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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에세이 鄭 木 日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마당이 있어야만 햇살과 달빛을 만날 수 있다. 잎눈 꽃눈을 틔우는 봄비와 햇살을 맞아들일 수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바람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미국 뉴욕 맨하탄의 전망이 좋은 아파트 1백 평의 가격이 몇 백억 원대라고 한다. 자체적인 마당이 없지만, 창을 통해 공원의 마당을 볼 수 있어서이다. 아파트는 마당이 없는 집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마당 없이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아파트엔 거실이란 가족 공동체의 대화, 휴식 공간이 마당 역할을 대행한다. 하지만 아파트 거실에선 자연을 온전히 체감할 수 없다.
나는 아파트에 살고 난 이후, 자연으로 향한 오감이 막힌 것도 모르고 지냈다. 빗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망각해버렸다. 꽃향기, 나무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햇살과 바람의 촉감을 잊어버렸다.
달빛이 몰래 내려와 있는 은빛의 마당을 놓쳐버렸다. 대청에 앉아서 햇빛바래기를 하면서 초목들처럼 따스한 햇살을 온몸의 혈관 속으로 받아들이며 행복감에 잠기던 일을 까먹어버렸다.
거주공간엔 침실과 식당과 거실만 필요한 게 아니다. 하늘과 땅을 볼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마당은 휴식의 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놀이 공간이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당은 집의 허파처럼 숨을 쉬게 하는 곳이다.
가을 어느 날 창원 근교에 있는 천년 사찰 성주사를 찾아갔다. 주지스님이 있으면 차 한 잔 함께 마실 요량이고, 출타 중이면 가을 사찰의 맛을 혼자 느껴보는 것으로 족한 걸음이었다. 주지스님은 부재중이었다. 절 마당 천년 고요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웅전, 설법전 등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마당을 걸으니 천년 고요가 눈을 밟을 때처럼 소리를 내는 듯하다. 천년 사찰의 마당은 비어 있지만, 고요와 적막이 깊어서 함부로 걷지 못하고 사뿐사뿐 걷는다.
마당이란 달빛의 공간, 바람의 공간, 건물과 자연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음이 얼마나 좋은가를 대웅전 뒤편과 앞으로 보이는 산 능선을 보면서 고개가 끄떡여진다.
마당에 내리는 가을 햇살은 투명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가을 햇살은 기도와 은총으로 빛나며 오곡백과를 무르익게 한다. 가을 햇살은 찬탄과 환희의 선물만을 주는 게 아니다. 겨울의 고독과 비움의 시간을 내준다. 나에게도 빈 마당이 있어야만 햇살과 달빛과 별빛과 바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이후부터 해와 달과 별과 바람과 비와 살을 대지 못했다. 자연의 촉감을 망각해버렸다. 마당을 상실한 이후부터이다. 자연과 상관없이 사는 삶 보다는, 하나의 풀로써 자연의 은총으로 최선의 꽃을 피우는 삶이고 싶다.
부자의 삶을 살지라도 마당 한 평 없이 산다면 그게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마당이 있어야만 숨통을 튀일 듯하다. 마당이란 여유 공간이 없으면 갑갑한 삶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마당이 있어서 꽃들이 제대로 자라고, 한 그루 나무라도 심어서 대화자로써 교분을 나누고 싶다. 나비와 새가 찾아오고 달과 별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내 마음에도 텅 빈 마당이 있었으면 한다. 기다림의 정갈한 공백으로 달빛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빗소리와 새소리를 맞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었으면 한다. 나는 언제 삶과 마음에 마당을 펼치는 사람이 되어볼까.
마당이 있어야 눈과 낙엽도 쌓일 수 있다.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면서 마음을 비워내고 나무가 땅에게 보낸 낙엽 편지를 읽어보았으면 한다.
아파트 생활 30여 년에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오감을 잃어버린 것을 애통해 한다. 마당은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소통 공간이며, 하늘로 향한 열린 공간이다. 비어 있음으로 충만을 얻게 하는 마음의 공간이다. 마당의 상실은 꿈과 정서와 여유의 상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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