부와 함께 원고지 만장은 쓰고 발표를 시작하라며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외국작가의 경우도 번역이 잘 되어서 많이 읽혀진 사람이 독자들에게 인식되면 좋은 작가라고 알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펜에서 하던 번역사업도 번역원으로 가져가서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아직도 자신들이 문화의 본류라고 생각하는 게 유럽이다. 스웨덴, 불어, 영어, 서반아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게 시급하다. 스웨덴 한림원에 일본 문학관은 좋은데 비해 우리나라 문학관이 빈약하다, 노벨상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국작품을 외국인이 얼마나 읽고 있나? 따져보아야 한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세미나도 열었다. 펜 세미나 때 우리나라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 중에 97%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해외에 한국어과를 설치하고 그들이 우리의 문학을 번역하게 하는 게 빠르다.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을 볼 때 조건은 좋다고 보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전쟁 후와 비교해볼 때 경제가 좋아졌지만 위정자들이 문학에 더 관심을 가져야 노벨문학상도 가까워진다. 세네갈은 가난한 나라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
문학인도 NGO이고 민간 외교관들이다. 외무부에서도 지원을 해도 좋을 것이다.
한류바람을 타고 문학도 동남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소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데 펜에서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
한글은 소리글로 일제시대 박해를 받을 때도 한글을 지켰다. 한글의 세계화가 가까워wT다고 본다. 1970년 대 이후 시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인 오천명 시대. 전 장르를 포함하면 만오천명 시대에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증가는 비례하지 않았지만 문학에 대한 호응도는 괄목할만하다고 본다.
자비출판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가 확인을 한다.
그렇지 않으며 국제펜 대회 때 만난 미국작가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더니 ‘American too also'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웃었다.
시인의 시집 중에서 <개> 에 대한 시 몇 편이 있다. 「개는 개다. 」「견공의 등기」「항변」「그녀의 사랑」「집지키기」「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고야의 개」등이다.
시인은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를 꺼낸다. 10여 년 전 방문한 그곳에는 고야가 평생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었는데 그중에서 말년에 그린 화판 가득한 사막에서 머리만 내민 ‘고야의 개’ 가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 온 것이다. 인간의 일생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개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나타나 괴롭히고 사라지지 않았다.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이 마지막으로 전자책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교보문고 본점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오픈하면 전자책을 읽기위한 리더기 판매 비중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교보문고가 선정한 문학분야 전자책에『 문파문학』이 올라 ‘한권의 책’ E-Book에 증정본으로 나간다고 한다. 종이책의 종말이 올 것인가.
시인의 종이책에 대한 사랑은 단호하다. 종이책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기념비적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이 나왔을 때 미슬은 끝났다고 했지만 공존하는 세상이다.
출판계에 지각변동이 올 것은 확실하다. 차이가 없다면 고민을 할 부분이지만 전자책과 종이책은 공존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완성하리라 믿는다.
아버지를 생각하 시 「아버지 남긴 은행 몇알에 대한 명상 」애 대구하는 어머니 시는 「구름에 대한 명상」이라고 하여 전망좋은 시인의 집무실에서 지연희 수필가.시인이 즉석낭송을 하였다.
아버지가 남긴 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
바다에 이르자 / 비로소 잠잠해졌다 강은 /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위도 흔들어보고 /
때론 흙탕물을 일으키더니/아버지는 이 산하의 강물이었다/ 욕심사납게/ 계곡의 쫄쫄 흐르는 물모아/ 담지도 못하고 흘려보내는 / 흐르면서도 / 품에 고기들을 키웠다/ 끝없이 흘러드는 오수와 싸우며/ 갈라먹고 더럽히고 헤집다가/ 모두 떠났다/ 홀로 흘러갔다 강은 / 등줄기에 노을 가득 걸어놓고
이길원
시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 시문학 등단. 국제펜대회 10회 참가. 2010년 국제펜대화 한국행사유치
『어느 아침 나무가 되어』『계란껍질에 앉아서 』『하회탈 자화상 』
영역시집 『Sun Set Gloww』
불역시집 2010년 프랑스 출간
이길원 이사장 집무실에서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 이길원 시인. 권남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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