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김규련 수필가 월간 한국수필 3월호 인터뷰

권남희 후정 2011. 3. 13. 16:05

<인터뷰>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1년 2월 16일 수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실

기록 :박기옥 수필가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이사장 : 한국수필가협회와의 인연도 오래되었지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규련: 한국수필가협회는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나의 수필은 한국수필지에서 싹트고 자라났습니다. 창간호 때부터 참여했는데 82년 여름 조경희 회장님이 포항에 오셔서 고 빈남수 박사와 나를 불러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표현을 잘하지 않으시만 늘 배려를 해주는 마음을 알고 있었지요. 87년도에 수필공로상을 주시고 90년 2월에는 한국수필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정: 수필은 평생 2편만 남기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피천득 선생의 「인연」 윤오영 선생의「달밤」「염소」를 예로 들어 주셨습니다. 다작을 경계 하라는 의미인가요?

김: 작금에 와서 수필독자보다 수필작가가 더 많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헌데, 수필의 질이 저하되는 일은 경계를 해야 하겠지요. 조급하고 짧은 생각으로 발표에 연연해하기보다 늘 숙고해야 합니다. 수필집이 출판되자 곧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할까요. 책 한 권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잘려나가고 숲이 망가지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허튼 소리 가득한 백편의 수필보다 영혼에 와 닿는 한 편의 수필이 더 값진 것이라 봅니다. 독자는 쏟아지는 글의 홍수 속에서 피곤감을 느끼곤 하지 않습니까?

정: 수필쓰기에서 ‘영격지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문학 후배들에게 다시 한 번 들 려 주시기 바랍니다.

영격지수(靈格指數)는 동양문화의 진수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허구와 가면과 위선으로 위장될 수가 있습니다. 허나 선지식(善知識)에 의해 판별되는 영격지수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영격지수는 축인(畜人), 범인(凡人), 재인(才人)이 있고 이는 하품인생들입니다. 학인(學人), 덕인(德人), 인인(仁人)은 중품인생이며, 달인(達人), 도인(道人), 진인(眞人)은 상품인생입니다.

수필쓰기는 문예창작이면서도 동시에 치열한 자기 수행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품인생의 경지까지는 다다라야 깊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영격지수를 높이는 데는 꾸준한 묵언 정진과 명상 수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의도성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는 글이나 집안자랑, 학벌자랑을 삼가야겠지요.

정: 지난 해 <제1회 흑구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혹시 흑구선생과의 인연이 있으신가요?

감사합니다. 1953년 포항중학교 교사시절, 한흑구 선생의 둘째 아드님이 재학 중이라 몇 차례 만나 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분의 작품「보리」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그 분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며 나도 언젠가는 수필을 써서 교과서에 실려 봤으면 하고 꿈을 키웠습니다. 꿈을 가지고 수필을 쓰다보니 서로 만나지 못했어도 흑구선생께서 특별한 연으로 제게 오셨습니다. 작가에게 존경하는 선생이 있다는 일은 아름다운 일 같습니다.

정: 대구가 수필문학의 메카처럼 부흥지역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인데 앞으로 어떤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까?

김: 정이사장님 말씀대로 대구는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순수수필 문학단체가 8개가 있으며 회원 수가 약 800명이 됩니다. 수필문학 강좌도 10여 군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열정이 대단합니다. 열정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어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차분하게 숨 고르기하면서 깊은 성찰과 반추로 보다 좋은 수필쓰기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정: 선생님의 고향인 하동에 문학공원이 조성되었지요?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작가를 살리는 방법으로 문학공원을 세우고 있는데 이제 차별화된 관리가 따라야할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김: 내 고향 하동의 문학공원은 자랑스럽습니다. 하동인은 하동을 문학수도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박경리의「토지」김동리의「역마」이병주의「지리산」이 하동을 배경으로 태어났으며「토지문학관」「이병주문학관」이 있습니다. 하동 군청의 행, 재정적 지원과 하동문화원의 노력과 군민들의 성원으로 문학공원이 조성되어 하동군민들은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합니다. 문학공원에는 시비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시조, 아동문학 등 문학 전반에 걸쳐 업적이 뛰어난 사람의 문학비를 정부가 세워주고 국격을 높여 세계화도 이루어야할 것입니다.

정: 두보의 ‘독파서만권’을 실천하면 붓 끝에 귀신이 달린 것처럼 글을 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작가에게 독서는 양식처럼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느끼게 합니다.

김: 우리가 모두 잘 알다시피 구양수의 다독, 다작, 다상량과 두보의 「독파서만권 하필여유신」은 수필쓰기의 이상이라고 봅니다. 좋은 책을 골라서 많이 읽을수록 수필창작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두보는 또 어불경인(語不驚人)이면 수사불휴(雖死不休)라 했습니다. 언어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비록 죽더라도 쉬지 않겠다는 절박한 작가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운동선수가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몸이 달라지듯 글쓰는 이가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세태에 휩쓸리게 되고 정신이 흐려져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정: 수필의 비문학성은 늘 거론되지만 현재 수필문학이 가장 사랑받고 확산 일로에 있습니다. 수필문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짚어 주신다면?

김: 수필의 비문학성은 이제 옛 말입니다. 지금은 수필이 문학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는 난해해서 별도의 해설문이 있어야 이해되고 스토리가 빠진 소설은 너무 지루해서 요약서가 따라야 읽어보는 시대로 변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필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계인이 함께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에세이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에세이도 나왔으면 합니다.

요즘엔 인터넷 신문이 비록 꾸미고 짜 맞춘, 생명력이 없는 글이지만 간결해서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도 넋두리, 군소리, 군더덕지 모두 떼어내고 짧고 산뜻한 수필도 나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 대구수필문학인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따끔한 질타의 말씀과 함께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김규련金奎鍊 약력: 초대 한국문인협회구미지부 지부장 .

1929년 경남 하동 태생. 수필가. 경북교원연수원 초대원장. 경상북도 교육위원 역임, ‘수필문학’지로 등단.(1975). 영남수필문학회장 및 한국문협 구미시지부장 역임. 한국수필문학상, '신곡문학대상'수상(2003), 국제펜클럽 아카데미문학상 수상. 수필 문우회 회원이며 저서로는 <거룩한 본능> <소목의 횡설수설> <높고 낮은 목소리> <종교보다 거룩하고 예술보다 아름다운> 현대수필가 100인선《즐거운 소음》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