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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다짐
鄭 木 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새해엔 다시 출발선에 선다.
100미터 경주에 참가한 선수처럼 달릴 태세를 갖추고 긴장한 나를 발견한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결의의 눈빛이 빛난다. 새해엔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리라. 해돋이를 보면서 전율한다. 새해의 서기를 받아 내 삶도 새로움과 신성으로 채워, 맑고 찬란해지리라.
1월은 축복의 계절이다. 연하장과 덕담이 어우러져 새로운 꿈과 포부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는 굳은 맹세와 다짐 속에 맞는 1월은 경건하고 엄숙하기조차 하다.
새해 아침, 새 일기장에 일 년의 다짐과 설계를 쓴다. 이 세상에 살아있음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만들 것인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가슴 속에서 쿵쿵 울려오는 심장 박동소릴 들으며 ‘내 인생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를 생각해본다. 새해는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는 곤충처럼 새로운 일 년의 삶을 허용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시간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일 년, 한 달, 하루를 구획하고 하루를 쪼개어 24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삶의 가치와 질을 높이려는 지혜의 소산이겠지만, 이로부터 시간에 종속된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지배 속에 있다. 수명이라는 한시성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체하고 소멸시킨다. 시간은 망각의 뒤안길을 안내한다. 영원이란 없는 것이며, 새로움은 퇴색되고 망각으로 가는 첫출발임을 알려준다.
새해가 와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길을 바라보고 걸을 뿐이다. 문인은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는 영원을 만드는 유일한 행위이다. 망각의 세계에 하나의 새 움을 피워놓을 수 있는 일이란 그 것 뿐이질 않는가. 글을 쓰는 일에 소홀해선 안 된다.
이미 출발하였다. 고독한 길을 힘차게 나가야 한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갖는 다짐이며 맹세이다. 새해맞이는 출발선에 서서 새 기운으로 삶을 발견하고 깨달음의 꽃을 피워보자는 데 있다. 나무나 꽃들처럼 식물의 일년주기에 맞춰 부활과 아름다움을 수용하려는 의식이 숨어 있다.
나무의 삶을 본받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생이 되리라. 사철에 따라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며 순환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떠오르는 해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지는 해처럼 경건하고 장엄하게 하루를 장식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가.
나무들은 가장 운명적인 존재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 서 있을 지라도 그 자리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고, 척박한 땅이거나 바위 위일 지라도 뿌리를 내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 곳은 유일한 생존의 터전이다.
나무에게 있어선 아예 운명이란 없다. 순리랄까 생존의 존엄한 본능이 있을 뿐이다. 새해에는 오로지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아침이면 하늘을 향해 기구하면서 빛을 맞아들이고, 저녁이면 고개 숙여 하루를 거둬들이고 싶다. 계절마다 새로움으로 채우고, 일 년마다 삶의 체험과 깨달음으로 한 줄씩 목리문(木理紋)을 새겨나가고 싶다.
삶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하늘과 땅과 빛의 말을 받아들여야 하고 주변의 자연과 이웃에 거슬림이 없고, 조화의 미(美)를 얻어야 한다. 새해엔 그러한 삶을 배워 갔으면 한다. 온전히 한 그루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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