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문학탐방
작가를 찾아서
정직하고 책임감 강한 정종명 소설가
참신한 실무 관리형 후보로 평가받아
일시: 2010.10.13(토). 오전 11시
장소: 대학로 사무실
대담 : 권남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정종명 작가약력
1945년 경북 봉화에서 출생. 197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197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단편소설 <사자의 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대문학> <소설문학> <문학정신> 등 문예지에서 오래 근무했다. 소설집으로 <오월에서 사월까지> <이명> <숨은 사랑> <의혹>, 장편소설로 <거인> <아들 나라> <대상> <신국> <올가미>, 수필집으로 <사색의 강변에 마주 앉아> 등이 있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과 겸임교수이며, 한국문학발전포럼 대표이다.(daum 검색창에서 정종명과 위키백과를 검색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1월 한국문협선거에서 이사장으로 당선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을 거치면서 내공 다져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출마를 결심한 정종명 소설가의 표정은 결연하다. ‘신선하다’ ‘단체장 경력이 약하다’ 이런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선생이 문단에서 쌓은 내공은 결코 만만치 않다. 선생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과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재직해 오는 동안 김년균 이사장 가까이에서 많은 점을 체험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은 저렇게 정직하게 해야겠구나’ 하는 것이다. 사무능력과 정직성, 경영능력을 두루 갖추고 오직 문협의 미래만 생각하는 김 이사장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김년균 이사장과의 인연 또한 특별하다. 대학을 졸업했어도 취업이 되지 않아 방황할 때 ‘재워주고 먹여준’ 사람이 김년균 시인이다. 시인의 자취방에서 500장이 넘는 중편소설을 썼는데 시인은 선생의 작품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읽어주면서 “소설 잘 쓴다. 작가 되겠다”고 격려해 주었다고 하니 두 사람의 미더운 신뢰는 깊고도 깊다. 김년균 이사장과의 그 끈끈한 인연이 이제는 40년을 헤아린다.
■이문열 이외수 등 쟁쟁한 작가들과 작가동인 참여
선생은 1980년대 초반에 ‘작가동인’에 참여했다. 이문열, 이외수, 윤후명, 강석경, 김원우 손영목 유익서 휴홍종 김채원 서동훈 표성흠 등 쟁쟁한 소설가들이 이 ‘작가동인’에 참여했다. 동인활동은 매우 중요하다고 긍정하면서도 지금의 동인활동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고 선생은 선을 긋는다. 그 당시 선배 소설가들이 만든 ‘작단’의 유재용 전상국 김원일 등의 뒤를 이어 본격소설에 대한 문단의 가치 평가가 높게 매겨지는 순간이었다. 조해일 박범신 한수산 조선작 최인호 등 이른바 신문연재 소설로 인기작가 특수를 누렸지만 문학의 본령은 아니라는 평가에서 ‘작단’이 나왔고, 뒤를 이어 ‘작가동인’이 결성되었던 것이다. ‘작가동인’은 4집까지 내었는데, 나중에 강석경 김상렬 김인배 정소성 최학 황충상 등도 참여했다.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먼저 소망하고 준비하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선생에게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작가로 활동하는 모습에서 차근차근 어떤 수순을 밟아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역할 모델이 있을 것 같고, 목표를 세우면 실천에 옮겨 나가는 듯도 하다. 선생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제의 특강에서 ‘준비하는 자세’를 특히 강조했다. 준비하면 언제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선생은 자신 있게 “꿈은 이루어진다”고 대답한다. 작가가 되고 싶어 고등학생 때 소설을 썼는데 입상을 하고 김동리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너 우리 대학에 장학생으로 와서 공부하라”고 하여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IMF로 직장을 그만 두었을 때도 미리 써 둔 장편소설을 영남일보에 연재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급하게 요청하는 신문연재가 가능했던 것이다.
대학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다. 이청준 이문열 한수산 이문구 윤흥길 소설가들이 교수로 대학에 나가고 있어 ‘나도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오래잖아 경기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있는 이재인 소설가가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선생은 현대문학, 문학정신, 월간문학 등 문예지 편집자로도 오랜 동안 근무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고서점에서 현대문학 과월호를 찾아 챙기면서 현대문학에 가서 근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선생은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작가 되고 싶다면 작가 되었고, 신문에 연재소설 쓰고 싶다는 소망 가지면 연재소설을 쓰는 기회가 다가왔고, 대학에 가서 대학교수로 강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면 대학교수도 되었다. 이제 그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소망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문학상 받으려고 단 한 번도 운동한 적 없어
아무래도 스승 김동리 선생과의 일화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결혼식 주례도 서주고 장학생으로 학교도 다닐 수 있도록 챙겨주신 어른이기 때문이다. 제자 대하기를 더하고 덜 하는 법 없이 늘 한결같았다고 회고하는 선생은 학교에서 제적당한 자신을 구해준 일화를 들려준다. 절차도 밟지 않고 군대를 가 버렸으니 제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대 후 복학을 하지 못해 난감했는데 동리 선생을 찾아가서 말씀을 드렸더니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즉시 학생과로 같이 가 해결해 주어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선생은 문학상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선생이 받은 문학상은 동포문학상과 서라벌문학상이 고작이다. 동포문학상을 받을 때 손소희 선생이 심사를 했는데, 김동리 선생이 “그 사람, 그 상을 받을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선생은 문학상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선생은 손꼽히는 문학상 후보자로 이름이 거론된 적력은 많다. 예를 들어 <숨은 사랑>을 발표했을 때, 동인문학상을 비롯하여 김유정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에 수상 후보자로 작품이 등재되었던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문학상 받아 보겠다고 스스로 나서서 노력해 본 적은 없었다.”고 선생은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을 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서 받는 상이 진정한 문학상이지 않겠느냐고 선생은 반문한다. 다만 이력서 쓸 때 문학상 받은 이력이 다른 사람들처럼 많지 않다는 사실이 좀 민망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많이 쓰는 것보다 좋은 작품 쓰려고 목숨 걸어야
선생의 장편소설 <거인>이 MBC 미니시리즈 8부작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그때가 소설가로서 가장 정점이지 않았을까. 선생은 1978년 10월호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장편소설 <아들나라> <대상> <신국> 등이 그 무렵에 나왔다. 문학하는 후배에게 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선생은 좋은 작품 한두 편을 쓰기 위해 꾸준히 목숨 걸고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문인협회에 작가로 등록된 회원만 만 천 명이 넘는데 추정하면 이만 명이 넘는다. 이렇게 양적으로 팽창하는 시대에 좋은 평가를 받는 문인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억하고 자랑할 만한 작품 한 편을 쓰기 위해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춘수의 <꽃>이나 김광섭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같은 작품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도 귀띔한다.
작품을 쓸 시간이 허락된다면 어떤 작품을 남기고 싶은지를 물었다. ‘글감은 항상 저장되어 있다’고 단호한 자신감을 보인다. 선생은 다시 덧붙인다. “70이 넘어서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작품에 몰두한다면 우리나라 기업성장사를 장편으로 쓰고 싶어요. 소재도 있으니까……”
■한국문협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실무 관리형 후보자
작품 쓰고 싶다는 작가적 욕심을 버리지 않았지만, 선생은 현재 문단을 이끌어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대치는 매우 높다.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소임을 맡아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도 나누어야 하고,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선해 나가며 새로운 문단사를 써야 할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서이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선거에 나서게 된 배경을 물었다. “한국문협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합니다. 단순한 친목단체에서 벗어나 회원들의 생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수익사업을 전개해야 합니다. 부이사장들과 손발을 잘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진용의 부이사장 후보들은 모두가 훌륭한 분들입니다. 김송배 시분과회장, 한분순 시조분과회장, 이광복 소설분과회장, 정목일 수필분과회장을 위시해서 김종섭 전 경북지회장, 진동규 전 전북지회장, 박성배 노원문협지부장 등, 우리 문단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중진 이사장 감들이지요. 그 분들과 손발을 잘 맞추면 우리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문협의 운영을 구태의연한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도 곤란합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을 선거 때마다 들고 나와 회원들을 현혹하는 사람도 안 되지요. 저는 정직한 사람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우리 문협에 신선한 바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문단이 발전하고, 문단이 발전해야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올 것 아닙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때 우리 한국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머나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문협 이사장선거에 나가기로 결심을 굳힌 것입니다.”
선생은 정직한 인물로 문단 안팎에 정평이 나 있다. 그뿐 아니라 60대 중반에 이르도록 사심 없이 깨끗하게 살아왔다. 특히 문협 편집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회원들에게 골고루 지면을 할애하기 위해 애썼고, 몸을 낮추는 데까지 낮추어 회원들을 정성스럽게 섬겼다. 따라서 원로에서 신인에 이르기까지 문협 회원들 사이에서는 선생이야말로 차세대 문협을 이끌어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한국문협은 이제 회원 1만1천여 명이 참여한 거대 문학단체로 발전했습니다. 퇴직 공무원도 많고, 법률 전문가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170여 개의 지회ㆍ지부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문협 이사장은 이들이 앞장서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원들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은 한국문협 차기 집행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점들을 최대의 숙원사업으로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문협의 기관지인 <월간문학>과 <계절문학>을 국내 최고의 문학지로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 출판의 허브로 불리는 전자문학지를 창간하여 회원들의 작품 발표 지면을 무제한으로 확대하고, 동시에 원고료를 인상해서 회원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아야 합니다. 또 한국문협 홈페이지를 대폭 개편해서 회원 개개인의 정보는 물론이고, 작고 문인들의 정보도 찾아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대대적으로 구축해야 하지요. 젊고 재능 있는 신입회원을 과감하게 영입해서 보다 젊은 한국문협을 만들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은 한국문협 사정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면서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덕목과 책임감을 갖춘 실무 관리형 중진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점, 무릇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만인 앞에서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권남희/ 정종명 한국문인협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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