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월간 한국수필 2011.4월호

권남희 후정 2011. 4. 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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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지혜

                       -대장경 1000년 세계문화축전

                                          鄭 木 日 (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협 부이사장)


 합천 해인사에 갈 적마다 팔만대장경의 보관처인 장경각을 기웃거리며 영원의 말을 생각해 보곤 한다. 부처의 말을 새겨놓은 경판은 침묵 속에 눈을 감고 있지만, 현란한 광채와 향기를 내고 있다.

 명상의 말, 깨달음의 말이 꽃눈으로 툭툭 불거져서 꽃송이를 터트리려 하는데, 마음이 미치지 못하여 꽃을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마음에 탐욕이라는 때와 어리석음이란 얼룩이 묻어서 진리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경(經)이란 말의 보석상자이다. 불경은 부처의 말, 성경은 예수의 말을 담아 놓은 보석상자이다. 말이란 일시적인 효용 가치를 지닌 것이 있고,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 있다. 성현이 남긴 말은 깨달음의 말, 사랑의 말, 감동의 말, 용기의 말, 진리의 말이다. 경(經) 속의 말은 시간의 흐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 지혜와 용기와 진리의 길을 인도해 주는 등대가 된다.

 ‘팔만대장경’이란 대장경의 판수가 팔만 여 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표현할 때에는 ‘팔만사천’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유네스코는 팔만대장경의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금년이 고려대장경을 조성하기 시작한 고려 현종 2년(1011년)으로부터 10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합천 해인사와 창원에서 <대장경 1000년 세계문화축전>을 개최한다. 오는 9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45일간 열리는 이 축전은 고려대장경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새롭게 다가올 천년을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된다.

 ‘살아있는 지혜’라는 주제는 고려대장경이 내포하는 ‘지혜’를 찾아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속에 살아 움직이게 하자는 뜻이다. 공식행사엔 개ㆍ폐막식을 비롯해 대장경문화페스티벌, 뮤지컬공연, 멀티미디어 쇼, 해외단체 공연 등의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지난 천년과의 재회를 가짐으로써, 앞으로의 천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 불과 1백년 미만을 사는 인간에게 천년은 영원을 의미한다. 일회성 한시성을 가진 인간의 삶에 ‘천년’이란 영원을 수용하자는 의미이고, 문화만이 영원에의 가교가 됨을 알려준다. 

 우리 민족은 세상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쇄매체시대를 열었던 문화민족이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현대 문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돼 왔다. 이 금속활자 발명도 팔만대장경 조성이란 민족의 대 경험 축적에서 얻은 지식과 정신에서 이루어진 성취이다.

 1032년 몽고군의 침략으로 인해 불타버린 대장경을 민족의 힘을 모아서 다시 조성해낸 것은 우리 민족이 갖고자 한 ‘마음의 보석’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 깨달음의 꽃을 다시 피워내고 싶었다. 우리 겨레의 이런 기록과 보존의 정신은 영원의식을 갖게 만들었으며, 민족문화의 원동력이 돼왔다. 우리 민족은 지식 정보에 민감한 유전인자를 타고났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활자매체시대를 연 이래, 오늘날 인터넷시대에도 선두 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나무로 새긴 대장경이 오늘날까지 좋은 보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선조들의 과학적인 지혜가 숨어 있다. 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은 동편의 가야산 자락과는 대략 20°정도, 서쪽의 비봉산 자락과는 10°의 경사각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맑은 날 햇빛을 받는 시간이 여름철에는 12시간, 봄, 가을에는 9시간, 겨울에는 7시간으로 정해져 있으며, 연간 계절풍은 여름에는 남동, 겨울에는 북서로 분다. 이런 지형적인 요인 때문에 장경각은 해인사 경내에서도 가장 낮은 온도와 다습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내부 공간 기온은 온도차가 2℃를 넘지 않는다. 상대습도는 통상 80%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건조할 때에도 40%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이는 건조에 의한 경판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건축조영에 반영된 것이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은 대장경이 품고 있는 ‘살아있는 지혜’를 보여주는 일이다. 팔만대장경은 무한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주는 문화재이다. 정신과 마음을 꽃피울 삶의 길을 제시한 문화콘텐츠라 할 수 있다.

 대장경판은 세상에서 제일 큰 책이다. 영원의 책이다. 우리 민족의 마음에 이런 보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담긴 ‘지혜’를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지혜의 세상이 되게 해야 한다. 세상의 재난과 재앙은 ‘살아 있는 지혜’가 아닌 ‘죽음의 지혜’를 취한 데서 온다. 자신이나 이익 집단만의 번영과 부(富)를 취하려는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온다. 공영 공존의 질서로 평화를 얻는 게 ‘살아있는 지혜’이다. 자연을 살리고 만물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 ‘살아있는 지혜’이다.

 지난겨울부터 구재역이 돌아 소, 돼지 3백만 마리 이상을 ‘살(殺)’처분하고 생매장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속죄해야 한다. ‘살아있는 지혜’를 행하지 않아 생겨난 재앙이며 징벌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살아있는 있는 지혜’엔 희망과 평화의 향기가 퍼져나가지만, ‘죽은 지혜’는 죽음의 악취가 날 뿐이다.

 천년 만에 행하는 <대장경 1000년 세계문화축전>이 행사만을 위한 형식과 겉 치례로 이뤄져선 안 된다. ‘살아있는 지혜’라는 주제를 살리고, 이를 실천하는 계기로 삼는 세계문화축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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