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도예수필가 심상옥 을 찾아서

권남희 후정 2011. 3. 13. 15:13

새로운 테마로 변화를 추구하며 파리, 중국 등에서 도예전을 하여

세계화를 이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심상옥 수필가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0.11.11 .12시

장소: 프라자호텔 2층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 도예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또 수필가로고 일찍 등단하여(1982년) 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삶의 발자취와 작품세계의 통합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옥: 인간 외적 인간처럼 무언가 늘 추구하다보니 현재까지 왔습니다. 전통답습보다 새로운 도예의 세계를 추구하고 수필을 쓰면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선생님의 수필작품세계를 보면, 객관적이고 기록적인 글로써 사유나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이 인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거추장스럽지 않고 솔직담백한 성품에 기인하고 있다고 봅니다. 도예를 전공한 영향도 있지 않나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더 큰 세계를 말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요? ‘만든다는 것’은 진실을 건져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은 오랜 인고와 침묵의 開花라고 생각합니다. 꽃을 나타낼 때도 그 아름다운 자태보다 생명력의 위대함을 중시하고 상상력에 형상을 더해 실존을 끌어내려 애를 쓰다보니 수필쓰기도 군더더기를 절제하는 맥락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정: 대만문화대학 예술박사로 수필가이며 도예가인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통보다는 세련된 변형형태를 추구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 ‘자연을 넘는 자연’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의 작품은 ‘도조-도자기 조각’이라고 해야겠지요. 전통도예는 식상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 인정받은 분청흙인 문경, 산청 흙을 바탕으로 한 전통도자기가 좋다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현대적 수법을 확립하기 위해 전통의 고루한 사상을 타파하고 새로운 발상이 재현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런 과제는 한국의 도예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안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수필계에도 무언가 획기적이고 참신한 세계를 확립해야할 숙제를 정목일 이사장님이 갖고 있다고 봅니다.

: 전통도예를 하기에는 여성들은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적인 도조를 하게 된 배경이 있지요?

: 모던 쪽이 만드는 테크닉이 쉽기 때문에 그렇지요. 여성들이 크게 발전이 없는 이유도 되는데 너무 불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경우도 전통에서 보았지요. 발전이 없는 것은 전통도자기도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갈색톤이나 회색톤으로 작품이 비슷합니다, 저는 광물질로 색을 내는데 색상 개발에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번 만들어내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지요. 매달 발표되는 수필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이라고 비평하는데 미술도 마찬가지지요. 도조를 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금속 공예를 하셨기에 저는 부산에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를 갖고 있어서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1000도에서 작품을 구워내고 있습니다. 저는 1300도로 구우면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고온에서 발색하는 걸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인정을 받았어요. 파리에서 유명했던 문신 조각가의 첫 부인이(프랑스인) 저를 파리로 초청하여 작품을 전시하고 그 분이 한국에 오기도 하며 교류를 하였습니다. 문신 조각가 다음으로 저를 파리에서 키우려 애를 쓰셨지요.

: 올 여름 개관한<강화 조경희 수필문학관>에는 선생님의 도예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문득 조경희 선생과의 인연도 남다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떠했나요.

: 조경희 선생은 말씀을 해도 핵심만 툭 던지는 스타일인데 제가 첫수필집 『그리고 만남』을 들고 만났던 1981년도 처음하신 말씀이 도자기를 보고 ‘도자기가 더 좋네' 엿습니다. 그 후로 예술의 전당 이사장으로 계실 때는 저희집이 가까워서인지 가끔 들리셨는데 정무장관이 된 후 기념으로 도자기를 드렸지요.

: 조경희 선생은 미술에도 안목이 높으셨지요. 화가들하고도 친했는데 문신선생하고도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세계를 많이 여행다니면서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트였다고 여깁니다.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문화예술사업이 국가를 살리는 아이템이 되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영국 런던 템즈강변의의 사치 갤러리는 개인이 세운 갤러리인데도 무명작가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개인으로 기념관을 짓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는지요. 강화에 그만한 부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 지금 그 땅에서 나오는 물이 최고의 수질이라 강화일대 식수로 쓰고 있습니다. 밤나무도 심었지만 동네주민들이 마음대로 거두고 있지요. 코리아나 유상옥 회장과 조경희문학관을 방문하고 나서 돌아보았는데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이중살림을 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묻어두고 있는 꿈입니다.

정: 세계를 내 집처럼 다니며 공부하기도 쉽지 않은데 다시 작품전시를 하고 수필작품집출간과 대학출강, 주부 등 초인적인 일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싶습니다.

심: 한국에서 아침을 먹고 일본에서 점심을 먹은 후 대만으로 날아가 저녁을 먹을 정도로 세상은 속도가 빨라졌고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를 떠났던 당시는 대만하고 중국하고 교류도 안될 만큼 외국 여행에 통제를 받던 시기였어요. 모든 것들이 평면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실시간으로 변화되고 입체적인 것을 즐기는 시대지요. 인간의 내면탐구도 하이테크로 스캔할 수 있는 세상, 젊을 때 부정적으로 보았던 세계를 돌아보며 풍부한 정감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정: ‘수필과 도자기의 만남’ 이런 전시행사도 많이 하셨다고 압니다. 예전에 경남문인들이 전통접시나 항아리에 자신의 시나 수필을 쓰고 구워서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 실질적으로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 도자기와 글의 만남형태 전시를 한동안 했지요. 그런데 서양화가나 문인들은 서예를 모르기 때문에 도자기에 글씨를 쓰는 일이 아무래도 서투르지요. 글씨쓰기는 숙련이 필요하고 아주 중요한데 만들어서 전시를 해도 가족들이 기념으로 갖거나 하지 않고는 판매도 어렵고 관리가 힘들었습니다. 이벤트로 끝나고 마는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갤러리나 박물관을 운영하는 기업체에서 사들이는 대안을 갖고 해야겠지요.

정: 수필문학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말씀을 주시기 바랍니다.

심: 도예를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마음에 넣었다가 소재로 꺼내어 만들어야 비로소 작품이 되거든요. 인간 관계도 그렇고 심지어 집에서 하는 밥 한 그릇도 마음을 담을 때와 귀찮아서 해낼 때가 다른데 수필도 최소한의 정성을 보이는 노력, 쓰고싶은 글감을 마음에 두었다가 쓰는 훈련을 하고 발표하면 참 좋은 글이겠다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이 없다는 사실이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오래된 수필계가 젊은 정이사장님이 맡으면서 활력도 얻고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기쁩니다. 둥지를 갖는기금모으기 연중사업을 벌이며 애를 쓰고 있는데 저 역시 동참을 하며 회원 모두 사랑을 보내주었으면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정: 수필로도 일가를 이룬 선생님에게 더 큰 문운이 함께하기를 빌며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한국수필가협회의 발전을 늘 지켜보시며 덕담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